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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올리버 스톤, 내추럴 본 라이터.

바른말보다는, 좀 엇나가도 언제나 자기 말을 해서 믿음직한 작가.

by 하인즈 베커
올리버 스톤 / 위키백과


내가 영화를 꿈꾸던 소년이 된 시작이 있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한 미국 청년이 터키 공항에서 마약을 소지하다 체포된다.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며, 인생이 바닥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끝내 탈옥한다. 중학생이 보기에는 매우 불편했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상하게 모든 장면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만든 '알란 파커'라는 감독을 무척 좋아하게 됐고, 한동안 그의 작품을 찾아보며 영화라는 것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의 진짜 주인공은 감독이 아니라 각본가였다는 걸. 그 이름, '올리버 스톤'. 영화 속 고통과 분노, 그 복잡한 감정들이 알고 보니 이 사람의 글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내 안의 어떤 지도가 펼쳐졌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올리버 스톤 각본, 알란 파커 연출



올리버 스톤이 직접 연출한 <플래툰>은 시작부터 이상했다. 명예도, 영웅도 없었다. 그냥 군화에 진흙 묻히고, 욕설 섞인 외침과 눈치, 증오, 생존 본능 같은 게 스크린을 채우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실제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사람이었다. 자기가 겪은 것을, 기억한 방식 그대로 풀어낸 것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누군가의 이야기에 동참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멋진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월 스트리트>, <JFK>, <도어즈>, <닉슨>, <내추럴 본 킬러>로 이어지는 그만의 필모그래피는, 장르를 넘나드는 어떤 연대기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그를 ‘음모론 감독’이라 불렀지만, 나는 오히려 그가 불편한 질문을 꾸준히 던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엔 공통점이 있었다.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고, 알던 걸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 내가 좋아하는 태도였다. 그런 기분으로 어쩌면 나는 올리버 스톤의 영화를 따라 어른이 되어갔다. 나이가 든 다음에는 그와 알 피치노가 만난 소품 <애니 기븐 선데이>가 오랫동안 좋았다. 인생은 1인치 게임이라는 그의 논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내추럴 본 킬러>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 올리버 스톤 연출


올리버 스톤은 <내추럴 본 킬러>를 통해 '쿠엔틴 타란티노'를 세상에 알렸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물론 이 고수는 자신의 내공으로 타란티노 각본에 묻어있는 스타일을 지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편집하고 해체하고 뒤틀었지만. 마치 알란 파커가 그를 소개했던 것처럼 세상은 타란티노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요즘 들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나를 찾아온 위대한 크리에이터들’이라는 시리즈도, 결국은 내가 나의 족보를 더듬는 과정 아닐까 하고. 나를 만든 사람들, 나를 쥐고 흔든 장면들, 그 대사와 소리와 침묵을 따라가며, 결국은 내 이야기를 찾는 중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eAkDEGw5g

인생은 1인치 게임 <애니기븐선데이>


지금도 올리버 스톤은 여전히 바쁘다. 푸틴을 인터뷰하고, CIA를 다루고, 미국 정치 시스템을 계속 문제 삼는다. 몇몇 사람들은 피곤한 노장이라고 하고, 또 몇몇은 여전히 그의 편집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너무 교조적이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카메라는 아직도 뭔가를 파헤치고 있고, 목소리는 여전히 미국이라는 나라가 덮어둔 진실들을 끄집어내려 한다. 이야기를 만들고 편집한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니다. 어디를 자르고, 무엇을 남길지를 결정하는 순간, 결국 세상의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올리버 스톤은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태도가 좋다. 늘 맞고 바른 이야기만 하는 사람보다, 좀 엇나가도 자기가 보고 듣고. 믿은 것을 어떻게든 전하려는 사람이 더 믿음직스럽다. 그래서 나는 그의 영화가 마음 놓이고, 동시에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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