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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ug 26. 2016

내 인생 첫 생리컵

어렵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요

탐폰을 벌크로 산 게 벌써 바닥이 났는데 돈은 없고 발을 동동 굴리고 있자니, 마침 친구에게 생리컵을 나눔 받게 됐다.

친구에게 받은 생리컵의 제품명은 ‘메루나’고 사이즈는 S와 M을 받았다. 처음 사용이기도 하고 평소에 양이 많지 않아 S를 먼저 사용해봤다.


개봉


(이건 메루나 M이다. S는 쓰고 있는 중. 메루나S는 사이즈도 작고 용량도 적은 편이고 길이도 길지 않은 편에 말랑말랑한 편이다. 참고로 S보다 M이 조금 더 단단하다. 그래도 여전히 몰랑한 편)


착용

생리하기 전에 시도해볼 겸 해봤는데 잘 안 됐다. 원래 탐폰 유저라 잘 넣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동그란 어플리케이터가 있던 탐폰과는 좀 달랐다. 아무튼 어찌 꾸역꾸역 넣었더니 무언가 첫 섹스 때의 불쾌한 느낌이 떠올랐다,,( ͡° ͜ʖ ͡°) ㅎ 다리가 차갑고 저릿하고 찌릿한 불편함이 들었다. 탐폰도 이물감을 느끼면 잘못 넣은 건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잘못 넣은 거다. 탐폰처럼 아예 이물감이 없어야 한다.


넣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유툽에도 ‘menstrual cup folding’ 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와있다. 그중에 나는 동글동글 말아넣는 게 가장 편했다. 아무래도 입구가 둥근 탐폰과 유사해 편했다. 생리컵을 제대로 접어 넣고 쑥 밀어 넣으면 아무런 이물감이 들지 않았다.


라고 썼지만 이 접기 방법이 그렇게 탁월하진 않았다. 생리컵이 몰랑몰랑 부드러운 편이라 질 내에서 잘 펼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리컵의 강직도가 부드러울수록 강한 것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펼쳐지는 게 더디거나 어려울 수 있다.


생리컵을 고를 땐 여러 요소를 고려해봐야 하는데, 1) 피를 수용하는 양에 따른 사이즈도 살펴보아야 하고, 2) 질구에서 자궁경부까지의 길이에 따른 사이즈도, 3) 그리고 강직도에 따라서도 제품을 고려해야 한다. 그만큼 선택의 폭도 꽤 넓다.


말랑한 생리컵은 삽입 직전 찬물에 담그거나 헹구면 조금이나마 빳빳해지고, 접는 방법을 ‘라비아 접기’나 ‘7 폴딩’으로 시도해보면 탄력으로 다른 접기보다 펼쳐지는 게 용이하다. 라비아 접기 전, C폴딩이나 S폴딩으로 했더니 몸 속에서 잘 펴지지가 않았다. 처음 사용이다 보니 사실 C폴딩으로는 삽입부터 어려웠다.

라비아 접기
세븐 접기


이렇게 제대로 몸 속에서 생리컵이 펼쳐지지 않았다보니, 이물감은 없어도 피가 조금씩 계속 새서 속옷을 몇 개나 빨았다. 그러다 라비아 접기로 시도해보았고, 삽입 후 꼬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비틀어서 자리를 잡았더니 더이상 새지 않았다.


뺄 때

탐폰 유저였기 때문에 생리컵을 뺄 때에 대한 공포가 아예 없었다. 탐폰은 긴장을 풀고 실을 짧게 잡고 살살 빼내면 세상 편하게 제거 가능하다. 처음 생리컵을 뺄 때 탐폰처럼, 그러니까 잘못 착용했을 때 꼬랑지가 질구에 나와 있어 아주 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이가 짧은 편인 메루나 컵이 질구에 나와있다는 것은 실링(진공)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안쪽으로 제대로 자리잡지도 못 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자꾸 샜었던 거다ㅠ,ㅠ


