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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Sep 01. 2020

1. 나의 첫 번째 공황장애

통대 입시가 내게 남긴 뜻밖의 선물

4년 전에 강남에서 자취를 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 입시 준비를 위해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집에서 학원까지 통학하고 있었다. 1년 넘게 학원을 다니면서 긴 통학 시간이 어느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등원 시간을 줄여 학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학원 근처에 방을 알아보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여러 부동산을 수소문한 결과 괜찮은 오피스텔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날로 당장 계약을 했다. 그렇게 나의 첫 자취가 시작되었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시작한 자취였기 때문에 그다지 설레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나는 빨래,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집안일을 혼자 해나가면서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해져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은 뒤 걸어서 학원에 갈 수 있다는 것도, 학원이 끝난 뒤에 지친 몸으로 붐비는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밥 대신 먹어도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밤에 텅 빈 방에서 혼자 잠을 청하는 것만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거나 낯선 사람이 현관문을 쾅쾅 두드릴 것만 같았다. 길거리의 소음과 복도의 발걸음소리, 이웃집의 대화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이 건물 안에 나 혼자만 남겨져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살았다면 듣기 싫었을 옆집 개 짖는 소리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 밤이었다. 여느때처럼 책을 읽고 휴대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 순간,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고 미친 듯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는 공포감이 밀려와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창 밖을 내다보고 방 안을 서성거렸지만 공포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읽던 책을 집어들어도, 휴대폰을 봐도, 다른 생각을 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창문을 열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망설여졌다. 결국 그날 나는 불을 환하게 켠 채로 새벽까지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다가 겨우 잠들었다.


그 증상이 공황장애의 일종이라는 것을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워낙 평소에 불안감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 불안감이 조금 심하게 나타난 것인 줄로만 알았다. 자취 첫날 이사를 도와주러 온 가족들이 돌아가고 난 뒤 텅 빈 방에서 불안에 떨다가 바로 친구를 부른 것도, 저녁에 학원에서 돌아올 때마다 누군가 화장실이나 구석에 숨어있을까봐 잔뜩 긴장하던 것도, 혼자 집에 있을 때 바깥에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깜짝깜짝 놀라던 것도, 지하에 있는 분리수거장에 갈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습격할까봐 부엌칼을 챙겨가던 것도, 아무리 피곤해도 불을 끄면 불안감 때문에 정신이 말짱해지는 것도 그저 혼자 살려면 떠안아야 할 불안함의 일종인 줄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밥 먹는 것이 두려워졌다. 특히 치킨이나 떡 종류를 기피하게 되었다. 치킨은 닭뼈 때문에, 떡은 끈적한 식감 때문에 목에 걸릴까봐 걱정이 되었다. 할 수 없이 먹어야 할 때는 심할 정도로 꼭꼭 씹었다. 음식물이 잘게 분해되어서 도저히 목에 걸릴 수 없겠다 싶을 때까지 씹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저녁으로 나온 떡볶이를 먹은 뒤 떡이 목에 달라붙는 기분이 들어 공포에 떨며 동네를 몇 바퀴나 돈 적도 있었다.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고 자다가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며 깨기도 했다.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결국 나는 모든 음식물을 두려워하기에 이르렀다.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가 두려워졌고 음식을 먹다가 음식물이 목에 걸려 괴로워하다가 죽는 나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종국에는 물을 포함한 음료수를 마시는 것도 두려워졌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강박적으로 꼭꼭 씹은 뒤에야, 음료를 마실 때는 투명한 컵에 따라서 목에 걸릴 만한 이물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럽게 삼킬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불편한 수준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증상이 갈수록 심해지자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계속 불안에 떨게 되었다. 증세가 한참 심할 무렵 갔었던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경치와 음식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지역 특산물인 티본 스테이크를 먹을 수가 없어 같이 여행하던 일행 중 한 명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낮에 관광지를 분주하게 돌아다닐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애써 억눌렀던 불안감과 공포가 고개를 들었다. 공포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정점을 찍었다. 폐쇄된 공간과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의 흔들림,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기내식까지 전부 공포의 대상이었다. 비행기에 탄 직후 우황청심환을 먹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야위어갔다.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탓에 체중이 8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잠이 들 때까지 극심한 불안함에 떨며 살아 있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 증상이 단순한 사고방식의 변화나 마인드 컨트롤로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나는 정신과 상담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이미지 출처: http://m.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7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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