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선생>은 <회피> 스킬을 발동했다!
연말이 지나고 1월에 접어들자 학원 생활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그토록 버겁기만 했던 중국어 뉴스에도 익숙해졌고 모르는 단어도 점점 줄어들었다. 수업 시간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면 그 날 배운 내용을 전부 소화하고 집에 가겠다는 각오로 학원 복도에 놓인 책상에 앉아 열심히 읽고, 쓰고, 낭독했다. 수업 자료를 붙인 공책이 점차 뚱뚱해져 갔다. 그렇게 1, 2월이 지나고 나는 대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대학 졸업과 함께 통번역대학원에 합격하는 것이 나의 야심찬 목표였다. 통대 입시는 매년 10월에 있으니 이제 딱 7개월이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직 대학 졸업 전이었기 때문에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학교와 학원의 거리는 왕복 두 시간에 달했다. 학교 수업을 들은 뒤 한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와서 학원 수업을 듣거나, 학원 수업이 끝난 뒤 황급히 짐을 챙겨 들고 학교로 향하는 일상이 이어졌다. 심지어 학교-학원-학교의 일정을 소화하느라 학원 수업이 끝나자마자 전철역으로 죽어라 뛰는 날도 있었다. 졸업반이었기 때문에 듣는 학점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학원 수업까지 소화해야 했기에 체력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던 시기였다.
그 무렵 학원 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나는 친구도 몇 명 사귀었다. 수업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어 친해진 경우도 있었고, 스터디 파트너가 필요했던 상대가 먼저 말을 걸어와서 친구가 되기도 했다. 1월까지만 해도 학원 수업도 힘들고 아직까지는 학원이 낯설었던 탓에 친구를 사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잔뜩 찌푸린 얼굴로 가방을 메고 다녔는데, 이제는 주위를 둘러보며 반 친구들의 실력을 파악할 여유도 생겼다.
사실 편의상 친구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20대 중후반으로 나보다 두세 살 많았다. 직장을 다니며, 혹은 그만 두고 공부에 뛰어든 3, 40대도 있었다. 하지만 매일 꼬박꼬박 수업에 참석하고, 수업이 끝나면 하얀 벽을 마주하고 묵묵히 공부하는 우리들 사이에는 나이를 넘어선 끈끈한 동료애가 자리잡았다. 친구가 별건가? 마음이 통하면 그게 친구지.
그렇게 나는 두세 살 많은 ‘친구’들과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잡담을 나누면서 점차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와서야 말하는 거지만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내 마음은 굉장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공부가 급했기에 학원에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기는 했지만 실력, 시간, 여유 무엇 하나 갖춘 것이 없었기에 늘 겁먹은 미어캣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사리기만 했다. 내 키보다 조금 깊은 물에서 허우적대는 기분이었다. 바닥을 차고 올라오면 공기를 마실 수 있으니 숨이 막혀 죽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쉬어도 숨을 쉴 수 없으니 끊임없이 발길질을 해야 했다. 나 자신이 바닥을 차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물 속에 잠겨 들어가는 것처럼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고 서로 격려해줄 친구가 생기니 불안감도 한결 덜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도 생겼다. 수업이 끝나면 친한 언니 세 명과 함께 빈 강의실을 찾아 짐을 푼 뒤 밥을 먹으러 가고, 중간에 아이쇼핑도 좀 하고, 다시 학원으로 돌아와 각자 공부를 하거나 스터디를 하곤 했다. 혼자서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늘 의심이 들고 불안했는데, 전우가 옆을 지키고 있으니 새삼 든든했다. 공부가 끝나고 함께 짐을 싸며 집에 갈 준비를 하는 시간은 유난히 즐겁고 뿌듯했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 속을 뿌듯이 채웠다.
“저 입시 그만둘까 봐요.”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와 학원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나름대로 대학 졸업반과 통대 준비생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과 학원 수업, 과제, 그리고 기나긴 이동 시간과 학업 스트레스까지. 무거운 압박감이 하나 하나 쌓여 나를 짓눌렀고, 견디다 못한 내 마음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한 시간을 이동해 학원 수업을 듣는데 그날따라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자잘한 실수도 많이 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학교 졸업도, 통대 입시도, 어느 것 하나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귓가를 스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차오르는 눈물을 억지로 다시 눌러담았다. 수업이 끝난 뒤 결국 나는 빈 강의실로 들어가 언니들 앞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무뚝뚝하던 애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자 당황한 언니들은 허둥대며 나를 달랬다. 저마다 위로의 말을 건네며 내 마음을 풀어주려 했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여기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그래! 너 잘하면서 왜 그래?”
“오늘 네가 힘들어서 그래. 푹 쉬면 나아질 거야.”
언니들의 말을 들으며 한동안 울고 나니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계속 도전해볼까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었다. 눈 딱 감고 7개월만 더 해 볼까? 포기와 오기 사이에서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 때, 내 결심에 쐐기를 박는 언니의 한 마디.
나는 입시를 계속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