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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ug 02. 2023

흥선대원군 엄마의 밥상이 그립다

엄마의 역사가 가득 담긴 엄마의 밥상

- 아 엄마 열무김치 국물에다가 소면 말아서 먹으면 (츄릅) 아 침 나와


동거인과 매실액 이야기를 하다 여기까지 왔다. 요즘 둘 다 한가롭게 집에서 쉬고 있는지라 바깥 음식 말고 이것저것 해 먹자 싶던 참이었다. 날이 더우니 미역냉국 국수를 해 먹자는 내 제안에 동거인은 매실청이 필요할 텐데 하며 마트에 온 것이다. 매실액과 매실청의 차이 따위를 이야기하면서 매실청을 고르는데 문득 본가에 남아도는 게 매실액이라는 게 떠올랐다.


고등학생 시절,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내 증상은 ‘과민성 대장 증후군‘, 아마도 유당불내증을 곁들인.. 각종 시험만 되면 아침마다 설사를 했다. 유당불내증이니 하는 것도 이제야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당시 그런 증후군을 알 리 없었던 엄마는 아침마다 몸에 좋다며 내게 우유를 챙겨 먹였고, 그런 날엔 꼭 항상 학교 가는 버스에서 배가 아파 하늘이 노래지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이야 내 질병을 아니 이른 아침 빈 속에 유제품을 그냥 먹지 않고 내 장에 자극적인 것들을 피하는 덕에 과민성 대장 증후군 같은 증상은 없어졌으나 중고등학생 시절의 나와 엄마는 몰랐던 거다. 그래서 엄마는 매실액이 장에 좋다는 말을 듣고 직접 만든 매실액을 그렇게 물에 타 내게 먹였고 난 그 특유의 텁텁함과 단맛이 싫어 맨날 도망만 갔다.


스무 살이 되고 자취를 시작하고서도 엄마는 꼭 매실액을 내게 한 통씩 보냈는데 썩히다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타 먹기는 진짜 싫었고 스무 살의 난들 매실액이 그렇게 한식에 많이 쓰이는지 알았나 뭐. 아무튼 동거인과 한참 매실액 이야기를 하다 번뜩 떠올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언제 매실액 한 통을 챙겨 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우리 엄마는 반가워하는 눈치다.


우리 엄마는 객관적으로 요리를 아주 잘한다. 이건 집을 떠나서야 알게 됐다. 어릴 때야 집밥 말고는 대량 급식만 먹고 자랐으니 우리 엄마가 그렇게 요리를 잘하는지 몰랐다. 다른 집도 이 정도는 하는 줄 알았지. 매일 꼭 하나의 국 또는 찌개, 그리고 김치를 제외하고서도 최소 서너 개 이상의 반찬, 저녁엔 가끔 메인 요리까지. 지금 직장인이 된 30대의 내가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맞벌이에 애 둘 혼자 독박 육아를 했으면서 어떻게 매일 매 끼니 이렇게 요리를 했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단 한 번도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거나 레토르트 음식을 내놓는 법이 없었다. 라면은 딱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점심에만 허락 됐으며 돈가스까지 직접 고기를 다지고 튀겼으니까 말 다 했지.


이런 엄마 밥상의 흥선대원군 같은 기질 때문이었을까. 대학생이 되고 서울에 올라온 나는 오히려 너무 내 식탁 바운더리가 좁았다고 생각했다. 19년 내내 한식만 먹었더니, 먹어보지 않은, 심지어 존재조차 모른 음식들이 많았다고 느꼈다. 요리는 잘했지만 가리는 음식은 많았던 엄마였는데 자식들은 아무래도 엄마 입맛을 닮아가기 마련이니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았던 거다(우리 엄마는 거의 베지테리안에 가깝다).


그래서 온갖 세계 음식들 - 태국 음식, 일본 음식, 멕시코 음식, 중국 음식, 유럽 음식, 그리고 각종 내장 류들 - 을 신나게 찾아 먹으며 세상에 이렇게 먹을 게 많았냐며 충격을 받았다. 고향 친구들 사이 별명이 소식좌*일 정도로 식욕이 많지 않고 무엇보다 이미 아는 맛에는 기쁨의 역치가 높은 편이라,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에 너무나 큰 행복과 기쁨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엄마의 밥상은 점점 잊혀갔다. 우리 엄마 요리는 잘하지만..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은걸.. 하며 엄마의 밥상은 점점 무난하고 좁고 평범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때문인가, 예전에 리틀 포레스트를 보면서도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게.

*소식좌는 다소 억울한 별명이다. 입맛이 별로 없다 뿐이지 적게 먹진 않는데..


얼마 전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한국이나 아시아, 또 다른 유럽에서 먹어보지 못한 각종 음식들을 많이 먹었는데 몸을 양쪽으로 흔들며 춤을 출 정도로 맛있는 것들이 많았다. 참 나라마다 그 문화마다 지역의 기후와 생산물에 따라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그게 너무 놀랍다. 새로운 음식 덕분인지 몇 주간 열심히 걸은 덕분인지 사라졌던 식욕이 돌아왔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다행히 식욕이 잘 유지되고 있어 아주 많이 잘 챙겨 먹고 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엄마 음식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실은 무난하고 좁고 평범한 게 아닌 아주 창의적이고 제철 재료를 잘 활용한, 엄마의 엄마에게서 배워온, 또 엄마가 살아온 지역의 특색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그러니까 엄마의 역사를 가득 담고 있는 그런 엄마의 밥상이 말이다.


여름만 되면 새콤하게 익은 열무김치 국물을 통째로 삶은 소면 위에 콸콸 붓고 직접 구운 김을 가위로 얇게 잘라 얹은 열무김치말이 국수를 내주었다. 날이 더워 입맛이 없다던 날 위해 매 여름마다 새콤하고 시원한 미역 냉국을 만들어 줬다. 밥 해 먹기 귀찮은 가을, 겨울의 어느 날엔 달콤한 제철 배추를 넓게 펴 자르지도 않고 투박하게 여러 장 겹쳐 배추전을 구워 주었다. 외할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에 매운 고추와 파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진하고 짜게 졸인 다음 직접 딴 보드라운 호박잎을 쪄 함께 쌈을 싸 먹었다. 가지를 쪄 매운 고추를 송송 썰어 국간장, 참기름, 통깨와 함께 조물 조물 버무려 주었고 토란 철이 되면 각종 채소를 넣고 되직하게 빨간 토란국을 끓여 주었다. 살짝 매운 고추 겉에 된장 베이스의 양념을 발라 찐 반찬을 내주었다. 콩잎은 찐 다음 매콤한 양념으로 무치기도 하고 장아찌로도 만들어 줬다.


아 못 참겠다. 다음 주에 본가에 내려가겠다고 전화했다. 쉬고 있는 참에 한 5일 내려갈 테니 맛있는 거 해 먹자고(해 달라고) 일단 첫날 두부된장찌개를 끓여 달라고 졸랐다. 내려가면 열무김치말이 국수도 말아먹고 호박잎도 함께 쪄 먹어야지. 배추가 있으면 배추전도 먹고 엄마가 해 놓은 반찬을 모조리 먹고 와야지. 아 진짜 침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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