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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n 28. 2023

나의 한의원 탐방기

상처 받은 영혼들의 안식처?

한 달 하고도 조금 더 전부터 귀가 먹먹한데 여러 이비인후과를 가도 마땅한 병명을 못 찾는다. 대학병원도 마찬가지. 딱히 효과도 없는 약만 한 달 내도록 먹었다. 기술이 이렇게나 발전했는데 아직도 현대 의학이 이 수준이라니? 대학병원과 귀 전문 병원의 공통된 진단명은 특정 증후군으로 ’의심할 수 있다‘ 정도다. 심지어 무슨무슨 병이 아닌 ’증후군‘이란 단어가 붙은 이유도 명확한 원인을 모르고 따라서 그 치료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란다. 떼잉.


내 얘기를 듣던 친구 한 명이 속는 셈 치고 한의원에 가보란다. 자기도 손목이 오래 아파 꽤 고생을 했는데 일반 병원을 포함해 여러 노력 덕에 나은 거겠지만 결과적으론 타이밍이 한의원에 다니던 시절 손목이 나았다면서, 한번 가보기나 하란다. 한의원은 무슨 한의원이냐고 카톡을 치려다 삼켰다. 그렇다. 나는 목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면 당연히 정형외과를 가는, 한의원 따위는 선택지에조차 두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피부염이 한참 심할 때 눈팅하던 카페에서도 한의원을 간다는 사람들을 솔직히 안타깝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지금 가릴 처진가? 그들이 왜 한의원을 갔는지 그 마음을 이젠 좀 알 거 같다.


친구는 지역 맘카페에서 일명 ‘용하다’는 곳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네이버 카페에서 우리 동네 이름과 여러 단어들을 조합해 검색해 본다. 네이버 지도에서도 찾아본다. 카카오 지도에서도 교차 검증한다. 그렇게 침을 잘 놓는다는 동네 한의원 하나를 골랐다. 일반 병원도 이렇게 열심히 찾아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요즘 병원이 늘상 그렇듯 예약을 하지 않으면 진료를 아예 볼 수 없거나 대기 헬게이트가 열리니, 한의원 진료를 문 여는 시간인 9시 30분에 예약할 참으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소리가 한참 울리고서야 건너편에서 데스크 직원이 급한 숨을 삼키며 전화를 받았다. “예약은 따로 없구요, 오시는 순서대로 봐드려요. 내일은 환자 분이 많은 요일이라 빨리 오세요~”.


다음날.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는 게 너무 지긋지긋해 9시 15분에 도착했다. 문을 여는데.. 이미 한의원 안에는 흰머리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세 분이 앉아 계셨다.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9시 30분쯤 됐을까 데스크 직원 분이 달려오더니 갑자기 “엄마! 지금 들어가시고, 아빠! 아빠도 지금 들어가!“. 묘하게 경어와 반말이 뒤섞인 말투도 신기했지만 것보다 환자들을 엄마, 아빠로 부르다니? 나는 어떻게 부르는 거지 두근두근 하는데, 곧 데스크 직원이 내게 손짓하며 외쳤다.


”ㅎㅈ씨도 지금 들어 가세요”. 조금 섭섭하다.


당연히 진료실로 들어간다 생각해 한의사에게 어떤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직원은 냅다 나를 침대에 눕혔다. ‘왜...?’. 흔들리는 눈동자를 읽었는지 직원 분은 한의사 선생님이 직접 침대로 와 촉진하며 진료를 볼 거라고 설명했다. 처음 한의원 문을 연 순간 내 눈에 펼쳐진 내부의 인테리어. 족히 30년은 넘어 보이는, 마치 외할머니 댁에 온 듯한 느낌을 주는 깔끔하게 낡아 버린 공간. 그리고 엄마 아빠라는 호칭. 그리고 침대에 누워 진료를 받는 생경한 풍경. 모든 게 묘하게 신기했다.


침대에 누워 나른해질 참에 드디어 한의사가 내 침대(?)로 방문했다. 귀가 먹먹하고 이명이 들린다고 하니 등지고 앉아 보란다. 그러더니 한의사는 내 어깨와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디가 아픈지 물어본다. 신박한 접근이다. 귀가 먹먹한데 목과 어깨를 보다니? 직업이 뭔지, 하는 일이 뭔지 물어보고 모니터 위치를 물어본다. 혹시 최근에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는지도 물어본다. 여기.. 심리상담소가 아닌데 나도 모르게 줄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네.. 제가 올 초에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요.

