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게 맞아?
국내 TOP3 중 하나로 꼽히는 제약사 계열사에 합격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누구보다 나를 축하해 준 건,
그동안 ‘괜찮은 직장’이 뭔지 몰랐던
나 스스로였다.
영어 하나로 통과했던 면접,
대기업의 막내아들이자 2세 대표의 아우라.
그 앞에 섰을 때 나는,
태어나 처음 ‘내가 선택한 자리에 서 있다’는
착각을 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는 매일 출근 전에 옷을 고르고,
메이크업을 하고,
회의에서는 말을 아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센스 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매 순간을 조율했다.
기획서 하나, 이메일 하나,
모든 문장에
‘이 정도면 특별해 보일까?’를 담으려 했다.
지금 보면 유치하고 투박하지만,
그땐 진심이었다.
그게 나의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기획안을 몇 번이고 수정해도
대표의 반응은 늘 같았다.
“이게 아닌데…”
나를 포함한 직속 팀원들은
대표의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다시 만들었다.
나는 그때 몰랐다.
‘왜 내 기획은 설득력이 없을까?’
그제야 알았다.
그는 나를 ‘하은지’가 아닌
비즈니스의 도구로 보았고,
나는 나조차도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표면적 인정’을 얻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예쁘게 보이면,
센스 있어 보이면,
조금 더 똑똑해 보이면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인정.
그건 쉽다.
조금만 신경 쓰면,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적 인정’은 달랐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내가 나를 바라보았을 때
“그래, 나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감정.
그건,
나와의 작은 약속을 지켰을 때만 얻을 수 있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그게 없을 때, 사람이 얼마나 공허해지는지를.
여자 상사가 들어왔다.
처음엔 기대했다.
여성 리더십은 조금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안을 덮기 위해
주변을 통제하고,
내 의견을 경계했다.
“그거 대표님이 좋아하실까?”
“왜 나서지?”
눈빛 하나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는 다시,
내 생각보다 ‘눈치’를 먼저 보기 시작했다.
그 시절,
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일곱 번을 헤어진 연인.
그는 늘 말했다.
“넌 너무 예민해.”
“왜 이렇게 서운한 게 많아?”
“난 너의 아빠가 아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상한 줄 알았다.
사랑도,
일도,
나는 늘 ‘나를 고치는 프로젝트’로 살았다.
그러다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는
바이오 벤처로 이직했다.
이직자리를 제안한
다른 회사의 부사장은
결국 오지 않았다.
내가 기대했던
‘나를 끌어주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또, 혼자였다.
그러다 국내 1등 뷰티기업에서 성공경험이 많은
총괄이 새로 부임했다.
겉으론 예뻐해 주던 총괄은
내가 내놓은 결과물에
거침없이 말했다.
“별로야.”
“왜 이렇게 했어?”
“이게 유치하잖아.”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난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다”는 말을.
모든 걸 잃을까 봐,
두려웠다.
결국,
의약품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그곳에서
“내가 이 급여만큼의 가치를 내고 있는 걸까?”
질문만 반복했다.
그리고,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그때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왜 평범한 회사생활이 나에겐 이렇게 어려운 걸까?”
지금 돌아보면 안다.
그때의 나는
늘 ‘선택받으려는 사람’이었다.
내가 선택하는 삶이 아니라,
골라지기 위한 삶.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다.
“넌 진짜 뭘 원해?”
그 질문이
인생을 바꾼다는 걸,
그때는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