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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태도와 사물을 보는 눈


#문학강의


#시작태도와 사물을 보는 눈

이근모(시인)


1.서

주제와 관련하여 시작태도라 함은 시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시인의 사물을 보는 눈이라한다.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에 따라 사물을 보는 눈도 달라지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형상화된 그림이 바로 이미지인 것이고 이 이미지는 바로 마음의 그림이 되는 것이다. 하여 이미지와 마음의 그림에 대하여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해 보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시어의 칭작과 이미지를 그리고 느끼는 침잠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2.이미지, 마음의 그림

이미지는 심상, 영상의 뜻이다. 음악성이 중시된 읊은 시에서 시각성이 중시된 보는 시, 회화시, 즉물시, 객관시, 이른바 모더니즘 계통의 Imagism 시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인데 마음의 그림(mental picture)을 그려주는 수법이다. 사랑, 고독, 슬픔, 등은 모두 추상적 관념어로서 구체적 형이나 색 감각이 없다. 이러한 관념어로 시를 쓸 경우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을 가져다 표현해야 실감이 난다.


A) 사랑은

공원 오후의 벤치에 홀로 앉아

낙엽이 지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눈이 내리는 창가에 기대어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다.


B) 저토록 하늘이

파랗지만 않았더라도

난 영 그리움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저토록 강물이

소리내어 울지만 않았더라도

난 영 슬픔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위의 싯구는 사랑, 슬픔, 같은 구체적인 모습이 없는 관념어를 ‘낙엽이 지는 소리’ ‘ 눈이 오는 소리’ ‘파란 하늘’ ‘소리 내어 우는 강물’을 객관적 상관물로 구체화시켜 형상화 시켰다. 그야말로 모양이 없는 마음에 형태를 주어 마음의 그림을 그려 준 것이다.


A) 가난이야 한 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 보고

지애비는 지에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 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히 끼일 일인 것이다.


-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B) 성한 육신에

비록 누더기 같은 가난을 감고

이날 이 때까지

알량하게 살고 살아가지만

맑고 의젓한 우리 마음에사

설마 그 검은 구름장이

어디가고 감히 범할 수야 있겠는가?


- 신석정의 저 무등같이


C) 아아 무등산 고여도 넘치지 않는 바다

아아 무등산 죽음의 허리에 눈뜨는 불씨

아아 무등산 끝끝내 끝까지 가득하던 산


- 김종의 무등산


D) 머리 푹 숙이고

인생 고갯길 고달파 할 때

땅이 꺼지도록

한 숨 지을 일 있을 제

말없이 뒤에 선

어머니 그 그림자 같은 것

그윽히 바라보는

아버지 눈짓 같은 것


- 안정환의 무등의 눈 빛


위에 인용한 4편의 시들은 한결같이 무등산을 소재로 하였으되 그 시작태도가 다 다르다.


A)는 무등산을 관조적 입장에서 본다. 달관이나 초극의 자세로 현실의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려한다. 무등을 통해 현실적 고난과 어려움을 극복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관조이자 달관이다.


B)는 무등산을 준엄한 역사적 심판자로 내세워 자기 자신의 비판적 의식을 얹는다.


C) 도 B)와 같이 무등산을 역사적 증언자로 내새워 그 준엄하고 열렬한 우리들 시정신의 대행자로 삼는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같은 시도 그런 예이다.


D)는 부모나 연인처럼 감정이입 시켜 의지하려 한다. 각자 무등산을 제재로 하였지만 이렇듯 시작의 태도와 바라보는 눈이 시인 마다 다름을 알 수 있다.



3. 시어의 발견

시는 언어 예술이니까 언어를 아름답게 다듬는 기술자다. 언어의 연금술사. 언어의 장인(匠人) 언어의 건축이란 표현이 바로 언어예술에 대한 비유이다. 그러나 시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굴러다니는 속세의 말을 가져다가 갈고 닦아 옥을 만드는 것이다. 언어는 사전적 뜻으로 쓰일 때 외연적 언어(denotative language)라고 하고 함축적 의미로 쓰일 때 내포적언어(connotative language)라고 한다. 시의 언어는 정서적 의미나 내포적 의미로 쓰이는 시인만의 언어이다.


A) 가을은

술보다

차 끓이기 좋은 시절.


갈가마귀 울음에

산들 여위어 가고


씀바귀 마른 잎에

바람이 지나는,

남쪽 11월의 긴긴 밤을


차 끓이며

끓이며

외로움도 향기인 양 마음에 젖는다.


- 김현승의 무등차


외로움이란 단어는 우리 말 사전 가운데 평범한 하나의 형용사이다. 그러나 시인이 적소에 사용하여 향기로운 단어로 변해 있음을 본다. 시안(詩眼)이 있다고 하는데 이 시에서 외로움이 그런 역할을 한다.


B)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여기서 역겹다는 逆 +겹다>로 어의 형성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주 싫다의 뜻인데 직역하자면 구역질날 정도로 싫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오직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란 시를 위하여 생겨난 말이다. 다른 말은 대체할 수 없다. 유일어가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C)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가마귀 같이


- 김현승시인의 가을의기도


위의 시 끝 행은 호올로 있게 하소서에 나타난 고독한 자태를 구체화시킨 객관적인 상관물로 이미지이다. 백합의 골짜기나 굽이치는 바다는 젊은 날의 화려한 꿈이나 격정 정열을 나타내는 구체적 사물이다.


4.관조와 침잠

관조란 사물을 순 객관적인 입장에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태도이다. 장차 주객이 일체가 되고 침잠의 경지에 이르러 자아가 객체 속에 동화되기도 한다. 자연관조라 할 때 자연 속에 몰입하여 그 일부가 되며 침잠의 경지에 가서 망아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모든 시작 태도는 사물을 순수하게 관조적 입장에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현실적 이해관계나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보면 그 사물의 순수성을 감지할 수 없다. 또한 분수에 맞게 자기마음을 비움으로써 맑고 깨끗한 명경지수가 되어야 아름다움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이다. 가령 무등산을 제재로 시를 쓴다할 때 3가지 정도의 시적 자세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무등산을 관조적 입장에서 보는 태도다. 둘째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현실 비판적 입장에서 보는 태도다. 세 번째는 어버이나 가까운 님처럼 감정이입의 자세로 대하는 입장이다.


무등산 여인 / 이근모


나는

한 잎의 여인입니다


그대 영혼 숨쉬는 산마루에

오늘도 나는 서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신을 맞이하고

당신님 아니 오시는 날은

목이 긴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을 굴립니다


오늘처럼 화창한 봄이면

송화 가루 날리는 봄바람이

온 산을 애무합니다


나를 찾던 당신의 발자국이

오늘따라 그립고 그리워

봄바람 애무를 당신님 배낭에

담아 드리고저

풀잎 눕혀 산길을 열어놓습니다


당신 외로울 때

당신 슬플 때

언제나 나를 찾아오소서

그런 당신 포근히 감싸오리다


내 이름은 무등산

한 잎의 여인입니다.


(자료출처 문병란 시인의 시 창작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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