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툰 작가는 관종의 직업이다
인스타툰 작가 G씨의 솔직한 심정
앞으로 다시는 시리즈물 연재하지 말아야지.
인스타툰 작가인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이다.
인스타에 장편 시리즈를 연재 중인 나는 요즘 뼈저리게 후회 중이다.
물론 1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는 엄청나게 즉흥적이고 무계획적인 사람이다.
다른 작가들은 처음부터 분량과 스토리를 기획해 놓고 연재를 시작하는 것 같던데
나는 일단 소재가 떠오르면 무작정 그림부터 그리고 보니까 정해진 분량이 없다.
그냥 분량이 길어지면 길어지는 거고, 한 화만에 끝나면 끝나는 거다.
예전에도 시리즈를 몇 번 연재한 적이 있는데 그래도 그때는 길어도 2~3화 정도면 끝이 난 덕분에
스토리가 지나치게 늘어지거나 작가인 나조차 지겨워지기 전에 완결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연재 중인 시리즈는 작가인 나도 언제 끝낼지를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진지하고 성찰적인 주제라서
십분 준비성을 발휘하여 콘티를 3개 정도 미리 짜놓고 시작했는데
지금 진행 속도로 보면 앞으로 3~4화 정도는 더 나와야 완결이 날 것 같아서
콘티 언제 다 짜지... 하면서 막막해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시리즈물의 경우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독자들의 열렬한 관심을 받으면 힘이 나서 열심히 연재를 계속할 수 있지만
예상과 달리 별 반응이 없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것이다.
시리즈물은 긴 호흡으로 가기 때문에 독자의 호응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다른 화에 비해 좋아요와 댓글 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걸 보면
다음 화를 열심히 그릴 의욕이 사라진다.
'어차피 아무도 안 기다리는 거 왜 그리지...' 하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고,
어느새 재미와 열정보다는 완결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현재 연재 중인 '열등감에 관하여' 에피소드가 딱 그렇다.
처음에는 굉장히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열등감이야말로 나의 심리와 성격을 형성하는 커다란 키워드 중 하나니까,
해당 소재를 진솔하게 풀어내면 독자의 공감도 얻고 호응도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첫화부터 반응이 저조했다.
보통 시리즈물의 첫화는 일종의 '신작 특수'로 좋아요와 댓글이 많이 달리곤 한다.
게다가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 내용이 그동안 독자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던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로 열띤 호응을 얻을 거라고 김칫국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첫 장면부터 재미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웃음기 쫙 빠진 지나치게 성찰적인 내용 때문이었을까.
업로드 하고 난 뒤 좋아요가 올라가는 속도가 굉장히 더디고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았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일단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썰어야 하는 법.
일주일에 한 번 업로드를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일요일인 오늘까지 한 화를 완성해야 한다.
봐주는 사람도 별로 없고 호응도 미적지근하지만 어쨌거나 시작을 했으니 끝을 봐야지.
1화 분량을 열심히 그린 뒤에는 다음 화 콘티를 짤 계획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연재에 쫓기는 인기 만화가가 된 기분이군.
개인적으로 SNS 좋아요와 댓글 수에 목매는 것이 불행을 야기한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또 막상 포스팅을 올려보면 대중의 반응이 무척이나 신경 쓰인다.
좋아요 수에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고 싶지만,
막상 업로드 후에 좋아요가 한두 개씩 더디게 찍히면 급속도로 시무룩해지고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마는 나약한 영혼이 나인 것이다.
신경을 끄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오늘도 독자들의 반응을 예상하며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린다.
그들의 반응에 초탈한 태도를 보이려고 무진 애를 쓰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1분마다 인스타에 접속해 그들의 반응을 염탐하면서.
그렇다.
인스타툰 작가는 웬만한 관종이 아니면 못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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