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jjoo Aug 23. 2019

왜 엄마와 대화할 때면 늘 화가 날까?

새롭게 배워가는 대화의 기술

엄마, 이거 또 제대로 안 껐잖아! 왜 이렇게 신경을 안써!


어코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엄마는 언제쯤이면 가스레인지를 제대로 끄고 가스밸브도 잊지 않고 잠글까? 


나이 든 부모님과 살다 보니 신경 쓰이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화장실 불은 마냥 켜두기 일쑤고, 쓰지 않는 가전제품 코드를 뽑지 않으며, 수돗물을 밤새 콸콸 틀어놓고 주무신 적도 있다. 이런 것에 민감한 나는 부모님의 사소한 실수들을 바로잡는 일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모님에게 휴대전화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일은 또 어떤가? 말 그대로 인내심 테스트다. 아빠는 그래도 조금 낫다. 엄마는 매번 새로 배우는 듯이 행동한다. 


“진작 가르쳐주지. 이렇게 쉬운 걸. 처음부터 알려줬음 좋았잖아.” 

‘엄마, 벌써 몇 번이나 가르쳐준 내용이잖아.’ 


말해봤자 입만 아프기에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쌓였던 화를 폭발시키고 만다. 


“아, 몰라. 아빠에게 물어봐. 아님 언니에게 물어봐.” 


가뜩이나 반복을 싫어하는 내게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설명해야 하는 일은 고문에 가깝다.


어릴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였던 그런 존재였는데.


점에 가면 대화법에 관한 책들이 아주 많다. 

‘대화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싶을 만큼 수두룩하다.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문자나 카카오톡을 주고받는 일이 훨씬 많은 시대이다 보니, 책 내용은 대부분 내 의사를 상대방이 받아들이게끔 어떻게 말하고 설득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명상을 통해 배우는 대화의 기술은 좀 다르다. 명상을 하고부터 상대방의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을 살피게 되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건네는 말에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잘 모르는 사람이나 사업 때문에 만나는 사람과 말할 때는 그나마 낫다. 서로 한껏 예의를 갖추고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니까. 하지만 가족에게는, 상대의 감정 따윈 고려할 새도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해버린다. 


마는 가장 만만한 존재이다. 

가족 모두의 투정과 짜증을 다 받아주는 사람. 오랜 세월 생활비를 버느라 궂은일도 마다 않았던 사람.


평생 일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여행이라곤 내가 이탈리아에 살 때 놀러 온 일주일이 전부였던 나의 엄마에게 내가 얼마나 무턱대고 짜증을 많이 냈는지 몰랐다. 명상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는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빠랑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더구나 아빠는 시간이 지날수록 대화하기 힘든 상대가 되어간다. 매사 부정적이고 자기 말만 무조건 옳다고 하고, 행여 반대하는 얘기를 하면 금세 삐친다. 


엄마는 그런 아빠의 투정을 다 받아줘야 한다. 거기에다 가끔 나도 짜증을 보탠다. 내가 엄마였다면 진작에 휴업 선언하고 혼자서 나가 살았을 것이다.


가끔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엄마는 내게 풀어내지만, 나는 엄마가 쏟아놓는 감정이 무겁고 버겁다.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엄마와 대화할 때면 자주 화가 난다. 엄마가 말을 잘 못 알아들어서 같은 말을 자꾸만 되풀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짜증을 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의심 없이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했던가? 내 말을 못 알아듣고, 전에 했던 얘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버럭 화를 냈던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쉽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는다. 애써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에게 이토록 쉽게 짜증을 내는 건 엄마 탓이 아니다. 오랫동안 가져온 습관 때문이다.



음챙김 명상에 익숙해질수록 이런 내 모습을 더 쉽게 발견한다. 


물론 아직은 발끈하고서 뒤늦게 ‘앗!’ 하고 알아차리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일단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 뒤에 말들은 제동을 걸 수 있다. 

일단 멈추고, 한 박자 쉰 다음에 말하면 후회할 일이 줄어든다.  


자애 명상을 한 뒤로 엄마를 향한 연민의 마음이 생겨났다. 

사실 여전히 자애 명상이 어렵다. 자애심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는 마음의 공간이 넓어짐을 느낀다. 불쌍하다거나 애처로운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지 않고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면 선한 마음이 앞선다. 


명상을 통해 대화하는 법을 새로 배워나간다. 


상대방에게 상처 주지 않고 대화하는 법. 흥분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마구 내뱉지 않는 법, 감정을 가라앉힌 침착한 마음으로 지혜롭게 말하는 법, 내가 상처를 준 상대에게 연민을 갖고 말하는 법. 


학교와 사회 그 어디에서도 배우지 못했던 값진 기술을 명상을 통해 배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고독을 즐기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