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안 한 재수생의 1차 시험 도전기
졸업 실패로 대학원 입학시험 응시 자체를 못한 한 해가 빠르게 지나가고 새해가 밝았다. 졸지에 재수 안 한 재수생이 된 나는 이번에야말로 꼭 통대 입학과 대학 졸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야 말겠다는 투지를 불태웠다. 다행히 2학기 동안 총 27학점을 수강해 졸업까지 남은 학점을 모두 채우고 코스모스 졸업에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통대 합격뿐. 나는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학원에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으며 1차 시험을 위한 에세이 준비와 2차 시험을 위한 면접 준비에 올인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입시의 계절인 10월이 찾아왔다. 1차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단 3주. 남은 기간 안에 외국어 에세이 및 요약 실력을 치열하게 갈고 닦아야 했다. 이때쯤 되자 학원에는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평소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집으로 향하던 학생들도 로비에 남아서 공부하기 시작했고, 수업 시간에는 긴장과 집중이 뒤섞인 공기가 교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연초부터 함께 공부하느라 어느새 전우가 되어버린 같은반 학생들과 함께 전의를 다지며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1차 시험의 날이 밝았다. 시험 전날 밤, 엄마가 학원 근처에서 자취하던 나를 응원하러 오셨다. 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은 뒤 그 동안 했던 공부 자료들을 간단히 복습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잠은 오지 않았고, 나는 밤새 뒤척거리다가 새벽녂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샌 뒤 엄마와 함께 택시를 타고 대학원으로 향했다. 택시가 시시각각 학교와 가까워질 때마다 나는 시험 시간이 영원히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과 빨리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학교 앞 사거리에 내린 뒤 고사장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10월 말의 쌀쌀한 날씨를 느낄 여유도 없을 만큼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험장 앞에 서 계신 선생님들이 보였다. 한 분은 우리를 전체적으로 관리해주시는 담임 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우리의 중국어를 책임져주시는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학원 직원분들도 우리를 응원하러 나와 계셨다. 매일 보던 얼굴이지만 낯선 곳에서 마주하니 몇 배로 반가웠다. 반가운 얼굴들의 응원을 받으며 한결 든든해진 마음으로 고사장에 들어섰다.
1차 시험은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파트는 요약이다. 외국어 지문을 들은 뒤 한국어로 요약하고, 한국어 지문을 들은 뒤 외국어로 요약하는 것이다. 6~7분 정도의 지문을 들려주면 노트테이킹 용지에 그것을 받아적은 뒤 준비된 시험지에 내용을 요약해 적으면 된다. 사실 요약 시험은 학생들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파트다. 처음에 요약 연습을 할 때는 어렵지만,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 학생들의 실력이 서로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약 시험에서 당락이 갈리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두 번째 파트인 에세이다. 제시된 주제에 따라 한국어와 외국어로 자신의 의견을 서술하는 것인데, 무엇을 써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주제가 나오든 자신의 생각을 술술 써내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에세이에 늘 발목을 잡힌다며 울상짓는 학생도 있다. 그만큼 학생들 사이의 편차가 많이 갈리는 파트가 바로 에세이다.
일단 1차 시험의 경우에는 중국어가 문제였다. 한국어를 중국어로 요약하는 부분은 무난하게 잘 써냈지만 중국어 지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사고가 일어나서 사람이 죽었다는 것까지는 알아들었는데, 그게 무슨 사고인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돌발상황이 일어나 인명피해가 났다’라고 대충 얼버무려 적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놓쳤던 부분은 분량이 한 단락도 되지 않는 데다 중요한 부분도 아니어서 안 썼어도 무방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사망 원인을 적지 못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내내 전전긍긍했다.
2차 시험은 중국어, 한국어 둘 다 문제였다. 중국어 에세이의 주제는 ‘난민 문제와 단일민족의 관련성에 대해 서술하시오’였다. 그 제시문을 본 순간 심박수와 혈압이 급격하게 오르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제시문을 참고하여 있는 말 없는 말을 지어내서 어찌어찌 글을 완성한 뒤 시계를 보자 60분에서 이미 40분이 날아간 뒤였다. 20분 안에 한국어 에세이를 써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에세이의 주제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으로 무난했다. 하지만 완벽한 에세이를 써내려는 나의 과욕이 참사를 불렀다. 나는 늘 한국어 에세이를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았고, 참신한 에세이 도입부를 써내기 위해 항상 고민했다. 중국어가 부족한 편이니 한국어 실력으로 돋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시험이 2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채점자의 이목을 끌만한 참신한 도입부를 생각해내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도입부가 참신했느냐? 그건 아니다. 워낙 긴장한 탓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던 데다 시간이 부족해서 평소에 써내던 분량도 채우지 못하고 손을 덜덜 떨며 삐뚤빼뚤한 글씨로 에세이를 완성했다. 발로 쓴 듯한 글씨가 적힌 내 시험지를 걷어가는 감독관에게 제발 10분만 더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시험이 끝난 뒤 데친 시금치처럼 기운이 쭉 빠진 채 터덜터덜 고사장을 나서는 나를 발견한 엄마가 물었다.
“시험은 어땠니?”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대답했다.
“떨어질 것 같아.”
돌아오는 길 내내 우울했다. 긴장한 탓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 아쉬웠고, 실수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 걱정이 되었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 시험에 나왔다며 복도가 떠나가라 외치던 다른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이렇게 나만 떨어지는 건가. 암담했다.
약 2주 뒤 1차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학원 수업이 없는 날이라 집에 있던 나는 시험 결과 발표 소식을 듣자마자 가슴이 두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대학원 사이트에 접속해 수험번호와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와악!!!’
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마침 집에 있던 남동생에게 합격 화면을 보여주었다. 둘이서 펄쩍펄쩍 뛰며 기뻐한 것도 잠시, 마음이 다시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2차 시험이라는 강적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2차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단 2주. 그 14일에 나의 사활을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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