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는 절대 금지, 빵도 금지, 밥은 항상 아침 점심 저녁 세끼 꼬박꼬박 한식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집에서 자란 어린이에게, 가끔 놀러 가는 이모네는 일탈 같은 거였다.
엄마 형제 사이 가장 첫아기로 태어난 나는 모든 이모와 외삼촌의 호기심과 사랑을 몇 년간 독차지했다. 지금의 내가 온갖 친구네 아기들에게 하듯, 하루 종일 아가들 옆에 누워 손을 꼼지락 만져 보고 코를 톡톡 건드려 보고 안아도 보고 냄새를 맡듯, 이모들도 내내 내게 그랬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출생 이후로 줄줄이 모든 아이들이 남자아이였고, 그래서 나는 이모들에게 좀 특별한 위치였다. 나는 ‘큰 이모야‘ 집에서 하룻밤 자는 걸 좋아했고 큰 이모도 내가 자고 가는 걸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머리를 묶을 줄 아예 몰랐는데 이모는 알록달록한 작은 컬러 고무줄 끈으로 디스코 머리도 땋을 수 있었다. 이모네에서의 하루는 특별한 여행 같았다.
특식조차 엄마의 손수 다지고 반죽한 돈가스만 먹을 수 있던 내게, 이모네에 갈 때마다 이모가 만들어 주는 프렌치토스트는 달콤한 일탈이었다. 달궈진 팬에 버터를 올리고, 빵집에서 산 우유 식빵을 계란물에 듬뿍 입힌 다음 바삭하게 구워 내고, 위에 케첩을 잔뜩 올렸다. 엄마에겐 케첩 일일 할당량이 있었지만, 이모는 케첩을 더 먹고 싶다고 하면 아무 말 없이 케첩을 주욱 짜주었다.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기억들은 유난히 짙고 뚜렷하다. 어른들은 더 많은 중요한 기억들을 기억하느라, 또는 사느라 별 거 아닌 기억은 까먹어 버리지만, 어린아이는 그렇지 않다. 너무 소중한 기억은 평생을 가는 법이다. 큰 이모야를 생각하면 늘 프렌치토스트가 먼저 떠오른다.
나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결혼식 전날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은 서로 정신없고 잘 전달이 안 될 거 같아서 전날 전화 한다며. 큰 이모야는 축하한다며 첫 말을 이렇게 뗐다. ”우리 집 와서 맨날 꾸워준 프렌치토스트 먹던 얼라가 언제 이래 커가 결혼을 하노...”. 나한테만 그런 줄 알았는데 큰 이모한테도 프렌치토스트는 소중하고 짙고 뚜렷한 기억이네. 우리 큰 이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