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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08. 2023

지독한 계절이 흘러 가고 있다

1년 뒤 이 글을 볼 땐 조금 비웃으면 좋겠다

정말 쉽지 않은 요즘이다.


멘탈 기능이 많이 무너진 느낌인데 손 쓸 방법이 무엇일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자세히, 또 비유적으로 말해보자면, 나의 정신이라는 물을 담고 있는 그릇에 조금씩 금이 갔는데 그걸 미처 제대로 메꾸지 못하고 다시 물을 붓고, 다른 곳이 조금 새면 또 급하게 테이프를 붙이고 물을 붓고, 그럼 또 붙인 테이프가 너덜해져 조금씩 물이 새고. 그런 기분이다.


지금 나에게 너 스트레스가 많아? 우울해? 힘들어? 라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 같다. 실제로 우울하거나 힘들진 않고, 스트레스가 조금 있긴 하지만 이 정도쯤은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견디기 위해 일종의 퀘스트 같아 더 쉽다. 그런데 이대로 괜찮은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멘탈‘이 무너졌다 보다는 ‘멘탈 기능’이 무너졌다는 문장이 더 정확하다.


인생이란 진부하지만 실제로 새옹지마이고, 30여년 짧게 살면서 배운 건 좋은 흐름이 있으면 나쁜 흐름도 있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한번씩 문제가 생겨도 나름 테이프를 하나씩 붙여 가며 부닥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은 좀 힘들다. 이렇게 글을 쓰면 좀 나아질까? 그나마 금이 하나씩 샐 땐 버틸 만 했던 거 같은데, 여러 금이 겹쳐 생기니 아예 놓아 버리는 일들도 생긴다. 아직은 너무나 후순위라.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 임대인의 무리한 욕심으로 인한 전세 사고로 생각보다 너무 오랜 시간 고통 받고 있다. 그나마 함께 헤쳐 나갈 동지가 있어 다행이지만 그래도 고통은 나눈다고 반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집이 매매가 되면서 전세금을 돌려 받을 상황이 됐지만 사실 이게 다행인지도 잘 모르겠다. 매매 계약서를 보고도 J와 나는 이게 진짜인지, 임대인과 부동산이 짜고 새로운 사기를 치는 건 아닐지, 만약 사기가 아니더라도 어떤 변수로 매매가 틀어지는 건 아닐지, 그럼 우린 이사 갈 집에 계약금까지 걸어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되는 건지, 보증보험 이행 청구는 따로 하겠지만 그게 문제 없이 착착 잘 진행될지 따위 것들을 생각만 하면 숨이 턱턱 막힌다. 다음주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보낸다. 그런 동시에 임차권 등기가 설정되마자 보증보험이행 신청을 해야 한다. 모든 게 딱딱 제대로 떨어져야만 한다.


그런 와중에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얼굴에 원인 불명의 피부염이 도졌고 심해졌고, 얼굴에 바로 드러나는 질병이다보니 과하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번 앓이로 강력하게 느낀 건, 내가 질병에 과민한 상태라는 점과 얼굴에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대인기피증이 생각보다 쉽게 올 수 있겠다는 점, 그로 인한 2차적 스트레스가 너무 커 약간의 정신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기가 쉽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련 카페들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피부염을 오래 앓는 사람들은 쉽게 마음을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로 인한 2차적인 정신적 질병을 쉽게 앓는다. 내 경우도 남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내 상태를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고 그로 인한 과민 상태와 강박이 지속되고 있다. 과민으로 얼굴은 더 쉽게 열이 오르고 이젠 종종 귀와 목까지도 열이 난다. 자주 절망적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주의 평일 내내 퇴근 후 집을 보러 다녔다. 매일을 저녁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부동산을 만나고 집을 둘러 봤다. 그리고 우울감만 안고 늦은 시간 다시 내 집으로 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내일을 위해 바로 잠을 청해야 했다. 집을 본다는 건 늘 우울한 일이다. 서울에 지어진 집들 대부분은 그 자체가 우울 덩어리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창문을 열면 맞은 편 건물 외벽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해는 전혀 들지 않고 앞이 뚫려 있으면 어김없이 북쪽을 향해 해가 어차피 들어오지 않는다. 집은 또 뭐 이렇게나 좁게 지었는지 쇼파 하나 거실에 두지 못할 넓이다. 이번에도 스무 개가 훌쩍 넘는 집들을 봤다. 내가 까다로운 걸까? 보증보험이 가입 되는 안전한 집, 앞이 벽으로 막히지 않은 집, 적어도 해가 잠깐이라도 드는 집, 둘이 살기에 동선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 넓이는 아닌 집. 내 앞에 놓인 다수의 선택지가 이 반대라는 게 가장 문제였다. 다수의 선택지 중에 아닌 정답을 하나 살펴 보기 위해 시간을 너무나 많이 써야만 했다. 올바른 정답지 중 조금 더 취향과 기호에 맞는 집을 구하는 게 아니라, 오답을 걸러내는 데만 대부분의 시간이 들었다.


어쨌거나, 다행히 집을 구했다. 앞이 뻥 뚫린 남향이라 해가 잘 들어오는 집. 뷰와 위치는 조금 포기했지만, 스무 개가 넘는 오답을 보고 나면 그깟 부연 해설이 뭐가 중요하나 싶다. 이미 지쳐 버린 걸까. 그릇에 또 하나 금이 생겨 버린 걸까. 실은 집을 구하러 매일 같이 시간을 쓰느라 탁구며 발레며 영화며 온갖 일상 생활이 멈춰 버린 것도 한 몫했다. 집 밖으로 나오면 나아지지만, 자기 전과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슴이 무겁고 쿵하는 느낌이 잦아지고 잠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당장 겹친 일들이 해결될 때까지만 잠깐 필요하다 느껴 결국 처음으로 정신과를 갔고 약을 처방 받았다.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 똑같은 생각을 해도 가슴이 쿵하는 느낌이 덜하다. 약이 뇌의 관할 신경을 조절하는 거겠지.


그럼에도 또 동시에 내가 강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이런 상황에선 메타 인지가 중요하다는데 그것만큼은 잘 되는지 결국 하나씩 퀘스트를 깨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란 걸 안다. 나쁜 흐름이 있으면 좋은 흐름도 있으니까. 이런 과정들은 좋은 배움을 주고 경험으로 탄탄한 토대를 만들어 낼 거란 것도 안다. 돌이켜 보면 늘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때는 없다. 그 말은,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란 뜻도 되겠지만, 지나고 나면 잊어 버리는 좋은 정신 체질이란 말이기도 하겠다. 내년 쯤 이 글을 읽으면 뭘 또 이렇게까지 힘들어했나 하겠지. 하나씩 차근차근, 너무 과민하지 않게 너무 조급하지 않게 이 지독한 달을 잘 흘러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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