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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jjoo Sep 06. 2019

각자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오롯이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께 출발선에 섰던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나가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새로운 온라인 마케팅 강의를 들었다. 두 달에 걸친 여덟 번 강의에 350만 원을 냈으니, 나름 고액을 투자한 셈이었다. 수강생은 서른 명이 훌쩍 넘었고, 다들 사업쪽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한동안 SNS를 쉬었다 다시 시작하려니 역시 쉽지가 않았다. 명상을 시작한 뒤로는 휴대전화에 깔린 SNS 관련 앱을 다 지웠었다. 카카오톡도 한 번에 몰아서 확인했으니, ‘디지털 디톡스’ 생활이라 할 만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모바일 중심의 소셜 미디어 마케팅 강의를 들으니 초반부터 버벅대기 일쑤였다. 벌써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하는 나이가 된 걸까? 서글퍼지는 동시에 마음이 급해졌다. 나이 탓은 변명에 불과했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강의 초반에는 성과를 보이는 사람이 적었다. 대부분 나처럼 어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놓고 있었는데, 중반부터는 다른 사람들도 슬슬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마음에서 난리가 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데 ‘나’라는 에고의 마음이 성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비즈니스 인스타그램 계정 만드는 법은 왜 이렇게 복잡한 거야?’

 ‘페이스북 친구 5천 명을 두 달 만에 만들라고? 그건 무리라고!’


한 주 한 주, 새로운 강의가 거듭될수록 허둥대다 슬슬 놓 아버리기 시작했다. 혼자서 매주 새로운 SNS 계정을 만들고 커리큘럼대로 실천해가는 건 무리였다. 알바나 직원을 쓰는 다른 수강생들과 속도를 맞추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마음을 바라봤다.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이거다’ 하는 대답 없이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하지만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쫓아가기를 멈추고 내 속도대로 나아가야 함을. 무리해봤자 내 가랑이만 찢어질 거란 사실을.



매주 명상원에서 걷기 명상을 한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모두 제자리에서 시작하지만, 걸음걸이도 속도도 저마다 다르다.


30년 넘게 명상해온 선생님은 꽤나 거침없이 발걸음을 떼어낸다. 통증클리닉 원장님은 주로 손을 앞으로 마주잡고 아주 조심스럽게 걷는다. 그리고 가끔 턴을 하지 않고 멈춰서서 한 곳을 응시한 채 한동안 명상한다. 

작년 봄부터 함께한 미국인 케이트는 맨발로 걷는다. 나는 뒷짐도 지었다가 손도 풀었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눈도 팔았다가 다시 주의를 몸으로 돌려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걷곤 한다. 명상이 끝났음을 알리는 좌종 소리가 울리면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걸음걸이와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서로 다름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삶에서는 왜 그게 안 되는가?


우리 각자의 삶은 한 편의 ‘오디세이아’이다. 그 대서사시의 완성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각자의 이타카 여행이어야 한다. 그 길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 우리의 순례이다. 당신의 이타카는 무엇인가? 당신은 그 이타카로 가는 길 어디쯤에 있는가?


류시화 시인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서 우리 각자의 삶이 ‘오디세이아’ 같은 대서사시이고,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이라 했다. 



삶은 나만의 독특한 시간이다.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타인의 인생을 흉내내기란 도무지 불가능하다. 


내 삶에서 만나는 돌, 바람, 웅덩이, 비, 바위 같은 것들이 모여 삶의 길이 만들어지고, ‘하나뿐인 내 인생’이 된다.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길은 저마다 다르고 여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생에는 규정이나 마감시간이 없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우리만의 독특한 여정을 경험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언제, 어디에 반드시 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없다. 우리는 어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때론 비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비바람이 멎으면 따뜻한 햇살과 함께 들꽃을 감상하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피곤하다면 잠시 나무 그늘을 빌려 쉬어 갈 수도 있다. 오던 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갈 수도 있다. 


이 여행의 끝은 죽음이다. 삶이란 여정은 죽음을 맞이해야 끝이 난다. 그렇기에 빠른 시간도 늦은 시간도 없다. 우리는 각자 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가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과 걷는 속도가 다르다고 불안해하지 않으려 한다. 불안함을 지긋이 바라보며 나와 거리를 두려 한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걸음으로, 나는 나의 걸음으로 걷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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