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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가 주도 AI 전략: 미국과의 경쟁 구도

중국의 국가 주도 AI 전략: 미국과의 경쟁 구도와 시사점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1. 서론: AI 기술 패권 경쟁의 서막


현재 세계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둘러싼 치열한 패권 경쟁 속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AI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간 주도 AI 개발 방식과 대비되는 중국의 국가 주도 AI 전략은 그 독특한 특성과 잠재력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랜드 연구원의 카일 찬 연구원이 지적했듯이, 중국은 "칩과 데이터 센터에서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AI 기술 스택 전반에 걸쳐 국가적 지원을 적용"하며 AI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본고에서는 중국의 이러한 국가 주도 AI 전략의 구체적인 내용과 특징, 그리고 그에 따른 효과와 한계점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논하고자 합니다.


2. 중국 AI 정책의 핵심 기조: 국가 주도의 전방위적 지원


베이징의 AI 정책은 중국 기술 기업들이 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는 미국에서 구글, 메타와 같은 민간 기업들이 데이터 센터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정부가 AI 인프라 및 하드웨어 자금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됩니다.


2.1. 인프라 및 하드웨어 투자


중국 정부는 데이터 센터, 대용량 서버, 반도체 등 AI 인프라와 하드웨어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AI 기술의 근간을 이루는 물리적 기반을 국가 차원에서 확고히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2014년 이후 반도체 산업 육성 기금에 약 1,000억 달러(약 139조 1,000억 원) 가까이를 투자했으며, 지난 4월에는 신생 AI 스타트업에 85억 달러(약 11조 8,200억 원)를 추가 배정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투자는 중국 AI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2.2. 인재 양성 및 연구 개발 집중


국가는 엔지니어링 인재를 집중시키기 위해 알리바바, 바이트댄스와 같은 대형 기술 기업과 협력하여 최첨단 AI 연구가 이루어지는 연구소 네트워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간의 혁신 역량과 국가의 전략적 지원을 결합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항저우의 '코더촌'과 같은 사례는 지방 정부가 주도적으로 인재 집적지를 조성하여 중국 AI 인재 모집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노력은 AI 기술의 핵심인 인재 확보와 연구 개발 역량 강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합니다.


2.3. 스타트업 육성 및 생태계 조성


은행과 지방 정부에 대출을 확대하도록 지시하여 수백 개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정책은 중국 AI 생태계의 다양성과 활력을 증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AI 스타트업 딥 프린시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의 초기 연구 비용 지원(10~15%)은 스타트업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또한 항저우로 이전한 이 기업이 구로부터 250만 달러의 보조금을 받고, 지역 공무원이 사무실 공간과 직원 숙소를 직접 마련해 주는 등 지방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스타트업의 초기 정착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제공합니다. 이는 단일 기업의 성장을 넘어 전체 AI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2.4. 대규모 데이터셋 구축


중국은 정부 주도로 대규모 데이터셋을 일찌감치 구축하여 AI 기업들이 빠른 속도로 모델을 구축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했습니다. 관영 언론 기사를 기반으로 한 코퍼스를 비롯하여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이미 구축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력과 검열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으며, 데이터 확보에 있어 다른 국가들이 갖기 어려운 이점을 제공합니다. 양질의 대규모 데이터는 AI 모델 학습에 필수적이며, 중국 AI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3. 국가 주도 AI 전략의 양면성: 효율과 비효율, 그리고 경쟁


중국의 국가 주도 AI 개발 방식은 분명한 장점과 동시에 간과할 수 없는 한계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3.1. 비효율성과 민첩성 부족


국가 주도의 사업 방식은 빠른 기술 변화에 제때 대처하기 어렵다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챗GPT'나 '소라'가 등장했을 때 중국이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거의 1년이 지나서야 따라붙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력이 뒤쳐진 문제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원 전략 자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랜드 연구원의 카일 찬 연구원이 지적했듯이, "AI는 철강이나 조선처럼 기술이 상당히 안정적인 기존 산업과는 다르다." AI와 같이 기술 변동성이 큰 분야에서는 정부가 어디에 투자하고 자원을 배분할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3.2. 제살깎기식 경쟁과 '100 모델 전쟁'


정부 지원으로 우후죽순처럼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제살깎기식 경쟁을 펼친다는 점도 부각됩니다. 이를 '100 모델 전쟁'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제한된 자원과 시장을 놓고 과도한 경쟁이 발생하여 전반적인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경쟁은 혁신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중복 투자와 자원 낭비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3.3. 반도체 산업의 한계와 오픈 소스 전략


이제까지 정부 지원금의 상당 부분은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에 집중되었습니다. 화웨이 칩을 집중 생산하는 SMIC는 아직 TSMC와 같은 세계적인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엔비디아 칩 수출을 완전히 금지하더라도 중국 AI 산업 전체가 중단되지 않을 바탕을 만들어주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이는 핵심 부품의 자급자족을 통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려는 중국의 전략적 목표를 반영합니다.


