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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 May 28. 2022

# 02. 남김에 대하여

종이 이야기 #2



  종이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오래도록 곱씹은 고민은 사실 따로 있었다.

이 모든 행위의 결과물이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며 남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것이다.


300g-340g 종이들은 작아도 두껍고 빳빳하다. 이들이 쌓이면 만만찮은 공간을 차지한다. 반가울 일일까, 부담스러운 일일까.


  스프링 저널은 연습장처럼 남으니 그냥 책꽂이에 꽂아둬도 무방하다. 하지만 4면 블록 수채 패드는 완성된 그림을 낱장으로 떼어내야 한다. 어느 정도 두께와 무게가 있는 종이다 보니 몇 장만 모여도 클리어 파일첩이 두툼해진다. 그냥 책꽂이에 꽂아둬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스프링 저널도 20-30매를 다 채워 그리면 두툼해지긴 마찬가지라 책꽂이에서도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사실 '그림(작품)이 남는다'는 개념은 화실 작업을 했을 때부터 '골치 아플' 이미지로 만났다.

당시 나는 작은 종이에 수채화를 그리고 있어 그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마주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큼직한 캔버스에 아크릴화를 그리던 사람들은 매 작업이 커다란, 정말 커다란 캔버스 상태로 남곤 했다. 전시회를 위한 습작만도 몇 점인 저 캔버스들은 다 어디로 갈까. 다시금 나의 작은 종이로 돌아와 붓을 놀리며, 이제껏 '낙서'라 칭하며 애써 그 무게를 줄이려 했던 나는 사실 '남기는 것'에 인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몫으로 떨어진 음식부터 시작해서, 현재 이 생각들을 글로 '남기기' 위해 분투하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남김'이란 것은, 돌이켜보면 모든 일들, 행동들의 시작부터 따라붙는 질문이었다.


 취미 수채화를 시작하고, 규격화된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서, 손에 넣는 종이들은 제각각 다양한 사이즈였다. 얌전하게 4 제본 패드 안에 들어 있을 때는, 사각 귀퉁이가  맞아떨어지는  모양새가 그렇게 흡족했다. 하지만 완성  낱장으로 떼어내면, 엽서 사이즈부터 A4 사이즈까지, 180g부터 340g까지, 크기도 중량도 중구난방인 종이 뭉텅이가 부대끼기 시작한다. 같은 맥락에서 자유로운 데클 에지의 카디 페이퍼나 아마트루다 종이들은 말하기도 새삼스럽다. 그림이야말로 작업 과정을 묵묵히 곱씹으며, 종이 위를 채운다기보다는 시간을 채운다는 생각으로 몰입했으니,  같은 남김은 부산물에 불과한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의 작업 끝에, 후련하게 치워버리는 팔레트와 칙칙한 물통과는 달리, 망해도 잘해도 이고 져야 하는 종이  장이 그토록 무거울   뭘까. 특히나 무수한 덧칠로 어느덧 산으로  버린 채색화는  칙칙한 덧칠 탓에 더더욱 납덩이같다. 말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덩그러니 남은 그림은 참으로 많은 시선으로 나를 본다. 완성된 그림 앞에서 과정은 오롯이 작업자만의 비밀로 남는다.  전투적인 과정들과  끝의 창렬한 패배감이 엄습하는 그림을 남길 , 어쩌면 남김은 양보가 아닐까, 쓴맛을 다신다. 어떤 각도로 찍어도 종이 위의 인상이 남지 않는  카메라의 사진만 지우고, 물과 맞서느라 휘어버린 종이를 책꽂이  켠에 빳빳하게 끼워 넣는다. 언젠가  그림이 정말 너무 아쉽다면, 그리고 그때까지  그림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나의 시선이 지금처럼 여전하다면, 기회가 있겠거니, 기억도 추억도 아닌, 그냥 받아들이는 훈련의 일환으로 말이다.








  남김에의 인색함은 사실 부담과도 닮아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봤던가. 골드문트가 말했던가. 작품은 언제나 그 예술가를 부끄럽게 만든다는 말이 떠오른다. 감히 이 설익은 그림질에서 떠올리기엔 참으로 황송한 비유지만, 그리고 난 골드문트 같은 '찐' 예술가도 아닐뿐더러, 내가 만들어내는 것은 작품이라 부르기에도 망극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 받아들이고 털어버려야 할 것은 어쩌면 매 순간을 작품처럼 남겨야 한다는 강박이 아닐까. 같은 작가의 '황야의 이리'에서 모차르트가 브람스에게 그랬던가. 저자의 문제는 삶의 유머러스함을 받아들이지 못함이라고. 황송함과 망극함을 또 한 번 반복해 읊진 않겠다.         


  종이들이 저만큼, 저보다 더 많이 남아도 개의치 않을 수 있기를. '이만큼 그렸으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걸 그냥 남겨두는 건 바보 같은 게 아닐까' 기타 등등의 무수한 질문,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자문들을 구태여 타박하지 않고, 그냥 남겨둬도 괜찮음을 스스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되겠거니.


  재미있게도, 지금 브런치 창을 띄우고 두드리는 이 과정 또한 '남김'에의 작업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의 조각 글에 적어뒀던 계획과 달리, 어느덧 숱한 의심과 수정, 뭉텅뭉텅 잘라내는, 마치 종이 위의 지우개질과도 같은 수 차례의 재구상으로 인해 누덕누덕 기워져, 최초의 근사한 이미지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이 글을 끝까지 써서, 남겨두려는 의식적 행위 또한 훈련의 일환으로 받아들이면, 남김 그 자체에서 자유로워질 날도 오겠거니. '남김'이 더는 고민의 축에도 끼지 못하고, 그래서 남은 이것이 유머든 추억이든, 삶의 활력을 일깨워 줄 조각 하나로 품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함의 '현물'일 날이 오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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