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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 May 09. 2022

# 01. '망삘'

종이 이야기 # 1

 

 화면을 채운 인물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째려봤다.

깔끔한 스케치를 위해 러프를 먼저 하고, LED 라이트 패널을 켠 후 수채화 전용지에 옮기는 두 단계의 정성을 들여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구도'라는 거창한 손님은 늘 까탈스럽게 군다. 이목구비에 혹은 머리카락에 정신을 쏟다 보면, 어느덧 어중간한 화면 한 구석 애매하게 서지도 앉지도 못한 그림이 뻘쭘하게 날 쳐다본다. 아아, 전체적으로 0.5cm만 옆으로 살짝 옮기면 좋겠다 , 아니, 전체적으로 90% 축소시킨 후 다리까지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더도 덜도 아니고 요기 정수리 머리카락들만 픽셀 유동화로 눌러주면 좋겠다, 등등 머리에서는 여러 아이디어가 부질없이 돌아다닌다.


레이어 기능이 없는 종이 위에서 뭔가를 그려나가는 것, 그 화면을 채워나가는 것이 이토록 고도의 작업이었던가. 한정된 지우개질로 구도를 수정하기는 어렵다만, 그래도 이목구비가 '내 눈에' 비틀려 보이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다. 지우개의 가장 깨끗한 부분을 칼로 잘라 접촉 면적을 최소화시킨 후 살살 지워가며 리터칭이라기에도 민망한 수정을 세심하게 더하지만 사실 그때 즈음이면 먹구름이 몰려온다. 망했다.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이라는 신세계를 영접하며 이제 내 취미 그림에 종이는 발 디딜 곳이 없으려니 했다. 학생 시절 졸업하면서는 그 흔한 연습장도 더는 쓸 일이 없었으니, 아무 라인도 없는 맨 종이는 출력할 때 쓰는 A4 용지 외에 만날 일이 없었다. 크로키를 위한 연습장은 종이 느낌까진 아니었다.

성인 취미 미술을 하면서 새롭게 눈을 뜬 것은 무궁무진한 종이의 세계.


물감은 처음에 돈이 든다.

일반 수채화 팔레트 한 칸 가득 채운 물감을 다 쓰려면 정말 부지런하게 그려도 1년 넘게 걸리리라.   

반면 종이는 극단적으로 가성비가 떨어진다.   

누군가 그랬지, 음악을 하면 집이 한 번에 망하고, 미술을 하면 천천히 망한다고. 수채화의 경우 그 말의 원흉은 종이 같다. 중목과 황목의 요철 차이는 얼마나 날까, 저 중목과 이 중목은 뭐가 다를까 등등, 호기심은 언제나 하늘을 찔러 문제다.


100% 코튼으로 만든 종이는 평균적으로 A4 사이즈, 20매 안팎으로 대략 3-5만 원인데, 밑그림을 덮을 수 있는 유화나 아크릴/과슈 그림과 달리 수채화는 그림 한 장에 종이 한 장이다. 잘해도 종이 한 장, 망해도 종이 한 장이다. 그래서 연습 목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100% 셀룰로오스 종이를 선호하기 마련인데, 이미 마음과 눈은 저 먼 궁극의 세계를 그리고 있으니 성에 찰 수가 있나, 내 눈이 원수지.


종이는 가장 먼저 감각으로 와닿는 재료다.   

손으로 만져보면 바로 느껴지는 탓에 굉장히 직관적이다. 아르쉬의 빳빳한 느낌과 물랑두화의 폭신한 느낌은 손가락 끝만 스쳐봐도 선명하게 다르다. 당연히 연필과의 마찰력도 다르고, 그어진 선의 느낌, 붓 터치도 다르다. 그 모든 인상들이, 해당 종이 위에는 무엇을 그려 남기고 싶은지에 영향을 미친다. 손으로 그리는 '작업'으로써의 그리기는 어떤 종이에 그리고 싶냐,부터 시작된다.


왼쪽부터 아마트루다 수제 저널, 산도스 워터포드, 카디페이퍼. 모델은 오랜 기간 팬아트 그림질의 뮤즈(?)였던 서태웅(슬램덩크).


