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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ug 09. 2023

당뇨 전 단계 인간으로서 땅콩버터 사랑해!

땅콩버터 사 ! 랑 ! 해 ! 너무 좋아 최고야 맛있어

요즘 땅콩버터에 푹 빠져 있다. 한국에 돌아오고 집 근처에 무인 샐러드 가게가 생겼길래 호기심에 구매한 게 시작이었다. 아주 저렴한 가격이라 큰 기대 없이 가지 버섯 샐러드를 사 왔는데 되게 맛있어 감탄하며 먹었다. 특히 먹는 중간중간 전반적인 샐러드 내용물과 소스와 매우 잘 어울리면서도 좀 더 특별한 맛을 내는 무언가 하나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캐슈넛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소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너티하다? 대체 무슨 말이람. 아무튼 이 샐러드의 ‘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무릎을 치게 만드는 재료였다. 견과류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싫어하니 잘 먹지도 않아 처음엔 이게 무슨 견과류인지, 땅콩인지 캐슈넛인지도 몰랐다. 마카다미아와 피스타치오를 검색해봤을 정도니까. 그 길로 쿠팡에서 구운 캐슈넛 400g을 샀다. 과연 그 맛일까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봉지를 뜯어 한 줌 쥐어 먹는데... 그 맛이다! 그 이후로 온갖 음식에 캐슈넛을 넣고 있다. 갈아서도 넣고 빻아서도 뿌리고 통째로도 심심하면 주워 먹는다.


사실 난 견과류를 싫어했던 게 아니라, 특정 견과류를 싫어하는 거 같다. 그러니 하루 견과류 같은 모듬 견과류 봉지를 먹을 때마다 맛이 없다고 느꼈을지도? 가령 아몬드라거나 호두라거나. (취존 부탁)


땅콩은 내게 요상한 포지션이다. 아니 내가 땅콩에 대해 요상한 태도를 갖고 있다 해야 하나? 나는 땅콩이 들어가는 음식들을 원래 좋아한다. 마라탕이라든가 팟타이라든가 훠궈의 땅콩 소스라든가. 세 음식에서 땅콩의 역할은 어마 무시하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애도할 정도로 땅콩의 맛을 좋아하는데, 그런데 이상하게 견과류 그 자체로의 땅콩은 좋아하지 않는다. 있어도 안 먹으니까 싫어한다에 가까우려나? 그런데 캐슈넛은 다르다. 왜 다르지? 정확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썩 좋아하진 않는다. 그래서 맥주집에서도 땅콩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외할아버지가 당뇨로 고생하셨고 어머니는 공복 혈당이 당뇨 전 단계라 관리를 하고 있다. 가족력이 있는 만큼 나도 당뇨를 조심해야 하는데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왜냐. 나는 말랐고 액상 과당도 잘 마시지 않으며 단 음식을 별로 안 좋아한다. 운동을 거의 매일하고 밥을 먹고는 꼭 걷는다. 회사에서도 매 끼니 미니 샐러드를 먹는다. 그래서 당뇨는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공복 혈당의 위치가 당뇨 전 단계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어쨌든 당뇨도 아니고 당뇨 전 단계도 아니니 별 생각이 여전히 없었다.


그러던 올해 건강검진 결과: 님 공복 혈당 당뇨 전 단계임ㅋㅋ


안 그래도 가족력으로 조심해야 할 판에 귀 질병으로 한참 먹었던 약이 알고 보니 혈당을 높일 수 있는 약이었던 거다! 다행히 알고부터 영향을 주지 않는 약으로 바꾸었고 지금은 병이 나아 그마저도 먹고 있지 않지만, 아무튼 혈당을 높이는 그 약을 한참 복용했던 거다. 그러고서 건강검진을 했더니 세상에 공복 혈당이 105로 당뇨 전 단계가 나온 거다!


억울했다.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어쩌냐. 이제 할 수 있는 건 높아진 혈당 수치를 낮추는 것뿐. 운동은 더 열심히 하고 탄수화물과 단 음식을 더더욱 줄인다. 이제 무언갈 먹을 때 100g당 당 성분을 꼭 살펴본다. 다행히 당화혈색소는 낮은 편이라 앞으로 당뇨병으로 진전될 확률이 비교적 낮긴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니까. 그렇게 당뇨 전 단계 인간의 마음가짐으로 여러 음식들을 서치했다. 땅콩버터 이야기 하다 왜 당뇨 얘기까지 나왔냐 하면... ’캐슈넛은 당이 없는데 맛있으니까 비슷한 것들...‘을 찾던 그때 내 눈길을 확 잡아 끈 것이 바로 땅콩버터였던 것이다.




물론 주의해야 할 것은, 땅콩 100% 땅콩버터를 먹어야 한다. 시판되는 땅콩버터 중 유명한 제품들은 보통 버터를 부드럽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땅콩 외에 설탕, 유화제(팜유) 등을 넣는다. 그런 제품 말고 땅콩 100%를 그냥 갈아 만든 땅콩버터가 있다. 그런 제품들은 10g당 당이 1%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단백질은 말해 뭐해, 건강한 지방도 듬뿍이다. 대신 설탕과 유화제를 넣은 땅콩버터보다 훨씬 꾸덕하고 뻑뻑하다. 오히려 좋아.


그렇게 테스트 겸 땅콩 100%가 들어간 아주 작은 땅콩버터를 하나 샀고 3일 만에 끝내 버렸다. 다른 제품도 먹어보고 싶어 다른 회사의 땅콩버터도 조금 큰 걸로 하나 샀다. 오 더 부드러워 너무 좋아. 배가 고플 때, 정확히 말해서 허기질 때 이제 초콜릿이나 빵처럼 빠르게 당을 올려주는 음식 대신 우유에 땅콩버터 한 스푼을 넣고 번갈아 가며 먹고 마신다. 너무 맛있다. 요리를 할 때도 땅콩버터를 활용하고 우리 기특한 구운 캐슈넛도 빻아 뿌려 먹는다. 견과류 최고야. 정말 맛있어. 이제까지 미워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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