- 뭐 때문에 그렇게 받았어요.

아.. 전세 사고를 당해서요.

- 어이고... 해결은 됐어요?

네.. 다행히 손해는 안 봤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한의사는 귀 문제가 목과 어깨에 있다고 봤다. 다시 엎드리게 하더니 목과 어깨를 눌러 가며 아픈 곳에 두두두두 작은 침을 쑤욱하고 박았다. 귀 뒤에는 점을 찍더니 약침이라는 것도 박는다. 약침이 대체 뭐냐고 물어보니 말 그대로 한약재를 주입하는 침이란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도대체 뭘 넣는 거지..? 하지만 약침은 이미 귀 뒤로 들어가 버렸고 약간 뻐근했다. 침을 놓고 목 중앙 아래 즈음에 전기 치료도 함께 받았다. 이게 대체 뭔가 하며 또다시 나른해져 졸기 시작할 때쯤 침이 뽑혔다. 한의사는 아주 쿨하게 자주 치료받으러 오세요~ 한 마디만 남긴 채 다음 환자 침대로 사라졌다.


1시간 정도 한의원에 머물면서 난 여기가 일종의 노령 인구의 유토피아처럼 느껴졌다. 젊고 단단한 나도 여러 곳이 아프면서 마음과 회복탄력성이 많이 약해졌고 병원에 갈 때마다 아주 짧은 진료 속에서도 내 고통이 별 거 아닌 것처럼 취급받거나, 또는 자기들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 연구할 생각은 없으니) 신경성인가?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럼 큰 병원 가보세요, 와 같은 태도를 보며 점점 의사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던 참이었다. 더 답답했던 건 각자 자기 진료과 외엔 아예 관심이 없어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다른 약이나 앓고 있는 질병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젊은 나조차도 이런데, 노인들은 오죽할까. 나이가 들면서 더더욱 설명할 수 없는 아픔과 통증이 많아질 텐데 병원과 의사의 이런 태도에 얼마나 자주 상처받을까. 그런데 이 한의원은 이 노인들을 엄마, 아빠라 부르며 친근한 반존대를 해가며 말 한마디 한 마디 들어주고 공감해 준다. 어이구 여기가 아파요? 왜 그럴까? 잘 지내셨어요? 뭐 하다 다치셨어요? 아이 그러니까 무거운 거 절대 들지 말라니까~.


한의사가 목과 어깨 여기저기를 누르며 아프냐고 물어보면 예, 아니오 대답만 하던 나도 양쪽 침대에서 대화를 듣고 왠지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런데 한의원이 그렇게 멸시받아도 (물론 나부터 멸시했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살아남아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겠단 생각이 든 하루였다. 게다가 이비인후과와 아예 접근 방법이 다른 걸 보며 약간의 힌트를 얻었다. 어쩌면 정말 목과 어깨 문제로 귀에 영향을 주고 있을 수도 있을까? 좀 더 알아봐야겠다. 물론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말에, 그 약은 얼른 끊고 한약 지어먹으라는 한의사 말엔 속으로 조금 콧방귀를 뀌었지만 말이다ㅎ


그리고..

그날 하루 내도록 먹먹함이 거의 사라졌다.

???

그다음 날인 오늘도 밤 시간대인 지금도 먹먹함이 사라졌다. 물론 하루 종일 아예 먹먹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 빈도가 훨씬 줄었다. 보통 오전엔 귀가 안 먹먹하다가 오후가 되면서 거의 종일 먹먹함이 이어지는데, 어제와 오늘은 먹먹한 시간보다 안 먹먹한 시간이 더 길었다. 이게 대체 뭐지? 오후에서 밤이 되면 더욱 먹먹함이 심해지는데 밤인 지금, 두 귀 모두 아주 평온하다.


친구 말마따나 오래 먹은 약과 심리적 문제가 점차 해결돼 가고 휴가가 시작되고 내일 여행을 떠나고 여러모로 모든 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던 참이었는데 하필 타이밍이 한의원이었다는 그런...? 영원히 알 수 없을 거다. 뭐가 중요하냐. 어쨌든 나아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지. 시간 될 때 언제든 와서 자주 받아요 라며 쿨하게 말하던 한의사와, 따로 예약 따위 잡지 않고 원할 때 그냥 와서 침 맞으세요 라던 직원들이 있는 곳이지만, 왠지 나 한 번 정도는 더 갈 거 같아. 그냥 왠지 느낌이 그래. 아무튼 오늘은 어제보다 더 편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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