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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가지망(engagement) 시 창작

#앙가지망(engagement) 시 창작


이근모(시인)


앙가지망은 실존주의 철학에 그 근간을 두었다.

인간이라고 하는 실존은 완벽한 모습이 되기 위해 모순과 투쟁하며 자신의 창조적 자유를 위해 부조리와 투쟁하는 존재라는 철학적 사고에 따라 이 철학적 사고에 기초하여 발생한 용어다.


이를 구체적으로 그 개념과 의미를 살펴보면

앙가주망(engagement)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에 의해 쓰기 시작한 용어로써, 사회참여(社會參與), 자기 구속(自己拘束)이란 뜻이다.


실존주의에서는 인간은 사회적 현실에 구속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 현실을 변화시켜 나가는 존재라고 보며, 이러한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써 이 용어를 사용했다.


문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술지상주의의 문학에 치중하는 것이 일반적 통례이지만 이 예술 지향이 사회적, 정치적 부조리까지도 터치하여 문학적 입장을 명확히 내세워 저항문학 참여문학의 형태를 가지고 모순과 부조리를 제거해 나가자고 하는 형태의 문학을 말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작가는 상황을 폭로함으로써 세계의 변혁을 시도하고, 독자는 폭로된 대상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작가와 독자 모두가 필연적으로 사회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치적 문제에 적극적 반응을 보이고 문제의 핵심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자진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앙가주망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철학에 근간을 두고 참여한 시들이 과거 어두웠던 우리 사회에서는 많이 있었다.


그중에 유치환의 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데>와 문병란의 시 <땅의 연가>를 소개하여 감상해 본다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고독은 욕되지 않으나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턴 빛깔도

설레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간 기술사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 끝까지 잇닿아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엔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


들어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 쳐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을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감상)

자유당 말기의 사회상과 시인의 처신을 노래한 앙가지망적 저항시로 우리나라 건국 후의 자유당 말기를 배경으로 한 부정부패한 사회를 소재로 하였다. 시어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면 <겨울>은 희망을 잃고 얼어붙은 시대로 자유당말기를 은유법으로 상징하였고 <뜨거운 노래>는 부정부패한 사회에 대한 화자의 분노를 이미지화하였고 <땅에 묻는다>는 뜨거운 노래는 씨앗처럼 묻혀 진실의 싹으로 자라나기를 기다리겠다는 의지의 메시지다.

이 시는 앙가지망의 철학을 담고 있는 사회 참여의 저항시로 현실적 상징적 의지적 성격의 시로 사회 정의를 고취시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땅의 연가(戀歌) / 문병란


나는 땅이다

길게 누워 있는 빈 땅이다

누가 내 가슴을 갈아엎는가?

누가 내 가슴에 말뚝을 박는가?


아픔을 참으며

오늘도 나는 누워 있다.

수많은 손들이 더듬고 파헤치고

내 수줍은 새벽의 나체 위에

가만히 쓰러지는 사람

농부의 때 묻은 발바닥이

부끄러운 가슴에 입을 맞춘다.


멋대로 사랑해 버린 나의 육체

황톳빛 욕망의 새벽 운으로

수줍은 안개의 잠옷이 내리고

연한 잠 속에서

나의 씨앗은 새 순이 돋친다.


철철 오줌을 갈기는 소리

곳곳에 새끼줄을 치는 소리

여기저기 구멍을 뚫고

새벽마다 연한 내 가슴에

욕망의 말뚝을 박는다.


상냥하게 비명을 지르는 새벽녘

내 아픔을 밟으며

누가 기침을 하는가,

5천 년의 기나긴 오줌을 받아먹고

걸걸한 백성의 눈물을 받아먹고

슬픈 씨앗을 키워온 가슴

누가 내 가슴에다 철조망을 치는가?


나를 사랑해 다오, 길게 누워

황톳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

앙상한 젖가슴 풀어헤치고

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

내 상처받은 묵은 가슴 위에

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


짚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고무신이 밟고 간 다음에도

군화가 짓밟고 간 다음에도

탱크가 으렁으렁 이빨을 갈고 간 다음에도

나는 다시 땅이다 아픈 맨살이다.


철철 갈기는 오줌 소리 밑에서도

온갖 쓰레기 가래침 밑에서도

나는 다시 깨끗한 땅이다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아픔이다.


오늘 누가 이 땅에 빛깔을 칠하는가?

오늘 누가 이 땅에 멋대로 선(線)을 긋는가?

아무리 밟아도 소리하지 않는

갈라지고 때 묻은 발바닥 밑에서

한줄기 아픔을 키우는 땅

어진 백성의 똥을 받아먹고

뚝뚝 떨어지는 진한 피를 받아먹고

더욱 기름진 역사의 발바닥 밑에서

땅은 뜨겁게 뜨겁게 울고 있다.


(감상)


땅을 우리는 대지라 한다 대지는 생명이 태어나고 삶을 영위하며 죽음으로써 귀속되는 변치 않는 기반이다. 그러기에 땅을 만물의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렇게 불러도 이상스럽지 않은 것은 이러한 땅이라는 속성에 연유한 때문이다.


그럼에도 땅의 본질을 망각하고 인간의 탐욕에 의해 오손되기 일쑤이다. 「땅의 연가」는 인간의 역사와 삶을 묵묵히 지켜보아온 땅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인간에 의해 고통받는 땅은 그 고통을 인내하며 말없이 땅의 포용력으로 깊은 땅심으로 새로이 씨앗을 품고 새순을 돋게 한다.


밟고 간 갖가지 신발들을 받아주며 오천 년의 역사를 지켜보아온 땅, 민중의 한 맺힌 시름을 낱낱이 보아온 땅은 역사적 측면에서 접근할 때

이러한 역사는 땅에 대한 학대와도 같다.


그러나 아픔과 오욕의 역사를 안고 있는 땅이지만

이러한 오욕의 역사를 씻고 부활의 생명을 기대한 다. 군화와 탱크에 의해 짓밟히고 분단된 땅이지만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과 창조의 땅이며 통일을 염원하는 그런 땅인 것이다


땅이 온갖 인간 영욕의 역사의 자취를 담고 뜨거운 연가로 우는 것, 그것은 땅심 본연의 심성이요 통일의 염원을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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