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선생 Sep 03. 2020

2. 공황, 그리고 극복

일상을 되찾다

“우울증이네요. 강박 증상도 조금 있고요.”


내 차트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내린 진단이었다. 


난생 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조용한 분위기에 차분한 향기가 풍기는 곳이었다. 대기실에 있는 거울에는 ‘당신은 당신을 이해하나요?’라고 써 있었다. 그걸 알았다면 여기 오지는 않았겠지. 속으로 대답하고는 내 차례를 기다렸다. 


첫날에는 우울, 강박을 비롯한 증상을 체크하는 테스트를 하느라 두 시간 정도를 대기실에 있었다. 나는 내가 죽을까봐 걱정이 된다. 매우 그렇다. 나는 때때로 우울해서 참을 수가 없다. 매우 그렇다. 수많은 질문에 대답을 하다 보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울하고 불안한 내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혼자서도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인데 내가 너무 엄살을 떨었나 싶기도 했다. 죽도록 아프다가도 병원에만 가면 괜찮아지는 것은 정신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 보다. 상담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안정되고 별다른 불안감이 없던 평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같은 경증 환자가 상담을 받으러 와도 되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내 이름이 불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약간 긴장한 채로 진료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차분한 인상의 젊은 의사가 앉아 있었다. 의사는 내 테스트 기록을 보며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내가 자유롭게 대답할 수 있는 열린 질문이었다. 


“이런 증상이 시작된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본인의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얼마나 크다고 생각하나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있나요?”


의사는 차분하면서도 온화한 표정으로 질문에 답하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손으로는 연신 진료 차트를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였지만 정신과라는 공간이 처음이어서인지, 정상인으로 보여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생각 때문인지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의 강박관념과 내가 느끼는 우울과 불안을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되었다. 달랑달랑 약봉지를 들고 병원 문을 나서는 나의 마음은 병원에 들르기 전보다 한결 편안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줄곧 게임만 했다. 휴대폰으로 방탈출 게임 시리즈를 다운받아 하루 종일 게임에 열중했다. 음악을 들으며 게임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공포와 불안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스테이지를 깨 나갈 때마다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도 느껴졌다. 식사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1~2주 정도를 게임만 하며 보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하루하루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 때문인지, 음악과 게임 요법 때문인지, 아니면 이제 나아지리라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인가 더는 전처럼 괴롭지 않았다. 괴로움의 바다에서 잠시 목을 내놓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세상이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무채색에 검푸른 연기가 떠다니는 것 같이 보이던 세상이 차츰차츰 본래의 빛깔을 찾기 시작했다. 


식욕도 차츰 돌아왔다. 아직 치킨이나 떡을 먹기에는 무리였지만 그 둘을 제외한 다른 음식이나 음료는 별 무리 없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를 별 생각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일 줄은 몰랐다. 약을 먹기 전에는 하루 세끼가 공포 그 자체였는데, 증상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식사 시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먹으니 핏기 없는 얼굴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차츰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증상이 심했던 때가 학원을 잠시 쉬던 1월이라서 공부에 지장이 생길 걱정 없이 푹 쉴 수 있었다. 증상이 많이 나아지자 예전에 친하게 지내던 학원 동기들과 스터디 팀원들과의 모임에도 나갈 수 있었다. 살이 많이 빠졌다며 놀라는 동기들 앞에서 그 동안 우울증에 걸려서 그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 벌써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많이 나아졌다는 뜻이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자취방에서 혼자 지내며 느꼈던 우울함과 불안함에 입시 실패의 상처까지 더해져 그런 증상이 더 심해졌던 것 같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곪아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시달렸던 내 몸과 마음이 잠시 쉬어 가라며 내린 극약처방같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덕분에 푹 쉬게 되었고 3월에 한층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학원에 복귀하게 되었다. 


하지만 평화로운 나날도 잠시, 나는 2년 후에 다시 한 번 공황과 강박사고 증상을 겪게 되었다. 이미 한 번 겪어 봤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괴로움이었다. 다행히 지금은 약을 먹고 꾸준히 병원을 다닌 끝에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나의 두 번째 공황 이야기는 따로 적지는 않으려 한다. 너무나도 개인적인 사연이 섞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이야기를 그대로 적으면 상처를 받을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저 세계대전도 2차에서 막을 내렸듯이 나의 공황도 2차로 끝나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맺으려 한다.   




이미지 출처: http://chulsa.kr/34529258

매거진의 이전글 1. 나의 첫 번째 공황장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