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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학과 시


#시에서의 추상어


이근모(시인)


우리는 시를 짓거나 감상하면서 시 속에서 많은 추상어를 접한다 그런데 이 추상어들이 대부분 형용사적 어휘로 쓰여지고 이러한 시어들이 독자로 하여금 감성을 자극 시키고 있는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현대의 모더니즘 시론에서는 감성 보다는 이성에 치중하는 시론을 펼치면서 과거의 노랫가락을 위주로 하는 시 창작을 지양하고 그림을 그려주는 이미지와 이 이미지를 통하여 철학을 담는 소위 메시지라는 것이 시속에 들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론이 전개 되다 보니 추상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추상어 사용의 억제를 주장하고 부득히 사용해야 한다면 그 추상어가 독자로 하여금 손에 잡히는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이미지 즉, 그림을 그려주어 형상화를 시키라는 주문을 한다.


이를 좀더 알기 쉽게 서술하면 시에서 추상어가 시어로 등장하면 독자들은 그 추상어를 쉽게 손에 잡기가 어렵기 때문에 시에서는 가급적 추상어 그 자체 사용을 자제하고 이 추상어를 구체적 형상으로 이미지화 해서 사용 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감히 싸웠다는 추상적으로 그 용감히가 어느 정도인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지만, 호랑이 처럼 싸웠다는 이미지적으로 용감히가 어느 정도인지 그림이 그려지면서 상상이 가능해 진다.

시에서 많이 사용되는 추상어가 아마 그리움, 외로움, 그대, 고독, 등 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저 막연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겪고 살아왔기에 시에서 이 추상어가 구체적 형상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감상 하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해석 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이해를 한다

그러다 보니 시인의 시상과 독자의 시상이 엇갈릴 때가 있다.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 추상어 사용은 반드시 계량화 또는 형상화 해서 독자가 그 형상을 상상으로 크기나 형체를 그려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친 것으로 본다.


비 오는 날 소묘 / 이근모


나는 한 줄기 외로운 비

외로움이 너무 커

수만줄기 소낙비가 됩니다


마음 속 그대 몰래 열어놓은 틈새로

그리움이 그리움을 씻는지금

빗소리에 잠식당한 영혼의 나래가

의지와는 무관하게 옷을 벗습니다


이 빗물 그저 그리움에 우는

아프지않은 눈물이었으면 합니다

알몸 같은 눈물이

고독의 소리와 섞이는 지금

온몸을 돌고돌아

그대의 가슴에 파고듭니다


적셔주는 들녘 땅심을 어루만져

향기로운 흙가슴의 고독일지라도

결코 외롭지 않을 사랑으로 눕습니다


사람아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비의 가슴 헤집혀

하늘은 비의 핏물을 퍼붓는데

그리하여 나는 피눈물을 줍는데


그리움을 보고 외로움을 보고

짝사랑이라고 말 한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 벗은 나는

어두운 빗소리의 긴 터널을 통과하는

또 하나의 길에서 고독을 태웁니다

이 그리움 한 줌 재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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