제대로 처음 삽입을 했을 때, 다시 말해 실링이 제대로 되어 안쪽으로 잘 자리잡았을 때 생리컵 꼬다리가 질구가 아닌 저 안에 있어 깜짝 놀랐다. 속으로 ‘헐 응급실각?!?’을 외치며 완전 패닉 상태에, 손발을 덜덜 떨었고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다. 그러다보니 생리컵을 빼내기도 어려웠다. 떠는 손가락을 집어 넣어 겨우 빼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자리잡은 거였다. 실링을 제대로 했으니 안으로 잘 들어가 단단하게 자리잡은 거고, 당연히 질-경부 길이가 짧지 않은 내가 짧은 컵을 썼으니 꼬랑지도 안쪽에 자리잡는 게 당연하다. 꼬랑지가 질구 밖으로 나오면 탐폰이랑 다를 게 없지. 또 실링도 잘 됐으니 잘 빠지지 않았던 거다. 다만 내가 패닉 상태였던 것 뿐.


우선 뺄 때, 마음을 편안히 하고 질구에 우선 손가락 하나를 넣어 꼬랑지를 아래로 끌어내린다. 실링이 아주 빡빡해(잘 된 거긴 함!) 빼내는 게 잘 안 된다면 손가락 하나를 넣어 컵 한쪽 면을 살짝 누르면 공기가 빠져 빼기 쉽게 된다. 그후 아래로 끌어내린 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꼬랑지를 잡고 아래로 내린다. 이때 갑자기 압력이 팍 풀리면서 참담한 꼴이 날 수도 있으니 지그재그 비틀며 살살 돌려가며 빼낸다. 예전에 생리컵을 빼다 잘못 빼 컵을 떨어트려버렸고, 순식간에 타란티노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양이 적은 편이라 그럴 일이 없었지만 양이 많거나 제거 시기를 놓친 경우엔 충분히 그럴 위험성이 있다.


혹시 자기 길이보다 짧은 걸 사용했거나 해서 너무 깊이 들어갔을 경우 절대 당황하지 말고 자세를 바꿔가며 (낳아본 적이 없어도) 애를 낳듯, 똥을 싸듯 질에 힘을 주면(케켈 운동) 컵이 조금씩 아래로 밀려 내려온다. 자세를 바꿔 컵이 더 낮은 곳에 위치하도록 해보면 될 듯하다. 왜 탐폰도 가끔 앉아서 똥 쌀 때 힘주면 뭔가 나올 거 같잖아..

생리 주기 당시엔 별다른 세척 없이 꼼꼼하게 헹궈주면 된다. 생리가 아예 끝난 후에는 식초를 조금 섞은 물에 생리컵을 3분에서 5분 정도 담가놓은 후 물로 헹궈 잘 말려주면 된다.


생리컵 고르는 법

위에서 언급했듯, 생리컵은 양에 따라서도 사이즈가 다르지만 질-경부까지 길이에 따른 사이즈도 다르다. 길이를 재는 법은 중지를 질에 넣어 닿는 경부까지의 길이를 재보면 된다. 이때 반드시 생리를 할 때의 길이를 재야 한다. 질~경부까지의 길이는 생리 때, 아닐 때, 흥분할 때 모두 길이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생리 때의 길이를 재야 한다.


가운데 손가락을 넣으면 무언가에 닿게 되는데 그게 바로 경부다. 처음 경부를 손으로 만져봤을 때의 느낌은 매우 신기했다. 폭신폭신한 느낌. 그 길이를 봤을 때 손가락 두 마디 정도면 짧고, 다 들어가서 적당히 닿으면 보통, 도저히 자궁이 어딨는지 찾을 수도 닿을 수도 없다면 긴 편이다. 


단점

조금 샐 수 있다. 양이 많아 새는 게 아니라, 탐폰은 들어가면 피가 ‘흡수’ 되기 때문에 양이 많아서 새거나 가끔 줄 타고 핏물이 내려오는 거 빼면 거의 새지 않는데, 생리컵은 흡수하는 게 아니라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 생리컵이 제대로 진공 상태가 되지 않거나, 진공 상태가 되기까지(자리 잡기까지) 샐 수 있다고 한다. 이건 여러 생리컵 써보면서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걸, 잘 펴지는 접기 방법을 골라야 한다고.. ( -᷄ ˍ-᷅).. 주변의 프로생리컵러들에게 물어봤더니 그네들도 아직 조금씩은 샌다고 한다. 그래도 굳이 라이너를 붙이거나 할 정도는 아니고, 양이 많지 않아도 탐폰의 줄 따라 핏물이 조금 흐르는 정도인 거 같다.

