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학과 시

◈자기표현의 시 감상


◈자기표현의 시 감상


이근모 시인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창작과 비평>(1970)-


[감상]

우리는 보통 시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을 화자라 한다. 그리고 이 화자는 시인자신이 아니고 시속으로 시인이 모셔온 제3자 대리인이다. 그러나 현대 서정시의 경우에는 시인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토로한 것으로 작품속의 ‘나’는 시인 자신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는 시인의 표현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시인이 자신의 영감 또는 자신에 내재된 내면성 활동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기저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구인환 외, 2017:107-108)

따라서 표현론에 따르면 시란 사람의 감정과 정서 지각 등의 내면 경험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표현은 강렬한 감정의 표현으로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저절로 넘쳐흐르는 표현인 것이다.


위의 시 귀천은 표현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되 시인의 자기표현으로서의 시라 할 수 있다.

지나온 삶에 미련을 두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죽음을 담당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독자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맑은 시심을 보여주는 이 시는 독자에게 죽음을 맞는 아름다운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시에서 말하는 ‘나’와 실제 시인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사유해 보면 시어 하나하가 역설적으로 시인의 시작 당시를 고찰해 봐야 할 것이다. 시인은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정보부에서 3개월 교도소에서 3개월 고초를 겪은 후 전기고문을 3번이나 당하고 아이도 낳지 못하는 몸으로 교도소에서 풀려난 후 한때는 행려병자로 떠돌기도 했던 삶이 시인에게는 비극이었으나 이 비극을 시인은 “아름다운 세상” “소풍” 으로 받아들였는바, 그 심정의 내면을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을 견뎌낸 후 마침내 죽음 앞에 서서는 한숨과 눈물 따위는 가볍게 털어버리고 모든 것을 달관한 듯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한 시인의 고백이 역설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기에 시인의 깊은 내면에 연민을 느낀다.


◉천상병 시인의 삶을 통한 감상

천상병은 간고(艱苦)한 생애를 살다간 시인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거니와,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쓰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가난과 고통이 현실적으로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시적으로 고양된 순간에 있어서는 구차함이나 원한 혹은 분노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음에 있다. 오히려 두드러지는 것은 삶에 대한 긍정(물론그것은 부정적 상황의 틈에서 역설적으로 비춰지는 긍정이지만)인데, 그것이 그의 시가 보여주는 투명하고 순수한 서정의 출발점이다. 그 '투명함'과 '순수'의 서정은 인간적인 또는 세속적인 욕심의 흐림이 없이 삶의 어둠과 밝음을 볼 수 있음에서 온다. '가난'이 그로 하여금 "비쳐오는 햇빛에 떳떳할 수 있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거니와, 진정 그에게 있어 '간고함'은 사물에 대한 또는 일상적인 삶의 작고 하찮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투명한 눈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신산스러웠을 현실의 삶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로 말미암은 것이다. (한샘종합문학)


끝으로 「시와 이야기」에 올려 진 시작품 중 ‘자기표현의 시’ 한편을 감상해 본다.


네 눈동자 속에 꽃이 피거든 / 서미영


씻어놓은 지 오래된 그릇을 꺼내어

새로 씻어놓고 싶어지는 그런 날

봄 햇살을 한 조각 잡아당겨 가슴에 품는다


누군가 불러 세우는 소리에

돌아보면 또 바람만 귓가에 걸리는 날

바람의 어깨를 끌어안고 긴 숨을 고른다


오랜 기다림을 끝내는 그 아침이 찾아오면

차 한 잔을 들고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고 싶고

하얀 목련을 앞마당에 심어놓고 봄을 기다리고 싶다


꽃향기를 두르고 온몸을 태우다 사라지는

아침이슬이 스러지듯이 그렇게 나도 떠나야겠지

내 아이의 검은 눈동자 속에 꽃 하나 심어놓고 가고 싶다.



[감상]

“내 아이의 검은 눈동자 속에 꽃 하나 심어놓고 가고 싶다.” 이 결어, 시구가 시인의 자기표현이 된 시다. 자식 사랑의 어미의 심정, 이 시구 안에 무한의 상상을 확장 시키고 있다. 심성고운 자식으로 세상을 긍정으로 바라볼 줄 아는 훌륭한 자식으로 키우고 싶다는 어머니로서의 심정, 그러면서 그 아이에게 뿌리의 존재를 인식시켜 부모에 대한 인식과 함께 가족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역설적 사유를 해보면 아이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을 다 했을까 하는 자문의 성찰을 감추고 있다. 그래서 결어의 시구에 “내 아이의 검은 눈동자 속에 꽃 하나 심어놓고 가고 싶다.”고 했다.

(이근모 시인)


◉참고문헌

[현대시 교육론 역락 2017]

[우리말 우리글, 현대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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