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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01. 2023

개어려운 럽마셀프..

피부염과 코로나의 대환장파티

ㅎㅈ는 태어나서 거울을 들여다 본 총 횟수보다 요 일주일간 거울을 본 횟수가 더 많다. 그 정도로 그는 요즘 매일매시간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얼마 전부터 양 볼에 울긋불긋하게 떠오른 홍조 때문이고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가 되면서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몇 주 전부터 얼굴 양 뺨이 평소에도 발그레 물들어 있었(던 것 같)다. 술 먹을 때나 추운 날 등산할 때나 떠오르던 홍조가 평소에도 얼굴에 옅게 떠 있더니 조금만 집중하거나 더워지면 마치 불에 데인 듯 새빨개졌다.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사실 딱히 거울을 잘 들여다 보지 않는 편인데 그 탓에 발견부터 늦었다. 일에 초집중 하다 화장실에 갔는데, 손을 씻다 올려다 본 자신의 얼굴이 너무 새빨개져 있어 깜짝 놀랐다. 그게 발견이었다. ㅎㅈ는 이때부터 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서야 사진첩을 올려다 보며 알게 됐다. 평소에도 얼굴이 빨개져 있던 건 이미 한참 전부터였다. 피부과에서 피부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ㅎㅈ는 늘 피부과를 싫어했다. 건강 염려증에 걸려 있어 조금만 어디가 아프면 병원에 간다. 엄마는 왜 이렇게 별 거 아닌 걸로 병원을 자주 다니냐고 핀잔을 줬지만, 그는 건강에 있어서는 염려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더 크게 아프기 전에, 더 큰 돈이 들기 전에 뭐든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허벅지 근육이 아파? 바로 정형외과로 달려 가고 아랫배가 평소와 달리 아프다? 바로 부인과로 달려 간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피부과는 영 가기가 쉽지 않다. 피부과가 더이상 병원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 병원에 들어서면 온갖 알 수 없는 영어들로 범벅된 '메뉴판'을 보며 병원이라기보단 어떤 관리숍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한편으로는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세상엔 예뻐지기 위한 온갖 방법들이 즐비한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 또는 영영 그 세계를 알고 싶지 않아서. 


ㅎㅈ는 갓 십대를 벗어난 스무 살 시절을 자존감 암흑기로 생각한다. 이마에 난 뾰루지 하나를 없애겠다고 피부과에서 용돈을 털어 염증 주사를 맞았고, 48kg이 되겠다고 쫄쫄 굶으며 연두부만 먹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 친구들이 사온 생크림 케이크을 허겁지겁 퍼먹고서 밤새 토한 적도 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신이 번 돈으로 성형 수술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ㅎㅈ는 운이 좋았다. 20대 초반,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나눔과 좋은 생각들로 암흑기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진짜 쉬웠나? 오랜 시간 지나 생각하니까 그 몇 년을 쉬웠다고 퉁치는 걸 수도. 어쨌든 그의 모습은 그대로였으나 암흑기는 잘 벗어났다. '암흑기를 벗어났다'는 간편한 한 문장이지만 그건 많은 걸 바꿔 놓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역시 간편한 한 문장이지만 그건 많은 걸 의미했다. 더이상 거울을 들여다 보지 않게 됐고 살을 빼겠다고 굶지도 않았으며 성형 수술을 알아보지 않았다. 시간과 돈을 더이상 거울을 보고 몸을 줄이고 가꾸는 데 쓰지 않고 다른 곳에 쓸 수 있었다. 다른 곳에 잘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를 이만하면 괜찮다고 진짜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더이상 외부로부터도 쉽게 연약해지지 않았다.  


30대가 된 ㅎㅈ는 종종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을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한다. 마침 30대를 마스크와 함께 맞으며, 그나마 출근할 땐 하던 화장마저 집어 치웠다. 얼굴에 무언가를 꼼꼼하게 바르고 꼼꼼하게 지워내는 일을 그만두니 더더욱 얼굴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이 줄었다. 얼굴을 보는 일이 줄어들면 이전의 얼굴이 잘 기억 나지 않는다. 여기에 점이 원래 있었는지 없었는지 뾰루지가 한참 나던 계절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 나지 않는다. 그래서 간편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여전히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특히 사진 찍히는 일이 있으면 화장을 했다. 화장을 하는 행위를 일종의 자기검열로 느꼈고 암흑기 시절 벌어진 모든 것의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고 느꼈다. 그런 한편, 화장을 포함해 오랜 역사 동안 주로 여성들이 소유해온 것들, 여성을 대표하는 기호 같은 것들에만 늘 비하적 라벨이 붙는 것에도 동시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그럼 나의 꾸미기 행위가 그런 것들과 아예 무관하냐 하면 또 당당할 수 없었다. ㅎㅈ는 가끔 고민에 빠졌다. 암흑기에서 정말 벗어난 게 맞을까? 정말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게 맞을까? 정말로 자유로운 게 맞을까? 운이 좋았기 때문에 그저 어떤 부분에선 자유로워도 괜찮았던 게 아닐까.


ㅎㅈ는 가끔 하던 고민을 양 볼에 떠오른 피부염 때문에, 또 시간이 남아 도는 탓에 일주일 내내 하게 됐다. 쉬지 않고 거울을 들여다 보고 휴대폰 전면 카메라로 양 볼을 확인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며 더더욱 느꼈다. 하루 종일 얼굴을 쳐다 보고 있으면 별에별 게 다 보인다. 언제 이렇게 기미가 내려 앉은 건지, 이번 홍조 때문에 기미가 심해진 건지, 피부염 때문에 넓어진 혈관은 한번 넓어지면 돌아오지 않는다는데, 이내 검색창에 홍조 레이저니 기미 레이저를 입력한다. 그럼 수십 개의 피부과 광고와 알 수 없는 이름들의 메뉴판이 주르륵 뜬다. 토닝 10회에 얼마…, 패키지 특가…. 다른 사람이 보면 알아 차리지도 못할 1시간 전과 지금의 붉기 차이를 수시로 비교한다. 병원도 갈 수 없는 지금, 거울 속 내 뺨을 뚫어져라 쳐다 본다고 변하는 건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ㅎㅈ는 그제서야 인정했다. 럽마셀프는 정말 개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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