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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아우라가 있는 사람들 속에서

왜 나는 저 사람들과 다르지?

by EJ

그 회사를 나와

나는 처음으로

스타트업에 발을 디뎠다.


기업명은 ‘페이워치’.

‘근로자 임금 선지급’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가진 핀테크 기업이었다.


처음 이 회사를 소개받았을 때,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상태였다.

회사를 옮기는 일이 익숙했지만,

어쩐지 이번엔 조금 다를 것 같았다.


나를 부른 마케팅 총괄은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와 함께 새로운 브랜드 리뉴얼을

기획해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스캔들로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남겨진 사람’이 되었다.


의외로 그 상황은

내게 기회를 안겨주었다.

나는 마케팅 리드로 승진했고,

‘페이워치’라는 브랜드의 국내 리뉴얼을 맡아

전체 브랜딩을 총괄하게 되었다.


글로벌 본사와 국내 팀 사이에서

허브 역할을 하며,

전략 기획, 디자인, 메시지, 콘텐츠까지

전반을 이끄는 포지션에 섰다.


마케팅 예산도 월 2천만 원.

그때의 나는 몰랐다.

나를 그 자리에 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를 신뢰한다’는 증거였다는 걸.


나는 여전히

인정받고 싶어서,

칭찬 듣고 싶어서

끊임없이 성과를 증명하려 애썼다.


대표님은 성격이 직설적이고, 빠르셨다.

그의 피드백은 명확했고, 날카로웠다.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처음엔 상처를 받았다.

왜 나만 이렇게 부딪히는 걸까.

왜 내 기획은 자꾸 다시 수정되는 걸까.


지금 생각하면,

그는 나를 키우기 위해 말한 것이었고,

나는 내 불안을 투영하며

그의 피드백을 ‘거절당함’으로 해석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믿었다면,

그 말들을 더 유연하게 받아들였을 거다.

오히려

“그럴 수도 있겠다. 한번 더 열어보자.”

라고 생각했을 거다.


나는 그 시절,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는 일에는

집중력을 잃곤 했다.


시간이 걸리는 것,

프로세스가 복잡한 것엔

지루함을 느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마케팅이란 본래 그런 것이다.

쌓이고 쌓여야 드러나는 것,

사람의 마음이 변하고,

브랜드에 스며드는 시간의 예술.


나는 그걸,

‘나한테 재능이 없어서 그래’라고 단정 지으며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결과로 나를 판단했고,

빠르게 눈에 띄는 성과로만

존재의 가치를 매기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다들 아우라를 가진 멋진 사람들이었다.


회사의 대표였던 김 대표님.

국내 마스터카드 지사장을 지낸 분이었고,

글로벌 대기업에서 기획과 마케팅을 총괄했던 분.

그의 말에는 방향성이 있었고,

그의 질문에는 맥이 있었다.


회의를 주도하는 그를 보며,

나는 나 자신을 자꾸 비교하게 되었다.


“나는 왜 저렇게 통찰력 있는 질문을 못하지?”

“왜 저 자리에서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질까?”


그와 함께

글로벌 UX/UI컨설팅 그룹인 데이라이트의

한국 PM MJ와 일하게 되었다.

브랜드 리뉴얼의 현장을 함께하며

나는 글로벌 팀과의 소통을 배웠고,

나의 장점이 ‘허브 역할’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한쪽의 언어를 다른 쪽에 옮기고,

필요한 메시지를 포착해 매끄럽게 정리하고,

중간에서 긴장을 완화하는 그 과정이

어쩌면 내가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일이 무르익을 즈음,

나는 점점 더 중요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50 에세이 – 홍정욱 회장의 책.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치열한 삶 속에서도 품격을 유지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는 늘 직관을 따랐다. 가슴의 소리를 따르면 실패해도 후회가 없었다.”

“진정한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삶이다.”

“자신감의 원천은 오로지 성취뿐. 작은 목표라도 반드시 달성해 자신의 의지와 역량에 대한 신뢰를 축적해야 한다.”


내면을 향한 통찰.

모든 게 조용한 아우라였다.


또 다른 날엔

슈퍼주니어 최시원 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는 초기 투자자로 회사를 응원하던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나는 그의 진심이 묻어나는 눈빛을 보았다.

촬영이 끝난 후,

그는 우리 모두에게 진심 어린 인사를 남겼다.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그때부터 나는 묻기 시작했다.


‘무엇이 한 사람을 빛나게 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그저 말없이 있어도 분위기를 바꾸는가?’


나는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달았다.


그 사람들은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자기를 알고,

자기 시선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여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회의 중에 누군가의 표정이 굳어지면

‘나 때문인가?’

‘내가 잘못했나?’

자책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건 그 사람의 감정이고,

내가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해석하고 있었다.


결국,

페이워치를 떠났다.


그리고

나는 내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


이건 성과도, 누군가의 선택도 아닌

내가 나에게 묻고,

내가 나에게 대답한 결과였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답을 찾아 나선

지극히 사적인 여정이었다.


그리고 그 소망을 담아 만든 브랜드는

My aha moments -

‘아하즈(ahaz)’


이해와 공감, 질문과 대화,

그 속에서 진짜 자신을 만나는 공간.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다.


작고,

부족하지만,

내가 먼저 선택한 일.


누군가에게 자신을 발견할

계기를 제공하는 것.


사실,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하고 싶었다.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고,

남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을 찾고

만들고 싶었다.


지인 중 태국에서 커피 농사를 지으시는 분이 있어

생두를 매입했다.


그리고 커피원두 OEM을 오래 하신 대표님과

로스팅 챔피언 팀을 소개받아

우리 생두를 로스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센서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 향‘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이 갖고 있는 ’ 오감‘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을 통해

외부를 향한 시선과 생각이

내부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브랜드를 브랜딩 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브랜드에 나의 바람을 담는 것과

상품을 판다는 것에 갭이 크게 존재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고객들에게

이 제품이 해결점이 될 수 있다는

간접 경험을 시켜줄 경험 창구가 필요했다.


판매를 위한 물류, 유통, 온/오프라인 고객 접점

마케팅, 영업, 전략 등..

온라인 스토어로만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원두’는

하나의 옵션일 뿐이었다.


나는 나의 꿈을 장기전으로 가져가기로 하고

다시금 회사로 발을 옮겼다.


나의 삶을 R&D의 장이라 생각하고,

자본과 기업체

그리고 그 시스템들에 대해

조금 더 경험하기로 결정했다.


나만의 아우라를 발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다시 사회 속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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