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모든 것은 ‘소유(所有)’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것’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울타리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언젠가 그 의미가 사라지며, 언제든지 남의 것이 될 수도 있다. 일시적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나는 일주일마다 아빠의 지갑에서 대략 10만 원씩 훔쳤다.
지금 친척집 아들이 그랬다고 하면, 놀라며 생각했을 것이다. 저 놈 커서 강도 되는 거 아닌가. 내가 지금 조커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상황'을 부여받고, 그 상황에서 어떠한 욕구가 생기고, 그 다음 욕구에 전제된 행동을 한다. 여기서의 ‘상황’은, 모든 과거를 포함한 현 시간을 마주한 주인공의 시점이다.
아빠 지갑에 손을 대기 전 초등학교 입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인 나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4학년인 형과 함께 문방구에 갔다.
“외상이요.” 형이 말한다.
단골이었던 형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 물건을 가져갔다. 그것은.. 당시 나에겐 새로운 세계였다.
‘저렇게 하면 그냥 가져갈 수 있는 거구나.’
어릴 땐 따라 하기 마련이다. 남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이유는 자아 형성되기 전이고, 많은 순간들이 새로운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삶이 지루할 틈이 없다.
몇 주일 뒤, 난 3,000원짜리 초코비를 들고 자신감 있게 말했다.
“외.. 외상이요..!!” 당시 초코비는 문방구에서 가장 비싼 과자다.
아줌마는 당황스러워하며 말한다.
“어… 성민이 동생이지? 아줌마가 적어 놓을게.”
난 공짜로 초코비를 소유했다. 도파민이 치솟았다. 지금으로 치면 현금대출, 어쩌면 현금대출을 하는 것보다도 더.
‘사건’에 대한 것.
이와 비슷하게 우리는 지금도 일상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특정 사건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에 있다.
사건을 만날 땐- 당사자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데이터가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고유한 경험이 형성된다. 아무리 비슷한 사건도 개개인이 겪었을 때에 과거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몸이 다르게 반응하고, 조금씩은 그 자세한 형태가 다르다. 이것이 ‘깻잎논쟁’이 논쟁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사건의 크기는 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수치나 값이 다르고, 심지어는 개인의 시점에 따라 또다시 달라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건을 하나하나 머리로 인식하고 살아가지는 않는다. '외상’이라는 행동을 하면서 그 순간에 그 행동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매 순간 자신의 사소한 움직임과 행동에 대해 의식할 수도 없으며, 살아가면서 사건의 크기에 대해 그 값을 매기지도 않는다. 초등학생 때의 사건은 누가봐도 별 것이 아니지만, 중요한 퍼즐 조각이다.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하고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외상이 나의 도벽의 시작이 되고, 도벽이 내 성격에 영향을 주었던 것처럼.
처음엔 1~2만 원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많게는 10만 원씩. 시간이 지나 아빠 지갑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매주마다 은행을 터는 것 같았다. 당시 초등학생에게 10만 원은 엄청난 액수였는데, 다른 아이들이 문방구에서 100원 200원하는 불량식품을 사 먹을 때 난 친구들을 데리고 피시방이나 찜질방에 가서 용돈을 줬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물으면 1위는 언제나 ‘돈’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당연히 다른 나라도 돈을 중요시할 것이라 생각한 것은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까. 왠만한 가치를 모두 구입할 수 있는 그 돈이라는 가치는 다른 가치를 무릎꿇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의 지갑에 현금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갑을 열면 돈이 별로 없어서 그것을 다시 닫았다. 나의 돈은 점점 사라지고, 돈을 통해 얻은 우정 또한 희미해졌다.
돈의 가치가 한 순간에 없어지는 것은 언제나 '맹목적인 가치 판단'에 있다. 왠만한 가치를 모두 사들일 수 있는 그 돈이라는 존재는, 보통 가치를 구입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한다. 하지만 그 사실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망각할 때,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 가치는 이미 시들어버린다.
돈을 통해 얻은 우정은 밀도에 허점이 있었다. 돈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내가 정말 순수하게 돈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단지 그것이, 내가 원하는 가치를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욕구는 원하는 가치를 얻기 위해 분명 필요하지만, 욕심은 눈 앞을 흐리게 만든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내는 그 마음은 애초에 '자신의 것'을 만들지 못했다. 가치 판단은 자신의 몫이기에, 스스로 떳떳하게 그 가치를 창조해내지 않으면 애초에 '가치'로서의 의미를 잃는 것이었다.
모든 가치는 ‘대출’이 아닐 때, 온전한 노력을 통해 얻은 것들이 진정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는, 모든 가치는 '대출'이며, 결국 평생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들이라는 것도.
'가치'라는 것의 출처가 나로 부터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나니, 나의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나의 신체, 몸 하나. 그러니 당연했다. 사람에게 누구나 결핍이 있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기준 만족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욕구의 뿌리로 자리 잡히는 것이. 없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여 '있는'상태를 만들어 내도, '있는'상태가 되면 '없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결핍이라는 것의 '있어야한다' 기준은 개인이 만들어낸 것인데, 그것은 소유를 갈망하고 있다. 이미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머리로는 '있어야 한다'고- 아니,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돈은 화폐로 작용하는 수단으로 존재할 뿐이었고, 친구들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소모품, 나 조차도. 있어야 되는 것은 없었다. 내 몸뚱아리도 언젠가 사라진다.
소유한다는 것은 개념이었다.
초등학생 때, '돈으로 세상을 다 가졌었다'는 개념을 가졌다. 그 개념을 가진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자신의 빛나던 시절을 떠올리는 은퇴한 노인처럼, 무소유(無所有)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돈이 엄청 많았는데- 그 돈이 어떻게 생긴 돈이었냐면-…’
어찌 됐든 나의 도둑이었던 과거가 현재 나의 ‘긍정적인 경제관념’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현재 서울생활의 현실에 부딪혀 헐떡이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눈앞의 현실보다 나의 가슴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 뭐 언젠가는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