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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19. 2016

인식한다는 것은

-강남 화장실 여성 살인사건에 부쳐

무감각함


아직까지 바로 옆, 혹은 가까운 존재의 죽음을 맞이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아직까지는 죽음에 대해 비교적 무디다. 현실 체감의 능력이 부족하다. 오히려 이 죽음에 대한 감정적 공감과 이성적 인식은 역설적이게도 죽은 사람의 부재가 아닌, 그로 인한 바로 옆 산 자의 처절한 절규나 울음에서 느낄 수 있다.


내가 열아홉살 때 그나마 가까웠던, 그래봤자 1년 동안 손에 꼽히게 만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의 부재는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부재는 아버지로 하여금 조용한 눈물을, 그리고 어머니의 울음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의 부재를 인식했고 잇따른 감정을 느꼈다.


어제 새벽에 발생한 강남의 femicide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아침에 일어나 뉴스 기사를 보았을 때 지나치리만큼 무덤덤했다. 사실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이성적 인지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없이 틀어본 CCTV에는 화장실로 들어가던 피해자와, 피해자를 확인하고서 발버둥을 치는 남자친구가 담겨있었다. CCTV에는 칼에 찔려 죽어가는 피해자는 없었다. 대신 남자친구를 보았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잠깐 사이에 그렇게 가까이에서 무고하게 살해된 모습을 보며,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감정들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걸 보며 느낀 내 감정은 남자친구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 걱정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운이 좋아 어제 새벽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화장실로 올라가던 피해자의 모습에 내가 투영되고, 분노와 죄책감과 비통함에 발버둥 치던 남자친구의 모습에 내 애인이 투영됐다. 어제 새벽 한 시의 강남 노래방 화장실 찬 바닥에는 내가 쓰러져있을 수도 있었다. 나는 정말 우연히 살아남았다.



운이 좋아 어제 새벽에 살아남았던 산 사람의 비루하고 초라하고 부끄러운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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