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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n 17. 2023

요가를 시작했다

나는 요즘 불안과 함께 눈을 뜬다. 


연초부터 지난하게 싸워 온 전세 사고가 5월에 모두 끝났음에도 한 달 뒤 후폭풍을 한참 겪고 있다. 피부염은 양반이고 갑자기 귀가 계속 먹먹하더니 결국 가족 여행에서 어지러워 쓰러지고 말았다. 전세 사고에서 비롯된 불안감은 각종 질병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져 만성화 됐고, 정신과에서 내린 진단은 불안 장애, 공황 초기였다.


스트레스가 병이 된다는 말은 그저 하는 말인 줄 알았다. 기껏해야 위염 정도로 이어지는 줄 알았더니 실제로 스트레스는 신체에서 다양한 부분에 직접적으로 병을 일으킨다. 아직 질병 단계까진 아니지만 갑상선 수치도 높아지고 공복 혈당도 높아졌는데 이것 또한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단다. 몸의 여러 신체 부위에서 이렇게 구조 신호를 보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 해 곳곳마다 불을 끄는 것. 병원에서 주는 약들을 잘 챙겨 먹고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기. 그리고 매일매일 산책, 탁구, 달리기를 돌아가며 하기. 회사에서 제공하는 심리 상담 듣기. 회사에 휴직을 이야기하기. 


요가도 그렇게 시작됐다. 여러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약 때문에 몸무게가 많이 빠졌는데 대부분 근육이 빠져 근력 운동을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발레 불모지였던 동네에 마침 발레 학원이 생겨 등록하려던 날, 산책하다 우연히 요가원 간판을 보게 된 거다. '차크라'. 차크라는 산스크리트어로 바퀴를 뜻하는데 꼬리뼈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일곱 개의 에너지 지점을 의미한단다. 수련 프로그램을 보니 빈야사나 아쉬탕가 같은 양의 요가 외에 하타나 인요가 같은 음의 요가 수련도 많았다. 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거다. 


사실 5년 전 이 동네에 살았을 때 이 요가원을 잠깐 다닌 적이 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하루 8시간씩 앉아서 일을 하니 운동 좀 해보겠다고 알아보다 등록한 요가원이었다. 당시 요가에 대한 이해도 거의 없었고 그래서 그런지 막상 다니니 흥미를 금방 잃었다. 가다 말다 하다 결국 기간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수업이 아닌 '수련'인 요가의 정체성이 크게 와닿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수련이라는 표현까지도 참 마음에 든다. 강습이나 수업, 교육이 아닌 수련. 


지난 목요일, 등록하고 처음 수련을 했다. 첫 수련은 하타 요가. 선생님은 하타 요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역동적으로 계속해서 이어지기보다, 하타 요가는 한 동작(아사나)에서 오래 머물면서 호흡을 하고 힘을 느끼는 수련입니다". 5년 전 잠깐 요가를 했을 때 초보에게는 비교적 아사나가 정신없이 계속 이어지는 빈야사나 아쉬탕가만 들어, 더욱 하타 요가가 기대 됐다. 


조용한 공간에서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를 들으며 한 동작, 한 동작 천천히 수련했다. 한 시간 동안 최대한 잡생각을 멈추고 내 몸과 동작, 그리고 무엇보다 호흡에 온전히 집중했다. 그러자 어느샌가 창 밖 도로의 차 소리도 잦아들었다. 평소와 다르게 호흡을 반복해서 깊고 길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되는 기분이었다. 느리고 긴 모든 동작이 끝나고 사바사나를 하며 누워 있는데 나도 모르게 어깨가 긴장돼 있다. 의식적으로 더 긴장을 풀고 땅에 빨려 들어가듯 힘을 뺀다. 문득 앞으로 수련을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나를 구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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