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코딩 시대의 도래: SaaS 모델을 위협하는 생성형 AI의 진화"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버지니아대학교 이현우 교수
1. SaaS의 전성기, 그리고 변화의 조짐
지난 10여 년간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모델로 평가받았던 SaaS(Software as a Service)는 다양한 기업 환경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슬랙(Slack), 드롭박스(Dropbox), 세일즈포스(Salesforce)와 같은 대표적 SaaS 플랫폼은 커뮤니케이션, 문서 공유, 고객관리 등 조직의 핵심 업무에 필수적인 서비스로 자리잡았습니다. SaaS는 복잡한 설치 과정 없이 인터넷 연결만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에 효율성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제공하며 기존 온프레미스(On-premise) 시스템을 대체해왔습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새로운 기술 트렌드가 이 판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바로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라 불리는 AI 기반 코딩 도구들이 주도하는 변화입니다. 자연어 입력만으로 웹사이트나 내부 앱을 생성할 수 있는 이 기술은, 비개발자에게도 손쉽게 소프트웨어 구축 능력을 제공함으로써 SaaS 모델 자체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발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기업의 핵심 운영 전략에 있어 ‘Build or Buy’라는 오래된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바이브 코딩: 개발의 민주화와 내부 앱의 르네상스
‘바이브 코딩’이란, AI 코딩 도구를 활용해 자연어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GPT 계열의 언어모델 기반 AI가 코딩 문법을 해석해 자동으로 코드화하는 기술을 중심으로 합니다. 커서(Cursor), 윈드서프(WindSurf), 볼트(Volt), 러버블(Luvable) 같은 툴이 대표적인 예로, 현재 수많은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이를 실무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해커톤 행사에서 Netlify의 데이터는 이러한 변화를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플랫폼에서 매일 1만 건이 넘는 웹사이트가 AI 도구를 통해 생성되고 있으며, 10초에 하나씩 신규 앱이 탄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들 대부분은 외부 고객용이 아닌, 회사 내부용 도구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HR, 교육, Q&A 시스템은 물론, 수익 분석, 가격 책정, 마케팅 대시보드까지 바이브 코딩으로 빠르게 생성됩니다. 이는 기존 SaaS 서비스들이 제공하던 기능을 내부에서 직접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SaaS 기업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3. 기업 내부 개발 역량의 재편성과 직무 변화
AI 코딩 툴의 확산은 개발자의 지형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복잡한 앱 개발을 위해 고비용의 전문 개발자를 채용해야 했지만, 이제는 일정 수준의 바이브 코딩 이해만으로 비개발자도 기본적인 소프트웨어를 생성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는 내부 인재 재교육, 직무 전환, 신규 채용 기준 변화 등 인사 시스템 전반에 걸친 구조 조정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바이브 코딩 가능자’를 기본 요건으로 채용 공고를 올리는 기업이 등장하고 있으며, 사내 교육 프로그램에 AI 코딩 도구 활용 훈련이 포함되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직접 만드는 CRM’이 더 직관적이고 빠르며, 유지보수 비용도 낮아진다는 인식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유명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비츠의 마틴 카사도가 직접 CRM 앱을 만들었다는 소식은 그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비직관적인 UI를 쓰느니, 차라리 내가 AI로 만들겠다”는 그의 발언은 단지 개발 편의성에 대한 의견이 아닌, 새로운 산업 생태계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4. SaaS의 위기: 구축이 구매를 넘어서는 순간
SaaS 모델은 ‘구독’이라는 방식으로 매달 반복적인 수익을 창출해왔습니다. 기업 입장에선 도입이 쉽고 유지가 간편하며,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는 점에서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이브 코딩 도구로 맞춤형 내부 애플리케이션을 빠르고 싸게 개발할 수 있게 되면, SaaS는 과연 얼마나 경쟁력이 남을까요?
네트리파이의 CEO 마티아스 빌만은 “세일즈포스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일즈포스는 핵심 CRM 시스템은 유지하겠지만, 그 위에 구축된 부가 기능들은 AI 도구로 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입니다.
컨설팅 회사 앨릭스파트너스는 이를 좀 더 강하게 표현합니다. “SaaS와 작별하라(Farewell, SaaS)”라는 보고서를 통해 100여 개의 중견 SW기업들이 이 흐름에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특히 기존 SaaS 도입 비용보다 낮은 비용으로 사내 도구를 만들 수 있다면, 기업의 선택은 점점 명확해집니다.
5. 미래를 향한 이정표: AI 코딩과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탄생
현재 AI 코딩은 아직 완전하지 않습니다. 프로토타입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선 보안, 권한 관리, 인증 체계 등 인프라 스택이 필요하며, 예상치 못한 에러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의 개입도 여전히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기술은 진보하고 있습니다. 자체 애플리케이션을 관리·점검할 수 있는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AI 코딩과 DevOps가 통합된 환경도 발전하고 있습니다.
결국 몇 년 후, 누군가가 외주로 홈페이지를 맡긴다고 하면 “그걸 왜 사?”라는 반응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기업은 외부 SaaS보다 자신만의 맞춤형 도구를 선호하게 되고, 사내 인력은 개발 능력을 기본 소양으로 갖추게 됩니다.
바이브 코딩은 단순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업의 전략, 사람의 역할,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근본부터 재구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 아주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맺음말
SaaS 모델이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주도권은 점점 사용자로, 현장으로, 자연어를 다루는 ‘비개발자’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AI 코딩이 가져올 디지털 권력의 재편, 그 시작은 SaaS의 흔들림에서부터 감지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