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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l 08. 2023

발리에서 생긴 일

치유와 회복의 도시

저는 발리 여행 중이에요. 올해로 10년째 되는 친구들과 발리에 모였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수영을 하고, 날마다 그날 기분에 따라 적당한 요가 클래스를 골라 들었어요. 길거리를 걸으며 구석구석 구경하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커피가 맛있어 보이는 카페에 가거나 마사지를 받으며 꾸벅 졸기도 했어요. 저녁엔 당연히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셨구요. 여기까지 쓰면 다른 동남아 도시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요. 그런데 이번 발리 여행은 여러모로 제게 아주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문장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술과 커피를 마시고 있어요. 갑작스런 질병으로 술과 카페인, 과로, 스트레스, 짠 음식이 금지였거든요. 병원에선 사실상 무염식으로 식이 조절을 권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그러고 싶지도 않았어요. 한편으론 내가 그 병이라는 걸 믿지 않고 싶은 마음 반, 아니 이 병이 고작 조금 짠 음식 좀 먹었다고, 고작 술과 커피 조금 마셨다고 걸린다고? 믿기지 않는 마음 반.


그래서 여행 가기 전에 걱정을 진짜 많이 했어요. 발리 여행을 끊은 건 이 질병을 얻기 전이었거든요.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지금이라도 취소를 해야 하나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참 불안 장애로 정신과도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라 혼자 타는 비행기 안에서의 문제도 걱정이 됐구요. 태국,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 등 많은 동남아 도시를 다니면서 요즘 조금은 비슷비슷함을 느끼던 참에 발리도 동남안데 꼭 가야 할까 싶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게 여행이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아니까.


떠나기 전 불안하기만 하던 발리 여행이었는데 갑자기 전날부터 엄청 설레기 시작하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렇게 친구들과, 특히 해외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만나 여행하는 거 자체가 귀한 시간이더라구요. 그래서 좀 더 용기를 갖고 인천공항 리무진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행이 어떻냐 하면요. 결론부터 딱 한 마디로 말하자면요.

완전히 치유되고 회복되고 있어요. 몸도 마음도요.


첫날은 새벽에 도착해 아름다운 숙소에 감탄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기절하듯 잠들었어요. 푹 잔 다음날, 햇살을 내리 받아 일렁일렁 거리는 풀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했어요. 물놀이하고서 맛있는 밥도 먹고 산책을 하는데 갑자기 뭐라 표현해야 할까요. 그 감정을. 벅참? 벅찬 기분? 여행을 하다 보면요, 가끔 정말 큰 감정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주로 그럴 때 그 순간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가 되더라구요. 마치 그때의 그 익숙한 벅참이 밀려왔어요.


그날 들었던 인 요가 수업의 한 순간이 떠올랐어요. 눈을 감고 비우는 마지막 아사나를 할 때 선생님이 이걸 생각해 보라고 말했거든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금 나는 삶의 어디에 있는지


이때부터 벅참과 함께 엄청난 생각들이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떠올랐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어떨 때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는가, 나는 지금 삶의 어디쯤 와 있는가.


귀가 나아가기 시작한 건 어쩌면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결국 참지 못하고 근 3개월 만에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모두 비워낸 순간일 거예요. 스트레스를 드라마틱하게 줄이지 못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행복의 부피를 늘려내는 것이지 않을까요. 각자에게 그런 방법을 다 다를 거예요. 제게도 몇 가지가 떠올라요. 그런데요, 그건 단지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성실하게 하루를 보낸다거나 같은 건강한 것만 뜻하진 않을 거 같아요.


가끔은 무모한 행동 - 가령 귀가 아픈데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타는 선택 - 이라거나, 몸에 귀여운 그림을 그린다거나 주먹 꼭 쥔 두 손을 아기처럼 흔들 만큼 아주 맛있는 술 한 잔을 마시는 것도 행복의 횟수뿐 아니라 부피까지 늘려 내는 방법일 거예요. 즉각적인 만족도라도, 그게 영원하지 않을지라도, 혹은 영원한 흔적으로 남을 지라도요. 발리에서 저는 정말 자유롭게 입고 자유롭게 마시고 자유롭게 웃고 떠들었어요. 자유롭게 운동했고 자유롭게 걸었어요. 마치......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다시 제 삶을 되찾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요.


또 옆에는 인생의 다른 중요한 터닝 포인트에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러니 예전 20대 때 한참 첫 해외여행을 하던 시절 같은, 그런 행복과 설렘이 느껴지는 거예요. 30대에도, 아픈 와중에도 나라는 존재는 여전히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구나. 마음이 충만해졌죠.


벅참과 전하고 싶은 수십 개의 문장들이 마구 떠오를 때 그걸 정리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지금도 글이 중구난방인 거 같구요. 게다가 제 몸의 회복 외에도 발리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이 너무 많아요. 그들의 종교, 그들의 인사, 그들의 삶의 방식, 그들의 태도. 아무튼간에 발리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제 마음에 가득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삶을 살면서 다시 마음이 어려워지거나 몸이 힘들어질 때, 발리로 떠나게 될 것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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