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첫째 육아휴직 중에 이용사 면허증을 취득했다. 미용과 관계없는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남편에겐 꽤나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렇다고 육아휴직의 본래 목적을 뒤로하고 다른 일에 매달린 건 전혀 아니었다. 하루 온종일 육아와 집안일을 전담하고 저녁에 내가 퇴근하면 아이를 맡긴 뒤 야간학원에 가서 늦은 시간까지 기술을 배운 것이다. 훗날 바버샵을 창업할 요량도 살짝 있었으나 당장 직업을 바꿀 생각은 없었기에 이용사 면허의 수혜는 첫째가 독차지하게 됐다.
어마무시한 울보인 첫째에게 미용실은 그 당시 언감생심이었다. 비싼 어린이 전용 미용실에서 온갖 장난감과 사탕으로 구슬려도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어댔고 때문에 이발은 최후의 보루로 늘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그랬으니 남편이 이용 기술을 배우는 것이 나로서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남편은 시험을 앞두고 마네킹의 뻣뻣한 싸구려 가발이 아닌 실제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라보고 싶어 했다. 남편은 실습을 위해, 아이는 미용실을 안 가기 위해 집 안에 간이 이발소가 차려졌다.
미용실 가는 것 자체도 낯설다고 거부하던 첫째는 소리에도 민감해 바리깡이 귀 근처에 가기만 해도 난리였더랬다. 그런데 편안한 집에서 낯선 사람이 아닌 아빠가 안심시켜주니 아이도 차츰 용기를 내주었다. 완전히 익숙해지기까지 1-2년이 더 걸렸지만 어쨌든 미용실 공포증(?)을 극복하는 데 아빠의 공이 지대했다고 본다. 아빠도 실습 덕분인지 시험에 단번에 합격했으니 여러모로 윈윈인 도전이었다. 이제는 허리가 아프다며 가위를 들지 않지만 여전히 첫째 헤어에 관해서는 남편이 전담하고 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어린 시절 아빠가 직접 머리 잘라주던 일, 좀 더 커서는 손잡고 미용실에 데려갔던 일들을 추억해 주길 바란다. 휴직해서 너를 키우며, 야간학원 다니며 이용사 자격증까지 땄던 건 다 애정의 증표였다고. 그땐 그런 아빠 드물었단 걸 꼭 기억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