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적인 자유
1. 소신(所信)
우리는 우리의 신체로, ‘선택’을 한다.
지금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지금 무엇을 봤고 어떤 마음이 들어서 어떤 말을 하고 싶은 지. 이런 사소하고 섬세한 것들조차 모두 우리의 ‘선택들’이다.
삶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순간들은 내가 하는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필터링을 거치지만 않으면, 정확하고 솔직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나의 마음을 현명하게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기가 생각보다 정말 작아서, 심혈을 기울여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한다. 심지어 그 작은 것들이 많기도 너무나 많아서, 하나를 신경 쓰면 다른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이 와중에 저항도 한다.
상대방에 따라, 환경과 상황에 따라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의지를 무시한다. 그러다 보니 의지가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어떠한 선택도 선택하지 않는다.
나에 대해 알아채지 못한다.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순간이다.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해 길을 잃어버린 하이에나처럼 슬픈 일이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함께하면서도, 정신은 언제든지 어디론가 이동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 길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
하지만 삶은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은 선택을 선택한다. 선택을 통해 걷고, 선택을 통해 말한다. 그 선택이 하나씩 채워져서 순간이 채워진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순간들이 모여서 삶이 된다.
선택은 어떠한 길을 걷게 만들고, 그 길엔 또다시 인간이 있다. 그 인간을 선택하는 것은 자의, 또 또 선택이다. 만약 그를 선택하면 함께 걷는다.
함께 걷는 동안 부딪힐 수도 있다. 그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충돌하다 보니 나의 선택이 흐려지기 시작하고, 스스로 걷지 못한다. 난 너무 힘들어서 죽겠는데, 상대는 나에게 왜 걷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래, 내가 걷지 않음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겠다.
결국 걸음을 선택하지 않으니 하이에나가 되었다. 주변엔 검은색 풀들이 가득하고, 빛은 거의 없어서 보이지 않는다. 길도 잃고 내가 누구인지도 잃었다. 이제 도저히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혼란스러워 눈치 보며 길 한가운데에 멈춰서, 뒤를 돌아본다. 내가 왔던 길을 바라본다.
다시 선택을 한다.
나에게 집중하고 심호흡을 한다. 작은 것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나의 호흡이 상대방에게 전달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호흡을 알아차리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겠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에게 솔직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은 이것을 솔직이라고 말한다. 어찌 됐든 그 솔직이 상대방에게 닿고, 상대방은 감명받는다.
함께 걷는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스스로 상대방을 선택했다.
나에게 집중하고 솔직을 향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다른 누군가의 선택과 부딪히고 그 선택을 지켜낸다는 것은 고귀하다.
모든 선택은 용기다. 이기적일 수 있음은 용감하다.
2. 이기적인 자유
지하철을 탔다. 괜히 그날 따라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그냥 아무 이유도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무언가, ‘여기서 나는 춤을 출수도 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에 가까운, 이상한 생각을 했다. 뭔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만약 내가 여기서 눈물을 흘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래도 뭔가, 흘리고 싶었다. 흘려야지.
‘…’
진짜 흘릴 수 있겠다, 눈물이 고였는데, 그때쯤 가슴이 편안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었다. 후련했다. 그렇게 느끼자마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자유와 가깝다.
몸을 완전히 이완시키고 ‘저항’ 하지 않는 상태. 나를 내려놓는, ‘내려놓음’, 생각이 움직이고 근육이 움직여지는 대로 내버려 두는 상태. 간단하게 말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취미를 하며 느끼기도 하고, 다음 날이 주말이나 휴일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느끼는 해방감과 비슷하다.
나는 이런 자유를 느낄 때 벅찬 감정을 느낀다. 내 몸의 소유가 나이고, 주인이 나라고 상기시켜 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떠한 저항에서 그 속박을 벗어던지고 두 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지하철 빌런들이나 이상한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사실 공공장소에서 이상행동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먼저 자의식이 없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하는 동안 생각에 대한 저항이 없어야 하고 행동에 대한 의지가 강해야 한다. 만약 내가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얼굴이 새빨개지고 공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들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무언가를 많이 내려놓은 사람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 자꾸 지하철 빌런을 들먹이냐고? 지하철 빌런은 인간의 행동적 원리에서, ’ 정상적이지 않음’과 ‘이상함’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보편적인 예다. 따져보면 우리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을 겪는다. ‘왜 저러지?’, ‘굳이?’라고 생각할 때가 그렇다.
지하철 빌런이 아니라도, 그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미 이상함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정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이상함을 느끼는 것이 나만 느끼는 것이어서 내가 비정상인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모든 사람의 정상적 임의 기준은 다르다.
자유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자유는, 몸을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은가? 난 하루 세끼 연어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다. 왜냐하면 몸이 그렇게 반응을 한다. 더 단순하게, 3대 욕구 식욕, 수면욕, 성욕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미션을 받으면 난 누구보다 잘하고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이처럼 사람은 싫어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의지’가 강해진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거린다. 그리고 몸이 자유로워진다. 적당히 이완되고, 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사용하며, 그 행동을 하는 동안 저항하지 않는다. 몸은, 생각과 신체는 그 행동을 하기 위해 온갖 신경과 집중을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는 외부적인 구속을 받는다. 사회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자유로울 수 없어서 우리가 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라서,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유명인들 중 다수는 자퇴를 선택했다. 그들 주변사람 중 누군가는, 왜 명문대를 그만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비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유는 때와 장소에 따라 비정상적임과 이상함을 동반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유롭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유명인의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닌, 나의 몸을 잘 사용하고 나의 쓰임을 높이기 위해서다.
‘나’를 잘 이해함으로써, 더 먼 미래의 ‘정상’을 위해서, 잠깐 ‘이상함’과 ‘비정상적임’을 밟는 것이다.
내 인생의 정당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