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Aug 24. 2016

여성혐오가 뭐 별 건가?

작년부터 남초 커뮤니티를 하고 있다

 정치색이 뚜렷하게 있는 커뮤는 아니고 오히려 정치 글은 금지된다. 익게는 여느 커뮤니티들의 익게처럼 짬이 되는 사람들, 다시말해 자격이 되는 회원들 사이에서 향유되는 곳이다. 이 커뮤니티의 익게에는 섹스 이야기가 많고 일상적 고민이 많다. 정치글은 엄격히 금지되는 곳이지만 우리 세상 살이가 정치적인 걸 어떡하나. 가끔은 일상 이야기랍시고 갖가지 생활 정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이 커뮤니티의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 정도는 사회의 평균 인식일 듯한, '진짜 페미니즘'을 포장한 평화적이고 착한 여성 운동은 인정,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어느 정도는 역차별 시대라는 그런 정도다. 페미니즘의 페자만 나와도 메갈이세요? 라는 가난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그런 곳이다.


"우리는 여혐하지 않아!"

왜냐하면 난 여자(와 하는 섹스) 존나 좋아하거든!



맞다. 존나 좋아한다.

그래서 게시판 목록의 한 페이지에 두어 개는 꼭 '후방조심'을 달고선 여자 연예인들의 몸매를 돌려보는 게시물이 올라오고, 취향으로 둔갑한 여성에 대한 스트레오타입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방금 어떤 글에서 그들은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부르짖지만 다음에 보이는 글에서는 '핑크 유두와 성기(우리는 여성혐오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보지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에 대한 환상을 공유한다. '김치녀(라는 단어도 이제는 덜 쓴다. 하지만 김치녀를 풀어낸 편견일 뿐)'는 세상에 차고 넘치며,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년들이기 때문에 욕 먹어도 싼 존재다. 나이대가 높다 보니 '김여사(는 아직 여성혐오적 단어인 줄 모르는 것 같다)'에 대한 욕지끼는 하루를 거르지 않고 올라온다. 남자 운전자가 전체 운전자의 60%가 넘고, 발생하는 사고 전체 중 80%가 남성 운전자에 의하지만 그들은 남성 운전자에 대해선 욕하지 않는다. 어휴 김사장님!


게시판의 한 페이지에 여성혐오(인지 모르는 여성혐오) 글과 '우린 여성혐오를 하지 않아' 글이 혼재돼 있을 때, 그걸 보는 내 심정이란.



여성혐오가 뭐게~?

화장품 계의 에이프릴스킨처럼 요즘 속옷계에도 spa 브랜드를 거쳐 컴온빈센트나 하늘, 꼰에야와 같은 온라인 기반 저렴한 속옷 브랜드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인터넷 쇼핑이다 보니 사이즈 선정과 착용감을 알기 위해 후기를 꼼꼼히 읽는 게 중요하다. 게다가 다양한 디자인과 과감한 시도들을 많이 보여주기 때문에 기존의 속옷 구매보다 더욱 꼼꼼하게 포토후기를 찾아 봐야 한다. 속옷도 브랜드마다 같은 사이즈여도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홑겹 브라 같은 도전적인 속옷의 경우엔 착용 후 상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으니까. 혹은 입었을 때의 모습이 실제로 크게 상이할 수도 있으니까. 최근에 나도 홑겹 브라 구매를 위해 자주 이 사이트들을 돌아다녔다. 포토후기를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그랬는데 우연히 저 남초 커뮤니티에서 읽었던 글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여기 후기 죽인다'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그 글은 홑겹 브라의 포토후기 게시판의 링크를 걸어뒀다. 댓글은 예상 가능한 내용이었다.


좋구나, 고맙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네
남자가 원하는 게 뭔지 아네
김**리뷰가 최고다
디컵 쩐다
나도 모르게 저장했다가 지웠다
다녀올게(이 커뮤니티의 은어로, 자위하고 오겠다는 의미다)
행복하군



이어 '더 쩌는 속옷 후기 게시판' 링크도 댓글에서 공유된다.



너네 딸감하라고 이거 올린 거 아닌데

이들에게 여성혐오란 무엇일까. 노래방 화장실에서 여자를 칼로 찌르고, 아무 이유없이 길가던 여자를 패는 것만이 여성혐오일까. 그들에 말에 따르면,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회사의 공간에서나 오히려 역차별 시대지만, 결혼했다면 아내가 아침밥은 차려줘야 하고 집안일과 육아는 조금 더 도맡아야 하고, 여자들은 딸감으로 쓰일 수 있고 운전하는 여자의 대부분은 김여사다. 성폭행 무고죄 비율이 다른 범죄의 무고죄 비율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또한 무죄추정원칙이 중요함에도, 성폭행 사건은 보통 꽃뱀들의 짓일 가능성이 높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혹은 여자들이 많은 회사는 여적여 싸이언스가 만연하므로 본인이 피곤해진다.

남초 군대/직장의 폭력적인 문화, 수많은 비리와 성폭력과 패권주의는 한 번도 남성의 문제로 회자된 적이 없다. 일부 개인의 부조리와 인격 결함 정도로 언급될 뿐이다. 백날 술집에서, 국회에서, 친족 공동체에서 남성들이 치고박고 싸워도 '자적자'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여성혐오를 하지 않는다는, 정치글을 금지한다는 남초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작가의 이전글 인식한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