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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n 07. 2023

오래된 친구

bgm을 함께 들으시오



아무리 가족을 사랑하네 마네 해도 가족 앞에서 방구를 뿡뿡 뀌어댈 만큼 편한 이유는 다 세지 못할 시간 동안 가까이서 살 붙이고 살았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그 시간의 대부분이 머리가 굵어진 이삼십 대가 아닌 어떤 모양으로든 반죽될 수 있던 무른 시절이었기 때문일 거다.


한때는 오래된 친구들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무르던 반죽에 흙을 더 치대면서 더 단단하게 만들던 시절, 그러느라 어떤 곳에선 삐죽삐죽 조각들이 튀어나오던 시절. 그 시절에 오래된 친구들은 가끔 좀 버겁기도 했다. 단단하고 뾰죡한 부분들로 서로를 찔러댔는데 그건 10대 시절의 싸움과는 또 달랐다. 10대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생각. 20대의 나는 어느 순간이 되자 서로를 찔러대느니 그냥 그 부분들을 잘라내고 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잘라내지 못했던 건 10대 시절 살다시피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 컸기 때문이겠지. 잘라내지도 다듬지도 못한 조각들이 서로 우스꽝스럽게 엉겨 붙으며 어영부영 우린 30대가 됐다. 요즘 나는 다시 반죽에 물을 넣고 있다. 흙만 더 넣어 단단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흙을 넣기 위해 더 많은 물을 붓고 있다. 말라비틀어지고 갈라진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고, 흙이 점점 더 연해지고, 다시 조금 물러진다. 10대 때완 또 다른 모습으로 무르게 반죽되고 있다.


이 오래된 친구들은 말 그대로 가족보다 훨씬 더 가까이서 살 붙이고 살았던 애들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집을 나가고 싶었던 나는 고작 집에서 버스로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 학교 기숙사에 제 발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를 하겠다는 명분으로.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게 당연히 아니었는지 기숙사에 들어온 애들은 죄다 근처 동네 애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3년을 한 학교, 한 반, 한 집, 한 방에서 함께 살며 가족보다 훨씬 더 길고 밀도 높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이 친구들에게 갖는 편안함은 좀 다르다. 가족에게 갖는 그것과 가깝다. 최대한 좋은 면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딱히 별로 들지 않는다. 사실 눈치도 별로 안 보인다. 우리의 좋은 관계, 자매애 넘치는 건전한 관계, 성장하는 미래가 있고 비전이 있는 앞날 등 이런 것 따위 생각한 적도 없다. 어울리지도 않는다. 웩. 고3 시절 독서실에서 도망 나와 거대한 느티나무 밑에서 소와나무 생크림 요거트를 퍼먹으며 진로나 미래 이야기 대신 남자 얘기니 소개 얘기니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와 지금도 똑같다.


오늘 집 바로 옆 동네 병원엘 갔다가 그 동네 사는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소록에서 이름을 찾는 게 아닌 외운 번호를 눌러 건다. 재택하는 중이면 잠깐 집에 가도 되냐고. 회사에 있던 친구는 퇴근하고 우리 동네에 들를 테니 밥이나 먹자며 기다리라고 했다. 오래된 친구와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옆 동네에 사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꼭 생크림 요거트를 퍼먹던 시절 같다(물론 아직도 우린 가끔 생요를 함께 먹는다). 식당에 앉자마자 친구는 내 팔뚝을 보고선 무슨 초등학생 때 팔 같다며 혀를 차다가도 얼굴을 보고선 역시 사람은 살이 빠져야 얼굴 살도 빠져서.... (대충 예쁘다는 칭찬이었다).


단단해진 흙이 갈라지던 시절에는 오래된 친구들의 이런 농담들이 정말 싫었다. 사실.. 정확힌 싫었다기보다 하면 안 되는 부류의 농담이라 생각해 혼란스러웠다. 내 뾰죡하고 단단한 부분으로 찌르고 싶었다. 그런데, 솔직히 오늘은 그 농담이 너무 좋았다. 정말로 위안이 됐다. 오래도록 가까이에서 내 얼굴을 봐 오던 이가 해준 말. 여러 곳이 아파 살이 많이 빠지고 점점 건강과 외모에 속상해하는 일이 많아지던 요즘, 오래된 친구의 이 무심한 말 한마디가 적잖이 위안이 됐다. 너 살이 빠져도 지금 봐줄만하고 그러니 걱정 말고 괜찮아질 거라는 그런 말.


친구를 만나 무려 5일 만에 처음으로 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워 먹었다. 밥을 먹고 조금 걷다가 내가 장 보는 걸 구경하던 친구는 무심하게, ‘간다-’ 툭 던지고서 뒤도 보지 않고 제 집으로 향했다. 내일 또 볼 수 있고 언제든 또 볼 수 있으니까 만남-약속이라는 말도 웃기다-에 크게 애정도 미련도 없다. 서로 늘 쿨하게 간다. 상대가 서운해할 거라 생각도 안 한다. 서운할 일도 없다. 10대 때와 똑같다. 어차피 내일 또 보니까. 언제든 나오면 되니까. 친구 뒷모습을 보며 장 본 거 좀 나눠 줄 걸 그랬나 생각하다, 진짜 지묘동에 함께 살던 10대 때 같네, 여전히 얘는 내 동네 친구구나 마음이 따듯했다.


거칠게 갈라진 틈이 벌려 놓은 시간도 있지만 더 많은 시간이 무른 반죽들로 채워져 있다. 기억나는 순간들을 다 적어 내리려면 오늘 하루도 부족할 거다. 결국 우리는 그 무른 반죽들을 함께 빚어 왔는데 20대에 와서는 다르다며 우겼던 게 좀 웃기기도 하다. 웃기기만 하면 다행이지, 사실 미안했던 순간도 있다. 그래서 작년 연말엔 용기를 내 몇 년 전의 일을 사과했다. 진심으로. 물론 가족 같이 오래된 친구에게 사과하는 건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눈을 마주치며 사과하기가 어쩐지 쑥스러웠다. 눈이 갈길을 못 찾고 자꾸 뱅뱅 돈다. 그런데 가족 같이 오래된 친구를 용서하는 건 훨씬 더 쉬운 일이었는지, 친구는 평소처럼 - 10대 때처럼 - 20대 때처럼 - 여느 때처럼 비죽 거리고 비웃으며 사과를 받았다. 다만 달라진 건, 내가 더 이상 사과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다짐을 했다는 것. 음 매우 건설적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 인근 음료 공장 덕분에 단내가 온 동네에 퍼지고 있었다. 낭만적인 시간. 이 시간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방금 헤어진 친구에게 단내가 난다며 카톡을 보냈고 친구는 역시나 헛소리로 답했다. 오래된 친구. 편안하고 따뜻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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