라고 썼는데 내 경우엔 제대로 착용하고부턴 아예 새지 않았다.


가장 큰 단점은, 밖에서 생리컵을 갈아야 할 때 샤워를 못하는 상황이면 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칸에서 생리컵을 들고 나와 다른 사람이 있는 세면대에서 씻고 다시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 생리컵을 착용하는 그 동선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므로. 아직 실제로 밖에서 생리컵을 갈아본 적은 없지만, 친구는 물병에 물을 담아 화장실에서 제거 후 변기 위에서 헹궈내고 다시 착용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혹은 세면대 딸린 장애인 화장실에서 씻고 갈아주는 방법도 있다.


양이 많을 경우 가는 과정에서 질구나 음부 주변에 피가 묻을 수도 있으니 물티슈를 꼭 들고 가길 추천한다.  그러나 생리컵은 보통 자기 생리양에 따라 사이즈를 고르는데다 최대 12시간까지도 착용 가능하기 때문에, 밖에서 굳이 생리컵을 갈아야 할 상황이 그렇게 많을지는 잘 모르겠다.


또다른 단점은, 사람에 따라 생리통이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사바사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생리컵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생리통이 없어졌다고 하니 참고하자.


장점

돈을 아낄 수 있다. 

생리대도 비싸지만 탐폰은 더 비싸다. 생리컵은 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가격은 직구 시 배송비 포함해 대략 3~5만 원 정도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관리만 잘 해준다면 몇 년이고 사용할 수 있으니까!

일회용을 덜 쓴다. 

탐폰보다 더 긴 시간 착용 가능하다. 탐폰은 일회용에다, 성분상 권장 4-6시간, 최대 8시간만 착용이 가능하지만, 생리컵은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착용해도 별 문제 없다. 양이 넘치지 않는 이상 보통 최대 12시간까지 착용 가능하다. 생리하면서 생리 때문에 화장실을 한 두번만 가도 된다니!

수영장이나 목욕탕에 갈 때 탐폰 꼈을 때 삐죽 나오는 실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탐폰의 독성쇼크증후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쓰레기 통에 일회용 생리대의 흔적이 있지 않게 된다. 생리대를 버리기 불편한 곳에 가도 걱정 되지 않는다.

몇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탐폰 착용 후의 질 건조가 없다. 탐폰은 그 자체가 피를 흡수하는 흡수체이기 때문에 질의 수분까지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심하지 않더라도 질 건조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가끔 새 탐폰을 넣을 때 뻑뻑함에 불편했던 적이 있으니까.

여행 할 때 짐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예전에 교환학생 갈 때 그땐 심지어 탐폰도 쓰지 않을 때라, 그 두꺼운 생리대를 가방 구석구석 넣어 갔었는데. 이제는 생리컵 하나 혹은 두 개로 장기 여행 걱정 없다. 


여기서부터는 쓴 지 오래된 패드 생리대와의 비교도.

냄새 안 난다.

궁디에 안 묻는다.

사타구니에도 안 묻는다.

음모가 있다면, 음모에도 묻을 일이 없다.

자주 갈아줄 필요 없다-> 화장실 자주 갈 필요 없다.

안 덥다.

땀 안 찬다.

그래서 짜증도 안 난다.

클리토리스 섹스 및 자위 가능.

굴 낳는 느낌 안 든다.

자고 난 뒤 침대 살펴볼 걱정 없다.

상쾌통쾌~ 쾌적왕

얇은 하의에 생리대 모양 티날까봐 걱정할 일 없다.

탐폰도 패드도 다 비싸서 생리 끝난 후 약간씩 나올 때 뭔가 쓰긴 아깝고 안 쓰자니 속옷에 묻을까봐 두렵고 할 때 고민할 일이 없어진다. 그냥 하고 있으면 되니까.

그냥 다 좋다.