또한, 지난해부터 중국은 오픈 소스 모델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부족한 리소스를 커버하기 위해 전 세계 개발자들의 역량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틱톡과 같은 기업의 알고리즘 해외 유출을 엄격히 금지했던 과거의 행보를 고려할 때, 기술을 완전히 공개하는 오픈 소스 전략이 대규모로 진행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 결과, 딥시크,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화웨이는 물론, 폐쇄형을 고집했던 바이두까지 오픈 소스 전환을 선언했으며, 이제는 오픈 소스의 대명사이던 메타를 밀어낸 상태입니다. 이는 미국 AI 기업들이 중국 기업의 첨단 모델 접근을 차단했을 때 중국 개발자들이 '오픈 소스로 전환하면 그만'이라는 반응을 보인 배경이 됩니다.


3.4. 미국과의 갈등 심화


이러한 중국의 오픈 소스 전환은 미국 AI 기업들로 하여금 중국 모델의 국내 사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중국 모델이 결국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에 있으며, 미국 기업들이 이를 돕는 것은 자국의 안보와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현재 중국은 첨단 모델 분야에서 미국보다 몇 개월 뒤쳐진 것으로 평가되지만, 빠른 속도로 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술 격차의 축소는 미중 AI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입니다.


4. 시사점 및 우리의 선택


중국의 국가 주도 AI 개발 방식은 공산당 중심의 특수한 체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다른 국가가 쉽게 벤치마크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 주도 방식이 가져오는 효율성(집중적인 투자, 인재 및 데이터 자원 활용)과 비효율성(민첩성 부족, 과도한 경쟁)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간 자본 중심의 미국 AI와 정부 주도의 중국 AI가 각자의 강점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어떤 선택을 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4.1. 기술 주권 확보의 중요성


중국이 SMIC 투자를 통해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려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핵심 AI 기술 및 인프라에 대한 기술 주권 확보에 주력해야 합니다. 특정 국가나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인 연구 개발 역량을 강화하여 글로벌 공급망 불안정성에도 흔들리지 않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4.2. 민간과 정부의 협력 모델 모색


미국과 중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민간의 혁신 역량과 정부의 전략적 지원은 AI 산업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민간의 창의성과 시장의 역동성을 존중하면서도, AI 인프라 구축, 핵심 인재 양성, 대규모 데이터셋 구축 등 민간이 단독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해야 합니다. '코더촌'과 같은 인재 집적지 조성,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지원 확대 등 중국의 성공적인 모델에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4.3. 개방형 혁신 생태계 구축


중국이 오픈 소스 모델에 집중하는 것은 제한된 리소스를 극복하고 전 세계 개발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혁신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입니다. 우리나라도 특정 기술이나 기업에 종속되지 않는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여 국내외 연구자 및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협력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이는 빠른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글로벌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4.4. 윤리 및 사회적 책임 고려


중국의 국가 주도 AI 개발 방식은 방대한 데이터 활용과 정부 통제라는 특성상 검열 및 프라이버시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AI 기술의 발전은 윤리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우리나라는 AI 기술 개발과 활용에 있어 투명성, 책임성, 공정성 등 윤리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AI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5. 결론: 한국형 AI 전략의 모색


미국과 중국의 AI 경쟁 구도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민간 주도의 혁신과 국가 주도의 지원 중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요? 정답은 없으며, 각 국가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지향점에 따라 최적의 모델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국의 국가 주도 AI 전략은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술의 민첩한 변화 대응과 혁신적인 생태계 조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민간 주도 전략은 혁신과 효율성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지만, 특정 기업의 독점 문제나 국가적 지원의 부재로 인한 인프라 격차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양국의 장단점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의 강점과 한계점을 고려하여 한국형 AI 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특정 모델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구조, 인재 역량, 사회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면서도, 국가가 마중물 역할을 하여 AI 산업의 질적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민관이 협력하여 대한민국의 미래 AI 청사진을 다시 그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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