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한국에서의 삶. 일과 나, 그 첫 번째 관문에서
나는 늘 착한 아이였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맞추는 것’이었다.
부모의 기대, 어른들의 눈치, 세상의 기준.
그 모든 것에 조심스럽게 나를 얹어놓고
“그래,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았다.
“버텨야지.
참아야지.
선택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
그건 나의 철학이었고, 동시에 방어였다.
⸻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막막했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이력서에 내세울 경력은 필리핀 대학 졸업이란 내용이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다.
“무엇을 할 수 있지?”가 아니라
“어디라도 날 써주는 곳이 있을까?”
그게 내가 했던 질문이다.
그땐 그 관점으로 삶을 살았다.
'나에게 선택권이 없어'라고 생가각하는 피해자의 관점.
우연히 누군가의 소개로 시작한 게 베이비스튜디오 아르바이트였다.
아이들이 울고 웃고, 부모들이 옆에서 소리치고,
스튜디오는 항상 정신없고 피곤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너무 당연하다고 느꼈다.
“누구나 다 이렇게 시작하지.”
“힘든 건 당연하지.”
어느 날 한번 베이비 스튜디오의 사장님께 질문을 했다.
"이렇게 월에 몇백을 벌어서 어떻게 집을 사요?"
"그건..."
사장님이 답을 못했다.
내가 원했던 게 이건가? 아닌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좋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
그다음은 국제물류회사였다.
거긴 더 답답했다.
파주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
물류회사의 해외영업으로 시작했다.
아빠의 가르침은 늘 단정하게, 바르게였다.
옷을 깔끔하게 입으려고 노력했고,
잘 해내고 싶었다.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외국인 주재원들의 국제 이사를 담당했다.
대기업, 국제학교, 대사관, 대학교, 문화원..
다양한 외국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집들을 볼 수 있었다.
집의 환경, 물건, 풍기는 분위기..
내가 경험했던 클라이언트들은
특별한 인상이 남지 않을 정도로 모두 '젠틀'했다.
1년남짓 근무하는 기간 동안 만난 수십 명의 클라이언트들.
그들은 나를 이사담당 매니저로 봤고, 나는 그들을 클라이언트로 봤다.
국내 영업을 담당하는 분들은 늘 나에게 말했다.
'해외 영업은 영업도 아니지, 너무 쉽고 돈도 많이 받잖아.'
그들이 나를 판단하는 관점이었다.
그래서 시샘도 받고 질투도 받았다.
그때 나는 이용당하는 사람이었다.
성적으로, 일적으로..
모든 순간 선택권이 있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계속 나는 삶에 갈증을 느꼈다.
그러나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그만둔다’는 건 무책임이었고,
‘내가 원하는 걸 한다’는 건 사치였다.
그래서 견뎠다.
울고 싶을 땐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고 울었다.
말하고 싶을 땐 메모장에만 적었다.
도망치고 싶을 땐,
그 도망이 더 두려워서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그렇게 12개월을 버티고,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곧 다시 영어학원에 취업을 했지만,
다시금 답답함을 느꼈다.
더 넓고 큰 무대에서 경험하고 싶었다.
10개월의 취준의 기간을 지나
국내 유명 제약사의 계열사로 입사하게 되었다.
대기업 소유주의 2세 대표님과의 면접,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압도될 것 같았다.
내 유일한 능력이었던 영어로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너무 기뻤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내가 결정해서, 시도해서 얻은 첫 결과였다.
⸻
나는 그때 몰랐다.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그저, 운명이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다 참고 견디며 사는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참는다’는 말이 어른스러움이 아니라
무기력한 절망일 수도 있다는 걸.
⸻
어릴 때부터 배워온 철학.
“경쟁은 나쁜 거야.”
“욕심부리면 다친다.”
“기회를 양보하면 언젠가 돌아올 거야.”
“세상은 그런 거야.”
그 믿음은 너무나 그럴듯했고,
그럴듯한 만큼 나를 오랫동안 묶어두었다.
나는 늘 누군가가 내 인생을 정해줄 거라고 믿었다.
취업도, 연애도, 인간관계도.
내가 ‘고르는 사람’이 아니라
‘골라지는 사람’이었다.
⸻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믿음은 거짓이었다.
진짜 문제는
세상이 나를 선택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먼저 배제시켰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에게 말한 적이 없다.
“넌 뭘 원해?”
“그거 안 해도 돼.”
“싫으면 그만둬도 돼.”
그 단어들을
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
그래서 나는 자주,
‘나는 선택하지 않았다’는 문장을 곱씹는다.
그건 후회가 아니라,
내가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그 선언이 완전한 자유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 안의 오래된 믿음과 습관은
이후에도 내 삶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사람을 만날 때,
일을 할 때,
사랑을 할 때,
나는 또다시 ‘선택당하려’ 애쓰곤 했다.
⸻
그때는 몰랐다.
내가 처음으로 ‘나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관계와 무너짐을 통과해야 하는지.
4장: 사회의 벽 앞에서
탄탄대로일 줄 알았던 다음 관문에서,
연애도 일도 왜 내 맘대로 안될까?
어 이게 아니네?
라고 느꼈던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