이탈리아 아갈로 사의 아마트루다 종이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세상에 이런 종이가 있을 수 있나, 이게 종이 맞나,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 은은한 미색과 섬세한 결, 300g 무게에도 불구하고 굽은 곳 없이 나긋나긋한 종이는 가히 컬처 쇼크급이었다. 맨 종이의 질감에서 '차분하고 우아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니, 내 감수성의 열일인지, 아마트루다 종이의 열일인지 모를 일이다만 내겐 그랬다. 그런가 하면, 인도에서 재활용 면직물로 만들어진 카디페이퍼는, 투박하고 이따금 거칠지만 테두리의 데클 에지가 자극하는 감성이 있다. 스프링 저널 형태인 산도스 워터포드는 밀도 높은 탄탄함과 텍스처 덕분에 붓 터치가 멋스럽게 남는다. 이들 종이 위의 그림은 그래서 다른 온도 감을 지니고, 같은 톤의 같은 인물이라도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아마트루다 수제 저널과 카디페이퍼의 경우, 해당 종이를 사두고도 몇 개월은 훌쩍 지나서야 비로소 끄적거릴 용기(?)를 냈을 만큼, 내게는 귀하신 몸들이다. 캔손 헤리티지는 아직도 개봉을 못 뜯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내가 아무리 정신 바짝 차리고 정갈하게 책상에 앉아, 저 고상한 종이들 앞에 경외심을 갖고 연필을 집어 든다 한들, 결국 그림 그리는 손은 내 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몰아서 그리는 취미 그림은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실력 탓으로, 여름날 모기 마냥 들썩이는 '기복'이 극성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망하는 그림은 없댔다, 그만둔 그림만 있댔다, 고집스럽게 버티며 색을 칠하고 붓을 놀리다, 마지막에 이르러 비장한 심폐소생술을 한다. 마루펜으로 불분명한 형태들을 정리하며 인상을 좌우하는 눈썹을 다듬고, 눈동자를 그리고, 표정을 위한 입매를 그리고, 문자 그대로 '메이크업'을 한다. 눈물겨운 완성작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말끔히 정리한 책상 위에서 바라보며 깨닫는다. 이 고양이는 언제부터 머리가 커졌지?? 이 캐릭터 허리가 없다?? 참 공들여 망쳤네.


그렇게 한 번 거하게 삽질한 후, 한동안 생업살이로 공사다망하다 오랜만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자 종이를 대하면 마음은 이미 완성작 두 어 장을 나란히 펼쳐보는 것 같아,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스케치를 들어간다. 그러면 또다시 '망하려나'가 시작된다. '연습이다' D.S. 달 세뇨(Dal Segno)에 이른다. '망했다' 세뇨(Segno)로 돌아가시오. 아니, 도대체 Fine는 언제 나오나??? 오늘도 공들이셨습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망할 거라 생각해서 망했을까?








 '그림으로 보고 싶은 욕망'은 '그림이 되지 않는 불편'과 상극이다. 그 불편감을 대하는 유연함이 내겐 없었다. 종이 위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없는 그 불편감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 내내 따라다니고, 그리고 난 이후로도 비싼 종이 위에 야무지게 남아 있다. 떨쳐낼 수 없는 그림자와도 같은 그 불편감-망침에의 느낌은 사실 '그리기'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수한 삽질 끝에 이해했다.   

무뎌지는 게 아니다. 익숙해지는 거다. 이것도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렇게 지나가면, 중요하지 않은, 과정의 한 순간이 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그 지점부터 나아가려는 것, 그 상태에서 변화를 상상해보는 것.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보는 것이 여기에 담겨 있다. 기술은 시간과 연습이 쌓이면 어쨌든 나아진다. 중요한 건 종이 위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상상하고 활용하려는 의지. 그러기 위해 내게 가능한 것들을, 가능하리라 여겨지는 것들을 얼마나 찾아서 끄집어낼 수 있겠느냐-.


왜냐하면-.   

매사, '그림이 되지 않는 불편'에 더 집중해왔던 탓으로.   

바로 그 지점에서 직성을 풀어야만 앞으로 혹은 옆으로 옮겨가는 건, 근성이 아닌 집착이었다.


종이가 아무리 비싸도 한 번뿐인 내 인생보다 비쌀까, 사실은 벌벌 떨면서 자꾸 시계를 되돌려 완벽한 형태와 선을 뽑아내려 했고,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써의 수정에 일단 달려들었고, 아예 다른 판으로 옮겨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 다른 레이어들을 숨기고-. 불필요하게 갈아 넣었던 에너지와 감정이, 과하게 매달렸던 관계 혹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나 말이다. '그럴 수 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는 그 과정에서 홀로 삭여야 했던 뻘쭘함들, 어중간한 헛헛함들, 묘한 허무감들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감정의 잔상에 유독 예민한 이 놈의 삐딱한 성질머리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맹탕인 말이 없더라. 집착은 스스로 끊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데 이거야말로 세뇨/달 세뇨, 공들이셨습니다의 연장이었으니.

 

지금 여기, 이 삶의 공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이 상태에서 변화를 상상해보는 것, 상상해볼 무언가를 노력해 찾아보는 의지의 뇌야말로, 잔뜩 팽창된 감정의 뇌에서 바람을 뺄 수 있으리.

 

아직 난 내 인생의 전체를 보지 못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잠깐 엉성한 것 같은, 이 '구도' 째려보기는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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