1. 삶을 다루는 일
군대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다.
(1) 백문백답
"…30. 행복에 대한 가치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경험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과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노력하고 발전시키며 살아가는 것, 작은 일에 감사하고 의미를 가지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 남의 삶을 존중하며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 모두 행복이다.
31. 나의 삶의 의미?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매 순간 후회 없이 사는 것이다. 당장 죽어도 괜찮을 만큼 후회 없는 행복한 삶을 즐기는 자체가 내 삶의 의미이다…”
(2) 인생이 재미있는 이유
“ 1. 모르는 게 많다. 이것저것 알아가면서 경험의 수를 확장한다.
2.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오늘 혹시 다른 작은 일이라도 생길지,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있다. 싫어하는 일을 하다가 좋아하는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이득이 취해지기도 한다.
3. 욕구를 충족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면을 하기도 하며, 자기계발을 하고, 성적인 욕구를 취하기도 한다.
4. 감정이 변한다. 슬프면 울고, 즐거우면 웃는다. 엄청난 일에 감정이 변하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감정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한다.
5. 이 모든 것을 가지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것들이 오고 간다.
소통하고, 공감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
6.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취할 수 있고 주어진 수많은 선택지를 결정한다.
7. 선택이 틀린다. 다시 첫 번째 이유로 되돌아간다. "
(3) 2020년 11월 29일 일요일
“ 오늘도 하루 종일 연기에 관심을 두었다. 영화 <멋진 하루> 시나리오를 읽어봤다. 재미있었다. 아직 10페이지 조금 넘게 읽었지만, 인물들의 성격을 조금씩 알아가는 게 재밌었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잘 생각해 보자.
유튜브로 영화제작과정에 대해 공부했다. 조금이나마 영화제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내일 사단장이 와서 점심때 청소를 했는데, 그 시간도 뭔가 아까웠다. “
군대에 와서부터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제대하면 맨 몸인데,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 내가 뭘 할지 정해야 했다.
난 어릴 때 꿈은 화가였다. 6살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는데, 미술학원이 좋아서 장래희망이 화가가 됐다.
7살 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수련회 장기자랑에 나가서 ‘가슴이 시린 게’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반응이 좋았고, 중학생 땐 ‘패션 디자인’ 전공을 하고 싶었다.
난 어릴 때부터 예술과 체육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장래희망에 3년간 ‘건축가’를 적었다.
아버지가 건축을 하시고, 형도 건축과를 나와서 선택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당시 안정적으로 잘할 수 있다고 보이는 것이 그 직업이었다. 하지만 정말 한다면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잘못되었다.
‘발산’.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것은 ‘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해’보다는 높은 차원이다.
나는 사람, 대화하고 말하는 것, 오감(五感), 감정, 표현수단, 시공간 등에 관심이 있었다.
내 존재가 세상과 작용하고 싶고, 지구 위에서 스스로 나의 존재를 인식하기를 원한다. 내 안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연기는 그런 것이었다. 연기 덕분에, 연기를 알아가면서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생기고 나의 신경들을 자극했다.
이전에 후임으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재학 중인 희재형이 들어왔었다.
나는 연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고, 형은 나에게 연기를 가르쳐주게 됐다. 그러다 군대에서 연기동아리를 만들었다.
2. 의미
연기를 맨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작년까지. 약 2년 동안 나는 정말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고, 걷는 법과 말하는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배웠고, 글이라는 문자에 대해, 감정에 대해, 삶에 대해 점점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삶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의미부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간다.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엄청난 일이다. 학생 때 수련회나 수학여행을 가는 날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던 것처럼, 어떠한 의미를 가지면 기대감이 생기고 그 의미를 가지는 시간이 소중해진다.
이것은 단위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또한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생길 수도 있고, 무생물에게, 또는 어떠한 현상이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게 생길 수도 있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그 사람이 가지면 그냥 생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라는 것은 정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형태가 없다.
의미부여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이 사실이다.
겉으로 보기엔 같은 것인데, 다른 누구에게는 무거워질 수도 가벼워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연인과 이별해서 정말 너무 힘들어 죽겠는데, 마음 같아선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누군가는 ‘시간 지나면 괜찮아져~’한다. 이 물결이 너무 언짢다. 그 의미는 나의 정말 소중한 가치인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부여한 가치에 관심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나의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나의 의미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고 ‘별 일이 아닌가?’한다. 또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에 대한 ‘감정’이 무뎌지니까, 이제는 원래부터 별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떠한 ‘사실’을 알게 되어서 그것에 대한 의미가 변하기도 하고, 또는 ‘배움’을 통해 더 넓은 의미를 파악하고 난 뒤 지혜를 얻고, ‘이게 아니었구나’하며 기존의 의미와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라진다.
갑자기 내가 암에 걸려서 2주일 밖에 못살게 된다 거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를 당해서 죽게 됐을 때. 한 순간에 다른 의미들이 사라지는 동시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현재의 나는 일시적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나를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큰 의미의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일부러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요즘엔 클라이밍을 해보고 있다. 며칠 전에는 보드게임 전시에 다녀왔다. 그리고 어제는 살면서 처음으로 인테리어 의뢰를 받아서 페인트 칠을 해봤는데, 솔직히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막막하다.
나에게 또다시 의미 있는 무언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 뭐, 결국엔 머지않아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어떻게든 바뀔 것이고, 또다시 사라질 수도 있다.
의미는 개인적인 것이다. 의미는 형태가 없다.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