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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n 24. 2023

말랐다는 말은 칭찬일까

나는 말랐다. BMI, 몸무게, 체지방율. 모든 지표가 그렇게 말한다. 더 큰 지표는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어른들의 꼭 덧붙이는 한 마디들이다. 말랐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한 횟수보다 넌덜머리가 날 정도로 들어온 횟수가 훨씬 많다. 물론 대부분은 부정적 맥락이다. 어른들은 어른이기 때문에 걱정과 애정인 척 한 마디를 던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라서 어디에 쓸까. 좀 잘 먹고 다녀라. 일은 제대로 할 수 있니. 어디 아프니. 그럴 때마다 난 내 몸과 건강을 항변해야만 했다. 내 단골 멘트는 “저 이래 봬도 팔씨름 거의 다 이겨요”. (실제로 그렇다)


더 크고 나니 어른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특히나 20대 중반 즈음부터 얼굴 살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말랐다는 말들은 다시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오랜만에 나를 만나면 왜 이렇게 말랐냐고 인사를 꺼냈다. 그다음 사람도, 그 다음다음 사람도 그렇게 물었다. 물론 내게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고 걱정이 있어서 그렇단 걸 안다. 그러나 그중 어떤 말에는 애써 부러움을 읽어내며 선해했고 어떤 말에는 약간의 안타까움을 읽었고 어떤 말에는 약간의 비하를 읽으며 그들의 의도를 왜곡했다. 말랐다는 한 마디 뒤로 어릴 적부터 숱하게 들어온 여러 문장들이 함께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자주 내 얼굴과 몸을 들여다봤다. 내 얼굴과 몸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없어 보이‘지는 않는지, ’빈티가 나 보이‘지는 않는지. 아니면 너무 늙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지.


체격과 뼈대가 작고 몸이 마른 건 콤플렉스가 됐다. LOVE YOURSELF가 사명이 되고 프로아나가 청소년들의 선망이 되는 시대에 내 몸을 사랑하다가도 혐오에 빠지는 건 너무나도 쉽다. 누군가에겐 기만일 거란 말을 본 적도 있다. 누군가에겐 기만일 거란 말을 본 적도 있다는 문장을 쓰는 데에도 자기 검열을 여러 번 했다. 옷장에서 옷을 고를 땐 너무 말라 보이지 않게, 없어 보이지 않게 입는 게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됐다. 말랐지만 운동을 많이 한 것 같은, 건강해 보이게 내 몸을 가꾸는 것 역시 중요한 미션이 됐다. 그러던 와중, 최근 약으로 살이 실제로 많이 빠지면서 더 잘 먹고 살을 찌우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사람들에게 또다시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말랐다는 인사는 칭찬일까, 안부일까, 걱정일까. 별 탈 없이 아픈 데가 없었을 적엔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떨 땐 아 그래요, 어떨 땐 아 그렇죠, 어떨 땐 아 그러게요. 또 어떨 땐 그대론데, 또 어떨 땐 잠깐 어디가 안 좋았나 뭐 지금은 괜찮아. 어떨 땐, 또 어떨 땐, 또 또 어떨 땐. 그럴싸한 답변들은 바닥이 났다. 나도 그냥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들로 대꾸할까. 그게 최선일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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