종합

엄마는 티비를 자주 보신다. 퀴즈쇼도 자주 보시는데, 예전에 생활 퀴즈쇼 비스무리한 곳에서 ‘여성 해방을 가져온 세 가지 물건’에 대한 퀴즈가 나온 적이 있었나보다. 엄마는 그 방송을 챙겨보시고 나한테 카톡으로 퀴즈를 내셨다. 나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탐폰과 경구피임약’일 거라 대답했다. 정답은 ‘세탁기, 콘돔, 분유’였다고 한다. 할머니 세대, 엄마 세대에는 그랬겠지. 겨울에도 빨래를 하기 위해 마당에서 물을 길어와 빨래를 해야 하고 대책 없이 아이가 생기고, 그리고 그 많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젖꼭지가 해지고. 전제는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만 했고, 아이를 (많이) 가져야만 했다는 건데, 내 답변과 엄마의 답변을 보며 그 전제가 지금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도 가사 노동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젠더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어쨌거나 인식의 변화와 기술이 무관하진 않겠구나 하고.

아무튼, 탐폰은 그만큼 나에게 해방의 존재였고 획기적인 물건이었다. 나 자신만을 위한 해방 같은 느낌. 내 스스로가 나에게서 냄새를 맡고 땀이 차고 덥고 피가 엉덩이와 살에 엉겨묻고 하는, 정말이지 욕지기가 나오는 한 달의 일주일을, 일 년의 12주를 그나마 덜 불편하게 해준 존재였다. 지금에야 또다시 익숙해졌지만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정말로 해방이었다. 얼마나 해방이었냐면, 앉아서 볼일을 볼 때 질구 밖으로 삐죽 나온 탐폰의 줄 쯤이야 귀엽게 봐줄 정도였다. 그냥 처음으로 생리 주기 때 뛰고 눕고 구르고 할 수 있었고, 밝은 하의를 염려하지 않게 됐다. 잠도 신경쓰지 않고 자게 됐다.


탐폰이 이렇게 위대한데 생리컵은 더 위대하다! 기본적으로 생리컵은 탐폰의 장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게다가 생리컵을 쓰면 다리 사이로 보이는 탐폰 끈을 볼 일도 없다. 또, 독성쇼크증후군에 대해서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미국국립보건원에 따르면 독성쇼크증후군은 반드시 탐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발생한 독성쇼크증후군의 원인 중 탐폰이 원인이 된 경우는 전체 발생의 절반 미만이다. 또한 남성, 소아 및 모든 연령대와 성별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탐폰을 갈기 위해, 혹은 패드 생리대의 피가 새지 않았나 강박에 잠을 자다 새벽에 눈을 뜨지 않아도 된다. 나 자신의 해방뿐만 아니라, 일회용품을 줄이는 것으로 더 나은 환경에 일조할 수도 있다.


탐폰에 대한 두려움도 처음엔 당연히 컸다. 우리는 보통 생리를 엄마에게 배운다. 그러나 엄마 세대까지만 해도 탐폰이 생경한 이들이 많고, 심지어 ‘처녀막’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질막이 ‘뚫릴 수 있’고 이는 ‘처녀성을 잃는다’며 잘못된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탐폰보다는 패드 생리대만 알려주거나 몇 엄마들은 탐폰 사용을 적극적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써보지 못한, 들어보지 못한 물건에 대한 두려움에 여성의 몸에 대한 무지까지 더해지니 어쩐지 탐폰은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물건이 됐다. 탐폰도 이런데, 생리컵이야 말할 것도 없다. 


탐폰을 지금처럼 눈감고도 빼고 갈 수 있을 정도까지 어느 정도 적응 기간이 걸렸다. 잘못 넣어 이물감이 느껴져 불편해 하기도 했고 질 건조에 아프기도 했고, 어떤 탐폰 제품이 나에게 잘 맞는지, 양이 얼만할 때 어느 제품의 어느 사이즈를 쓰면 될지도 꽤 적응기간이 있어야 했다. 아마 생리컵도 이제야 쓰기 시작했으니 그렇지 않을까. 어떤 제품이 나에게 잘 맞는지, 그러니까 얼만큼의 피 수용량과 얼만큼의 길이와 얼만큼의 강직 정도가, 어떤 접기 방법이 나에게 잘 맞는지, 뺄 때는 어떤 방법과 어떤 요령으로 빼야 잘 제거되는지에 대한 나름의 적응기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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