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대학생, 통대를 꿈꾸다
"하오아, 하오아~"
시작은 꼬꼬마들을 위한 만화 어린이 삼국지였다.
중화TV에서 방영되는 어린이 삼국지의 짤똥한 이등신 캐릭터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외쳤다.
“하오아, 하오아~(좋아, 좋아~)”
당시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고, 중국어에 대해 관심도 흥미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기말고사 준비를 하다가 휴식이 너무나 필요해진 나머지 텔레비전을 틀고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마성의 이등신 캐릭터들과 마주하고 만 것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아무리 매력 있고 부족한 점 없는 사람도 나와 인연이 아니면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니 말이다. 반대로, 여기저기 허술해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나와 인연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저절로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런 점에서 나와 삼국지는 인연이었나 보다. 그 허술한 그림체와 구성이 은근히(대놓고는 아니었다) 매력적으로 보이고, 캐릭터들이 내뱉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말들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등신 캐릭터들도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겨우 5분 정도 본 뒤 바로 채널을 돌리기는 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만화 속의 장면들과 대사들이 남아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나는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면 중국어를 제 2외국어로 선택해야겠다는 마음을 은연중에 품게 되었다. 황무지 같았던 내 마음 속에 중국어라는 작은 싹이 피어난 것이다. 따져 보자면 ‘덕통사고’까지는 아니고 ‘접촉사고’ 정도였지만, 그래도 중국어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로 은연중에 결심한 사건이니 내게는 커다란 도약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뒤로 나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해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우게 되었다. 중국어의 성조와 병음, 한자를 외우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매주 찾아오는 쪽지 시험도 꽤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하오아, 하오아~’를 직접 쓰고 읽을 줄 알게 되었으니까.
국영수로 대표되는 내신 성적이 중요한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는 소외되는 과목에 속했다. 하지만 중국어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중국어를 잘 하고 싶었다. 원어민처럼 술술 말하고 듣고 쓰고 싶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꼬박꼬박 복습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쪽지 시험을 준비했다. 친구들은 야자 시간 내내 중국어만 공부하는 나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왜 그렇게 중국어만 열심히 하는 거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잘 모르겠다. 영어나 일본어 외에 내가 몰랐던 전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설렘과 기대가 섞여서 그런 것일 수도, 무엇인가를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빛을 발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내신 시험과 쪽지 시험, 수행평가를 포함한 모든 중국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야만 직성이 풀렸기 때문에 누구보다 중국어를 열심히, 독하게, 그리고 즐겁게 공부했다.
그리고 대학교 진학 시즌이 다가왔다. 당시 나는 심리학과에 진학해 세계 최고의 프로파일러 혹은 범죄심리학자가 되고 싶었다. 공부 계획을 정리하는 다이어리에 ‘XX대 심리학과 합격’이라고 크게 적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나는 문과대학(또는 사회과학대학)에 속하는 심리학과는 오로지 인간의 심리만 연구하는 재미있는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심리학과에 들어가려면 수학과 통계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고등학교 내내 발목을 잡던 수학을 대학까지 가서 다시 마주해야 한다니.
게다가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프로파일러여서 그랬는지 그 해에는 심리학과 경쟁률이 꽤 높았다. 나는 프로파일러를 지망하는 많은 학생들을 뚫고 보란 듯이 합격할 만한 자신이 없었다. 프로파일러가 꿈인 것은 맞지만 일단 대학부터 가고 봐야 했다. 그래서 나는 2지망이었던 ‘중어중문과’로 방향을 틀었다. 중어중문과라면 나를 받아주겠지 싶은 안일하고 거만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 원서를 쓸 때까지만 해도 내가 중국어로 먹고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학교는 생각보다 내 중국어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중어’보다는 ‘중문’ 쪽에 초점이 맞춰진 커리큘럼 탓에 나는 중국어 자체보다는 중국어의 역사와 중국 문학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항상 중국어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음알음 배우던 중국어는 대학교 3학년이 되자 HSK 5급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HSK 5급은 일상 회화와 간단한 읽기, 쓰기가 가능한 정도의 수준이다. 내가 목표한 ‘준원어민 수준’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이맘때쯤 되자 미래 걱정도 슬슬 되기 시작했는데, 일반인보다야 낫지만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훨씬 못한 어중간한 중국어 실력이 내 조바심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그 조바심에 불을 지핀 것은 엄마의 한 마디였다.
“너, 나중에 뭐 해서 먹고 살 거니?”
말문이 턱 막혔다. 전공이 중어중문학이니까 막연히 중국어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런 질문을 들으니 명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중국어로 먹고 살려면 무슨 직업을 가져야 하지? 중국어 교사? 중국 마케팅 담당자? 아니면…...통번역사?
통번역사, 좋다. 멋있고 언어도 잘 하고 돈도 잘 벌 것 같고. 게다가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중국어 고전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수업에 푹 빠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때 번역하던 작품 역시 삼국지였다. 자신의 집을 세 번이나 찾아온 유비의 간청을 품위 있게 거절하는 제갈량의 대사를 번역하며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제갈량이 섹시해서였는지, 아니면 중국어를 번역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래, 통역이나 번역을 하자. 나는 삽화 속 제갈량의 얼굴을 떠올리며 호쾌하게 말했다.
“그럼 통번역이나 하지 뭐!”
나의 진로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막연히 ‘통번역사=해당 언어의 마스터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통번역사가 되면 중국어의 준원어민 수준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 순수한 생각이었다는 것은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어쨌든 그 때부터 나는 통번역대학원 입시 준비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학원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