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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Mar 18. 2023

지하철 광인소나타

광인 관찰자의 짧은 기록

오늘 오전에만 지하철 광인 세 명을 봤다.

9호선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는데

9호선에서 2명, 1호선에서 1명 봤다.

지하철은 워낙 광인의 집합소라 광인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밀도 있게 보는 것은 처음이라 기록을 해두고 싶다.

첫 번째 광인

9호선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누가 사자후를 질렀다.

옆옆옆칸 정도 거리에서 소리를 질러서 데시벨이 높지는 않았지만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는 됐다.

내용을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몹시 흥분한 것으로 보아

좋은 내용은 결코 아닌 듯 했다.

다행히(?) 다음 역이 내가 내릴 역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한 채로 하차했다.

두 번째 광인

첫 번째 광인이 공연을 하는 동안

우리 칸에서도 나름대로의 예술세계를 펼쳐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두 번째 광인이다.

보글보글 볶은 머리를 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앉은 채 간헐적으로, 그러나 분명한 목소리로 욕을 중얼댔는데

그 행위는 첫 번째 광인과는 다른 느낌으로 임팩트가 있었다.

사람들은 첫 번째 광인의 샤우팅과 두 번째 광인의 모놀로그에 깊이 감명을 받아

둘 중에 누구에게 시선을 둬야할 지 모른 채 갈팡질팡했다.

나 역시 누구를 더 주목해야 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갈아탈 역에 도착하는 바람에 속절없이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광인

1호선으로 갈아탔는데 맞은편에 딱 봐도 광인의 포스를 풍기는 이가 앉아있었다.

그는(40대 추정) 5~6세 아이들이 주로 하는 커다란 레이스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마찬가지로 미취학 아동들이 매고 다니는 조그만 곰돌이 크로스백을 무릎에 올리고

현란한 액세서리를 장착하고 형광초록색 크록스를 신은 채

엄청난 존재감을 뽐내며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잠깐 마스크를 내린 그의 입술에는 형광핑크빛 틴트가 칠해져 있었고

그가 이를 드러낸 채 쯥쯥대기 시작하자

이 사이사이에 마치 고춧가루처럼 낀 핑크빛 틴트의 흔적이 보였다.

다행히 그는 다시 마스크를 올렸고

이번에는 맹렬하게 졸기 시작했다.

앞뒤로, 좌우로 격하게 흔들리던 그는 머지 않아 어떤 역에서 내렸고

나는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열차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표지 이미지는 지하철 광인으로 유명한 분의 사진입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가져왔으나 문제 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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