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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 May 28. 2022

#0. 성인 발레를 등록했다

취미 발레 단상 # 00. 시작

 발레라는 단어를 머리에 품어본 지는 꽤 되었다.

허리 디스크와 거북목이 직업병인 분야에서도 나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날, 유독 발과 발가락의 불편감이 거슬려 살펴보니 아치(족궁)가 무너지려 하는 게 아닌가? 병원에 가서 병을 얻어온다고, 그날부터 나는 온몸의 갖은 불편들이 서럽기 시작했다. 딱히 절단난 곳은 없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여러 곳이 어긋나 굳어진 이 다발성 틀어짐(?) 몸뚱이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 봐줘야 하냔 말이다.


 이따금 피부의 수분감이 예전 같지 않고, 거울 속 민낯이 유난히 칙칙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도, 이 정도 상실감까진 아니었다. 뭐랄까, 피부의 노화는 돈과 시간을 들이면 어느 정도 가역적인 느낌이랄까. 반면, 몸의 노화는 비가역적 변화, 엔트로피 법칙처럼 살갗을 꿰뚫며 들어온다.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전공이 생물학인 마당에 유약한 정신 승리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허풍선을 떨진 않더라도, 이렇게나 얌전히 날 잡수시게, 노화의 번제물로 당할 수는 없었다. 인류 최대의 난제인 '늙음'이 이젠 내 인생에도 한몫 껴들고자 기웃거리는 마당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슬그머니 다가오는 그 애잔한 놈을 향해 볼썽사납게 대들다 한 번에 훅 가는 클리셰를 깰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건강하게 늙어간다면, 그렇게 내 몸의 시간을 꼭꼭 씹으며 더듬어 간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연륜으로, 아우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역사 속 누구누구들은 처녀의 피나 모유로 목욕도 했다는데, 이 정도면 아아, 훌륭하지 아니한가...?


 어쨌거나 그렇게 발레를 머리에 품기 시작했다. 유난히 다리가 천근만근인 날은 혼자 유명 발레 홈트 동영상을 보며 조금씩 동작을 따라 했고, 얼마 못 가 요가 매트에 따개비 마냥 달라붙어 헥헥대면서도, 저질 체력과 비루한 몸뚱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무엇보다 워낙 바닥을 달리는 유연성은 아주 작은 스트레칭 동작에도 가뭄의 단비처럼 반응했다. 전신이 무거워진 탓인지, 다리의 무게가 가뿐하게 느껴져 숙면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침이면 졸음과 피로가 덕지덕지 매달린 얼굴 부기도 가셔진 거다. 혼자서 어설프게 낑낑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효과가 좋다면, 제대로 배워서, 갖춰서 할 때의 효과는, 오오, 예측하기 어렵지 아니한가...?!


 그렇게 머리에만 기웃거리던 발레가 어느덧 진심으로 마음에 내려왔고, 자유 기간이 주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발레 학원을 두드렸다. 운동은 배워본 적도, 그 흔한 필라테스와 PT 도 해본 적 없는, 정말 문자 그대로 순수 운동 초보인 것도 모자라, 키 172cm의 뻣뻣한 막대기 같은 몸. 소싯적 체력장을 하면 유연성 테스트에서 마이너스가 뜨는 건 고사하고, 다리 뻗고 허리 세워 앉는 것도 세상 오만가지 상념과 싸우며 버텨야 하는 비루한 몸뚱이는, 첫 시작부터 타이즈와 레오타드를 갖춰 입어야 하는 발레 클래스 첫 시간에 처참하게 '털렸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나이 들자, 초심은 온 데 간데없고, 동작 하나에 죽네 마네 앓으며 돌아온 날 밤, 어디 절단 나지 않으려면 내가 내 몸을 지켜야겠다, 그러려면 알아야 한다, 배워야 산다 중얼중얼 거리며 시작한 성인 취미 발레.


어느덧 한 달이 지났고, 여전히 무릎 펴고 바닥에 앉으면 상체는 바들바들 떨면서 미간을 구길지 언정, 거의 눕던 자세에서 그래도 앉은 모양 흉내는 낼 수 있게 됐으니, 하아, 험난하지 아니한가...?


흡사 슬램덩크 강백호의 이 모습과 같았던 첫날. 바뜨망 때의 음악(+근육통)이 머리에 맴돌아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다.       

이제껏 뭔가를 배우면서 이렇게 엉망이고 실수투성이인 적이 없었는데, 엄청 헤매면서도 유쾌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게 알고 싶어, 그걸 파헤치고자 시작하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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