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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피부에 말괄량이 아가씨(수필)

검은 피부에 말괄량이 아가씨(수필)



                 이현우



  밤 하늘에 별들도 잠이 든 흐리고 쓸쓸한 차가운 겨울 날, 추적 추적 내리는 빗줄기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비닐우산 위로 또당또당 두드리며 안긴다

추위을 달래기 위해 들어간 조그만 한적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는 삭삭한 아가씨 친절하게 인사를 건낸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따뜻한 걸로요"  " 스틱과 설탕,용기는 옆에 있으니 빼서 드세요"  따뜻한 목소리 얼어붙었던 마음 훈훈하게 녹인다

모두가 잠은 적막한 밤,  향긋한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고 스틱으로 저으니 부드러운 종이컵 사이로 둥둥 지난 기억들이 떠오른다

지난 날 미군부대앞에서 제법 큰 학원원장을 했었다

결코 쉽지 않았던 시간들 이였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에 있던 친척들의 초청으로 대학교수 꿈을 펼치기 위해 잠시 머물러야 했던 미군부대 기지촌, 나는 그곳에서 미국아이들과 한국아이들을 위한 영어학원,음악학원,음악카페등 여러 일을 하게 되었다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겠다는 꿈은 모두 잊은 채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처음에 학원은 너무도 잘 되었다 4층 건물을 통채로 임대하여 작은 학교처럼 운영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족한 나에게 참 많은 친구들이 있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특히 그 중에도 미군이었던 숀 탐슨, 킴벌리는 친형제처럼 늘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용기와 힘을 준 천사들이였다 어느 날이였다 미군부대에서도 꽤 유명했던 우리 학원에 보기에도 말 안듣게 보이는 거친 야생마같은 흑인소녀가  원장실에 들어왔다  영어선생이던 아내는 상담을 하기 시작했다 미군부대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대장급 계급이였던 고급장교인 어머니, 장교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미소와 교양이 넘치는 멋진 여성이었다  난 지금도 흑인여성이였지만 말 안듣는 사춘기 야생마 딸에게 환한 미소를 띄우며 속을 썩여도 씨익 웃으며 다정하게 감싸주는 고운 미소를 본 적이 없다 해마다 수 백명씩 영어,음악을 지도하는 작은 학교였던 우리 학원에서도 에이샤는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사고뭉치였다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난다 피아노 선생님 개인레슨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니며 놀던 아이 결국에는 지도하시던 선생님도 백기를 들었다

"원장님, 이 아이는 도저히 가르칠 수 없으니 어머님께

말씀해주세요" 너무 기가 막히고 힘들었다 레슨시간에 엉뚱하게 도망다니며 학원앞 떡복기가게에 가서 놀던 아이, 어머니는 부대장,미국에서 인정받는 엘리트 훌륭한 엄마에게 어떻게 이런 딸이 있단 말인가? 날마다 학원에서 사고치는 아이,에이샤 정말 답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은 쌓여만 갔다 그런데 어느 날이였다 매일같이 학원을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우던 에이샤가 엄마가 준 돈이 잃어버리고 몹시 배가 고팠나보다, .학원앞 떡복기가게를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이하게도 미국아이들이 우리나라 떡복기를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매콤한 쌀케익'이라며  줄을 서서 기다려 먹기도 하고 미군부모들이 오면 사서 가기도 햤다 그 날은 배고픈 에이샤가 돈이 없었는지 아이들이 먹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입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이다 속으로는 말썽장이 잘되었다, 생각도 들었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주머니속에 있는 동전을 주며 에이샤에게 건냈다 처음에는 주저주저 하던 에이샤, 내민 손 위에 동전을 받아 뛰어가는 모습이 날쌘 짐승같다 환하게 웃으며 입가에 양념을 묻히고 맛있게 떡복기 한 컵을 해치운다 그리고 어눌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원장님" 인사를 한다 그 동안 냉냉했던 우리 사이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원생들을 집에까지 태워주던 나는 미군자녀들도 레슨을 마치면 학원버스로 직접 태워주곤 했었다 물론 미군들이 직접 퇴근할 때 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부대장이던 에이샤 엄마는 부대일 때문에 바빴기에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에이샤는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늘 학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장난을 치곤 해서 선생님들의 골치덩어리였다 그런데 검은 야생마가 변하기 시작했다 떡복기사건이후 집에 데려다 줄 때까지 너무도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하고 개인레슨까지 받으며 날마다 실력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변화였다 정말 검은 야생마가 경주마가 된 것이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속으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에이샤의 어머니도 더욱 학원을 신뢰하기 시작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해마다 열리는 대학교 피아노콩쿨에 우리 피아노학원에 아이들과 나간 에이샤, 언어도 틀리고 환경도 틀린 한국땅에서 놀랍게도 흑인 특유의 강인함과 유연함으로 강한 터치가 필요한 베토벤곡으로 대상을 받게 된다 그날에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당시 찍은 사진들을 한 번씩 볼 때마다 감동의 눈물이 난다 그 뒤로도 에이샤는 전국대회에서도 큰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도 또래 아이들보다 강한 힘과 부드러운 터치 강약조절이 좋다고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부대에서 하는 행사에  부대장이였던 엄마는 그랜드피아노를 가져다가 본인의 자랑스런 딸 에이샤에게 미국국가를 연주시키고, 대한민국 애국가를 연주하게 했다 그 날에 감동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미군 부대장이 우리나라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의 국가를 자신의 자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곡을 암기하게 만들고 많은 부하들 보는 앞에서 연주하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큰 감동과 보람을 느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기념사진 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말없이 흘렸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내 옆자리 앉아 수다를 떨던 말괄량이 흑인 소녀 에이샤, 천방지축 학원계단을 뛰어다니던 야생마, 떡복기를 먹으며 맵다며 후후거리며 웃던 아가씨, 학원버스 운전 할 때면 내 목을 안고 웃던 천진하던 소녀 이제는 어느덧 숙녀가 되어있겠지 말도 틀리고 피부도 달랐지만 그렇게 속을 썩이며 애태우던 흑인아가씨, 내가 치던 피아노소리가가끔씩 듣고 싶어지는구나 에이샤, 이제는 어여쁜 숙녀가 되어 있겠구나  겨울비가 쓸쓸하게 내리고 밤하늘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외로운 밤이 찾아오니 옛날 생각나는구나 에이샤, 미국의 어느 하늘 아래에서 멋지게 차려입은 이브닝드레스에 멋진 그랜드피아노 앞에 앉아 힘차고 아름다운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내 생애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너의 빛나는 연주

한 번 듣고 싶구나,  귀여운 말괄량이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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