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3년차 통대 입시생의 우울

by 구선생

“지금부터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하세요.”


고3이 되기 직전 선생님께 들었던 조언이다.

힘겨운 수험생활을 겪으면서 ‘그래도 이 시기만 지나면 다시는 내 인생에 입시란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대입보다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은 입시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일 년을 공부하고 시험에 떨어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절박했다. 이번에야말로 ‘1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해야 했다. 하지만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공부에 내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갑자기 밀려오는 막막함과 슬픔에 파묻혀버리곤 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히 울적한 순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상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쪽 하늘

입시 준비를 하면서 하루 중 언제가 가장 울적하냐고 물으면 단연 아침을 꼽을 것이다. 남들에게는 희망찬 하루의 시작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힘겨운 공부의 시작을 알리는 자명종과 같은 시간대였다. 밤새 따뜻하고 포근한 이불 속에서 뒹굴다가 어슴푸레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보면 버거운 하루의 시작이 다가오는 것 같아 왠지 울적해졌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나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학원에 다녔다. 집부터 학원까지는 왕복 3시간 거리였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 동안 단어를 외우거나 중국어 라디오를 들었다. 피곤하거나 공부할 기분이 아닐 때는 웹툰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쉬었다. 나름대로 통학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자부하기는 했지만 지하철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우울했다.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보면 한숨부터 나왔고, 출퇴근 시간대에 사람들 사이에 낀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 보면 목적지가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길에 시간을 버리는 동안 남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내내 불안했다. 입시 2년차에 자취를 결심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지하철 통학이 싫어서였다.


해외파 친구들

학원에 가면 해외 연수 또는 거주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를 제외하고 거의 다 최소 1년씩은 중국에 다녀왔을 정도였다. 물론 국내파는 국내파대로, 해외파는 해외파대로 장단점이 있는 법이지만 당시 나의 눈에는 국내파인 나의 장점은 작아 보이고 해외파인 다른 친구들의 장점은 한없이 커 보였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해외파나 원어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주눅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어를 하려면 무엇보다 말을 뱉고 보는 뻔뻔함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뻔뻔함이 부족한 데다 발음과 문법이 완벽하지 않으면 비웃음을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 중국어 실력을 더 늘릴 기회를 잡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입시설명회와 합격생들

해마다 새 수강생이 학원에 등록하는 3~4월이 되면 입시설명회가 열렸다. 입시설명회의 꽃은 단연 합격생들의 노하우 공개 시간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그들은 보무도 당당히 앞으로 걸어나와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이 학원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설파했다. 3년차 수험생인 나는 매년 학원에서 열리는 설명회와 대학원에서 열리는 설명회를 포함해 적어도 5~6회의 입시설명회에 참석했고 수많은 합격생들의 보람찬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그들을 직접 보는 것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동시에 적잖은 스트레스기도 했다. 그들이 이룬 것을 나는 이루지 못했다는 슬픔과 좌절감, 입시설명회가 끝나면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인지 입시설명회가 끝날 때마다 열심히 공부하기보다는 도리어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거나 카페에 가서 신세한탄을 하거나 술을 마시며 현실도피를 했던 것 같다. 언젠가는 나보다 입시 기간이 짧은데도 통대에 당당히 합격한 언니가 학원을 찾아와 학원생들에게 커피를 사 주며 격려를 해 주었는데 그 후로 도리어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클수록 나의 슬픔도 커지고 의욕은 곤두박질쳤다.


밤거리의 네온사인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하루치 공부를 다 마치고 학원을 나서면 어느새 해는 저물어 있고 밤거리에는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주워입은 옷에 피곤에 찌든 몰골을 한 채 밤거리를 터벅터벅 걷는 내 모습이 화려한 네온사인과 선명한 대비를 이룰 때마다 나는 묘하게 우울해졌다. 단순히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져서만은 아니었다.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학원에 매일 다니면서도 정작 번화가를 즐기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꽤 컸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밤이면 친구들과 모여서 간단하게 커피나 술 한 잔 할 수 있을 텐데도 놀면 왠지 떨어질 것만 같은 불안감에 곧장 집으로 향했다. 고3때도 노을 지는 저녁 하늘과 야경을 보면서 묘한 서글픔에 잠겼었는데, 역시 밤은 어딘가 사람을 쓸쓸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나 보다.



3년. 누구보다 길었던 입시 생활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생활 속의 작은 슬픔들과 작은 기쁨들이 적절하게 달콤짭조름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입시 생활이 그저 재미있기만 했다면, 또는 그저 우울하기만 했다면 지금처럼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매일매일 느꼈던 사소하지만 확실한 우울들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 한켠에 눅진하게 자리잡은 채 내가 빈틈을 보일 때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다. 비록 작은 우울이었지만 하나하나 모았더라면 꽤나 묵직한 슬픔이 되었을 것이다. 그 슬픔들을 애써 못본 척하고 꿋꿋하게 발걸음을 옮긴 나의 25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미지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3962905&memberNo=3232250

매거진의 이전글9. 여기 수험 생활 1년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