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지냈던 상실감이 불쑥 찾아와 가슴을 긁어대는 시간.
오늘 같은 어느 일요일, 나는 낡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있었다. 흐린 유리창 너머로 빛이 무기력하게 스며들고, 제목을 알 수 없는 재즈 곡이 나지막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런 날이면 가끔, 세상의 일요일들이 가진 저마다의 풍경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일요일의 주인은 손에 든 따뜻한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처럼 희미하고, 만져지지 않는 기억의 파편들이다.
우선 알 파치노의 <애니 기븐 선데이>의 일요일이 있다. 치열한 삶의 마지막 1인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난 후의 일요일. 승리의 환호성이 스쳐 지나간 뒤, 남겨진 것은 부서진 몸과 사라져 가는 영광에 대한 쓸쓸함이다. 잠이 덜 깬 아침부터 나는 신기루 같던 땀방울이 바닥에 말라붙어 희미한 자국을 남기는 것을 상상한다. 그런 일요일의 서글픔.
https://www.youtube.com/watch?v=JlWn5wAvEz8&list=RDJlWn5wAvEz8&start_radio=1
그런 아침이 지나면 허성욱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로 접어든다. 이 시간은 좀 더 불확실한 형태의 일요일이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치 멈춰버린 시계의 초침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오후. 나는 커피를 마시고, 아무런 책이나 펼치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현재로부터 끌어내지 못한다. 모든 행동이 의미를 잃어버린 채, 그저 공기 중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존재할 뿐이다. 그 공허함은 낯선 도시의 골목을 혼자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남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FtiSHcavg&list=RDp-FtiSHcavg&start_radio=1
그러다가 시간은 <글루미 선데이>로 나를 인도한다. 잊고 지냈던 상실감이 불쑥 찾아와 가슴을 긁어대는 시간. 사랑했던 것들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그리고 그 부서진 조각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삶의 틈새에 박혀 있는지 조용히 깨달은. 그 일요일은 감정의 폭풍우가 아니라, 그저 모든 것이 끝나버린 후의 고요한 빗소리 같은 것이었다. 마치 무릎 밖으로 도망쳐버린 버린 고양이의 온기를 기억하듯, 희미한 슬픔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이다. 하나 혹은 두 개, 아니면 세 개의 일요일이 멜랑꼴리로 내게 머문다. 슬픔은 멜로디가 되고, 공허함은 흐릿한 오후의 공기가 되며, 투쟁의 끝은 조용한 서글픔으로 남는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받아들이며 다음 곡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뿐이다. 애써 느긋함을 만들어가면서.
응. 일요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