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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묘사
by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소장 이현우교수
Jun 22. 2023
#시의 묘사
이근모(시인)
묘사는 크게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일정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만 목적을 둔 묘사이고, 후자는 대상에 대한 지배적인 인상의 묘사를 통하여 뒤에 숨겨진 삶이나 정황을 암시하는 묘사이다.
시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암시적 묘사이다.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암시적 묘사도 작가의 심리가 투영되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로 나뉘어진다.
객관적 묘사는 시인이 선택한 한 국면을 통해 현장성 혹은 사실성으로 말하고자 하는 점을 제시하는 형식이고, 주관적 묘사는 심리적, 혹은 감각적 대상파악을 위주로 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 전적으로 객관적이거나 주관적인 형태를 보여주지는 않으며 복합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작가가 현장과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표현할 때는 객관적 묘사가 적극적으로 요구되고,
심리적 또는 감각적 대상 파악이 기조를 이룰 때는 주관적 묘사가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좋다.
몽돌 틈 사이로 삐쭉 내민 꽃
수줍은 세상 구경에 손가락 빨고
여린듯 가냘픈 꽃대가 하늘을 쳐다 본다
네가 쳐다보는 하늘 한아름 내가 안고 싶다
너처럼 방실 둥실 모두를 품으며
네가 바라보는 세상 꽃 모두를
내가 피워내고 싶다
몽돌 틈새서 비집는 아픔이 있더래도
아픔 만큼 성숙한 밀알이 되어
홀씨 만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듯
분주한 별 푸른 밤에
세상을 훨훨 날게하는 마중물로
뜨거운 뿌리로 뻗고 싶다
민들레 너를 보며
가뭇없이 스러지는
자국에.
<이근모의 민들레 사연 전문>
이름 모를 밤새가 울고 있는 밤
촉촉,
촉촉새가 운다
어둠을 켜놓은 채
밤은
촉촉히 젖어 누군가를 만지고 싶다는데
그 누군가가 없는 밤
집요한 허무만이 밤새의 날개에 올라
퍼덕이다 지쳐
촉촉, 두박자 리듬안에서
방실거리는 외로움에 장단 맞춘다.
백마 타고 딸가닥 딸가닥
세박자 리듬으로 무한질주 하며
유리구두 뿌려놓아도 신데렐라는 오지 않았다.
쿵작쿵작 네박자 리듬으로 태워주어야 오려나
촉촉 하다는 건 지금 내몸에 갈구하는
그 무엇이 스미고 있다는 구애의 몸짓
촉촉한 무엇을 만져줄 신데렐라는 어디 있는지?
촉촉한 사타구니가 절규하는 밤이
이름 모를 밤새의 노래로 추락 하고
하등 동물 같은 뼈없는 연체로 지새는 온밤
오줌발 체증 일으킨 전립선이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달린다
촉촉
촉촉.
<이근모의 촉촉 전문>
전자가 객관적 묘사를, 후자가 주관적 묘사를 위주로 한 시이다.
「민들레 사연」은 언어로 빚어낸 한폭의 그림이다.
실제로 시인이 본 광경을 그린 점에서 객관적 묘사에 속하지만, 가뭇없이 스러지는 자국에서 민들레 홀씨의 종족번식 세계는 그야말로 삶의 적막이 느껴지게 하면서 성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가뭇없이 스러지는 자국에서 우주 만물의 소멸을 절제된 표현으로 묘사한 기법은 제목이 「민들레 사연」으로 되어 있는 이유를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야말로 묘사형의 시는 “절제된 감정과 언어가 빚어내는 가시화된 이미지를 생명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할 것이다.
「촉촉」이 주관적 묘사임을 명시하는 구절은
“어둠을 켜놓은 채/밤은/촉촉히 젖어 누군가를 만지고 싶다는데/그 누군가가 없는밤.”
“촉촉 하다는 건 지금 내 몸에 갈구하는/그 무엇이 스미고 있다는 구애의 몸짓.”의구절이다.
촉촉 이라는 감성 언어는 시인의 눈이 아니고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세계이다.
이 촉촉히 젖는 형상은 바로 시인의 주관적 심리적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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