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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최악의 순간, 에고가 깨졌다

나는 무엇을 보며 어떤 것을 갈망하며 살아왔는지 깨닫게 된 순간

by EJ


더드림헬스케어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직을 만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단둘로 시작한 전략본부. 당시 나를 부른 상사와 나.


처음 경험해 보는 노인 대상의 시니어 헬스케어.

시장의 기본 구조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수령하는 장기요양보험 제도 안에서

오프라인으로 제공되는 재가서비스와 요양시설 서비스로 나뉘어 있다.


처음엔 조용했다. 뭘 해야 할지 몰랐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시간은 움직였고, 우리는 일을 만들었고,

시니어들에게 보다 편리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서비스를 만들었다.


팀은 늘어났다. 전략, 기획, 마케팅, 디자인, 개발까지.

본부는 총 12명이 되었다.


내가 직접 뽑고 인터뷰했던 사람들,

그리고 상무님이 데려온 사람들,

미팅을 리드하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기획안과 개발 티켓을 나누고 회의를 정리하는 건 대부분 내 몫이었다.

그런데, 나에겐 늘 불안함이 있었다.


이 팀이 언젠가 깨질까 봐.

누군가 나를 ‘실력 없는 리더’로 볼까 봐.

대표님이 내 의견을 묵살하면, 내 존재가 부정되는 것 같았다.

팀원 하나의 무표정에도 가슴이 철렁했고,

회의 중 누군가 나를 지적하면 얼굴이 화끈거렸다.


‘리더가 된다는 건, 이렇게 고독하고 불안한 일이었나.’


그 시절, 나는 완전히 ‘나’가 아니었다.

‘리더로 보이는 나’, ‘성공한 마케터처럼 행동하는 나’,

‘분위기를 장악하는 나’를 연기하고 있었다.


아무도 몰랐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괜찮아, 괜찮아, 나 잘하고 있어”

스스로를 다독이는 나를.


어르신들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며,

나는 시니어 세대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요양원 상담을 받고, 등급 판정을 기다리고,

서류 하나에도 서툴러 곤란해하는 어르신들.


이분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연결한다고...?

우리가 설계한 서비스의 한계를 느꼈다.


반면, 데이케어 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직접 뵙고,

장기요양분야에 오래 몸담으신 어르신들을 보며

삶을 오래 살아낸 사람은 다르다는 걸 느꼈다.


그분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절망도 이미 겪은 사람처럼,

기뻐도 조용했고, 슬퍼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분들 앞에서 나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단 한마디 평가에 무너지고,

결과 하나에 자존심이 오르내리는…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는 ‘가짜 성인’이었다.


더드림헬스케어에서 나는 나의 불안을 키웠다.

하지만 그 불안은 미메틱스에서 폭발했다.


연봉 1억 1천만 원. CMO. 브랜드 디렉터.

스타트업의 창립 멤버.

내 이름으로 만든 브랜드, 내 손으로 쓴 슬로건.


모든 게 ‘드디어 이룬 것 같았던 순간’에

내 안은 공허했다.

더 잘해야 할 것 같았고, 더 증명해야 할 것 같았다.

대표가 인정하지 않으면 초조했고,

같이 일하던 이사들과 대표와의 미팅에서

한마디 어긋난 피드백이라도 받으면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그리고 나만큼 열심히 고민하지 않는 것 같은

다른 이사들을 보며

더 스트레스를 받고 그들을 비난했다.


자다가 일어난 새벽에 숨이 안 쉬어졌다.

새벽, 가족도 아니었다.

119에 전화를 걸었고, 살려달란 말을 했다.

나를 데리러 온 앰뷸런스 안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생각도 정리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왜 이러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모든 걸 잘 해내는 CMO’가 되려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받아들여지기보단,

드롭되는 결정들이 많았고,

결국 대표는 날 정리해고했다.


그 시간을 나는 ‘나의 에고가 죽은 시간’으로 정의했다.


사직서를 쓰며, 협상을 하며, 위로금을 조율하며,

나는 내 안의 추악함을 정면으로 봤다.

“이만큼 일했으니 이만큼 보상받아야 해”

“나를 이렇게 자르면 너는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거야”


욕망과 자격지심,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무엇보다

인정받던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공포.


모든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 후, 일을 멈췄다.

부당해고이기에,

스타트업에 초기에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않은 분함과 분노를 버리고,

대표에게 다른 사람들은 혹여 이렇게 정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다시 교회에 나가고,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신을 다시 찾기 시작한 순간부터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이 모든 과정이 나를 깨닫게 하는 과정이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심이 많았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어느 날 밤,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근 채

호흡에 집중하며 어깨에 의식을 보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이 눈물로 번졌다.

숨을 들이마시며 속으로 말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그게 처음이었다.

내가 나에게 진심으로 건넨 말.

누구의 위로나, 책 속 문장이 아닌

내가 내게 건넨 온전한 인정.


지금 나는 다시 일을 한다.

에이닷큐어에서 CMO로 일하고 있다.

예전처럼 리더고, 기획하고, 브랜드를 만든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나는 이제 결과로 나를 증명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로도 충분하다는 걸

내가 먼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나를 휘감지 않는다.

나는 그 감정을 알아보고, 받아들이고, 흘려보낸다.

불안은 없애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다.

그걸 이제 알았다.


내가 만들어갈 팀, 내가 만든 브랜드, 내가 만든 성과.

그 어떤 것도 ‘진짜 나’는 아니다.


진짜 나는,

무너지고, 아프고, 쓰러졌고, 상처받았지만

다시 일어나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온

그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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