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저는 잡초입니다. 뽑아주세요!

날카로운 첫 면접의 추억

by 구선생

‘면접장에서는 무조건 웃어라!’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던 나는 지나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면접장으로 들어섰다. 텅 빈 방 안에 교수님 세 분이 앉아 계셨고, 교수님들과 마주보는 자리에는 A4용지 두 장이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교수님들은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나를 보고 조금 놀라신 눈치였다.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웃고 있으니 의아하셨으리라. 물론 나도 긴장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긴장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환하게 웃으며 들어갔다. 밝게 웃으며 면접장과 교수님들의 얼굴을 훑어보니 잠시나마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작년에 온 적 있지?”

가운데에 앉아 계신 교수님이 물으셨다.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한 나는 황급히 아니라고 대답을 정정했다. 해마다 많은 응시생들을 만나다 보니 나를 다른 학생과 헷갈리셨나 보다. 그 교수님은 나에게 출신 대학교와 학원을 물으신 뒤 왼쪽에 있는 A4용지를 뒤집어 보라고 하셨다. 중국어 텍스트였다. 중국어를 읽고 한국어로 시역하는 시험이었다. 제목을 읽은 순간, 가까스로 풀렸던 긴장이 다시 엄습해왔다. 하필 내가 잘 모르는 예능 프로그램의 판권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아 예능 프로그램도 잘 모르고, 중국에서 유행하는 한국 예능은 더더욱 모른다. 그런데 하필 잘 알지도 못하고 한 번도 공부한 적이 없는 예능이 주제로 출제되다니!


나는 잔뜩 주눅든 채 시역을 시작했다. 당연히 내 시역은 엉망이었다. ‘런닝맨’, ‘아빠, 어디 가’ 등의 프로그램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동안 생각에 빠진 것은 물론, ‘유재석’ 등의 유명 연예인 이름의 중국어 버전도 알아보지 못해 그대로 건너뛰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벌써부터 망조가 드는 기분이었다. 이 시험에 떨어진다면 그건 아마 중한시역 때문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시험은 한중시역이었다. 구체적인 주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체로 무난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한중시역은 그런대로 무난하게 잘 끝냈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주제가 무난했기 때문에 모든 수험생이 나처럼 무난하게 시역을 해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나는 중국어보다 한국어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전형적인 국내파였기 때문에 중한시역에서 수려한 한국어 실력을 뽐내야 합격의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런닝맨’의 습격으로 수려하기는커녕 허접한 한국어를 쏟아내고 말았다. 분명히 오역도 많이 나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중한시역에서 실수한 부분을 만회할 정도로 한중시역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위태롭겠구나 싶어 정신차리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질의응답 질문은 ‘국정농단 사태가 한중관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였다. 그 해의 가장 큰 이슈가 질문으로 나온 것이다. 한 번은 생각해봤던 주제였기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이번 사태로 한국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빠져서 그 영향이 한중관계에도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인들이 한국은 비민주적인 국가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민주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라고 답하자 교수님이 ‘민주적인 방법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겠는가?’라고 되물으셨다. 나는 ‘정당 활동이나 시위 등이 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사실 면접장에서의 모든 질문과 대답은 중한시역을 할 때만 제외하고 모두 중국어로 이루어졌다. 교수님의 질문에 중국어로 수준 높은 대답을 내놓기에는 내 중국어 실력이 너무 비루했다. 중국어 실력이 좀 더 좋았더라면 대답을 더 길게 했을 것이다. 중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 걸. 마음속에서 후회와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면접을 마치고 들어올 때처럼 밝은 얼굴로 ‘감사합니다, 교수님!’하고 외치고는 면접장을 나섰다. 후련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드디어 끝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엄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우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점심으로 음식점에서 카레를 먹으면서도 별다른 맛을 느끼지 못했다. 집에 와서도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이 온통 면접 결과에 쏠려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결과를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nqqjGoQ_Y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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