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 꿈은 뭐였을까?
내가 살아있다고 느낄 수 있는 일
어릴 적에, 나는 나가뛰놀며 친구들과 함께하는걸 무지하게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행사가 있거나 동네에서 무슨 축제라도 하는 날이면, 장기자랑 타임에 꼭 나가서 유행하던 '테크노' 댄스를 추기도 하고 때로는 막춤을 추며 몸 속에 내제되있던 흥 DNA를 마구 분출했다.
물론 그 춤이 엄청난 소질이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맞추어 스트레스를풀며 내맘대로 몸을 흔드는 행위' 같은 것이었기때문에 지켜보는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같이 즐기기도 했지만 반면에 흠칫놀라기도 하고 '어머 저게 무슨춤이야' 하는 눈으로 구경하기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그때 나는 창피함을 몰랐다.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 신난 그 분위기 자체가 너무 즐거워 자신있게 마음이 따르는대로 몸을 흔들고 즐길 뿐이었다.
학교 체육시간에도 피구나 발야구를 하면, 너무 즐거워 엔돌핀이 돌았고, 잘 해내서 친구들이 우러러보거나 멋있다고 해주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음악이나 노래도 너무좋아하여,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항상 합창반에 들어갈 수 있었고, 친구들과 같이 연습하고 화음을 쌓아 노래하는 행위를 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오로지 '나 자신'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인 것 같았다.
엄마가 이런 내 적성을 미리 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옆집 아주머니가 딸을 합창단에 보내는 것을 알고 유행처럼 따라하여 시에서 주관하는 합창단에 나를 데려가 보내준 적도 있다.
또, 수영학원에 보내주기도 하여 너무 재미있게 다녔는데 한 2년을 다니고 엄마는 '그 정도면 됬다'라고 하여 갑자기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도 보내주었는데, 나는 예체능을 좋아하여 피아노 치는것도 너무 즐겼고 계속 다니고 싶었지만,
언제나 끝내는 순간은 엄마에게 달려있었고 내가 '나 피아노 좋아. 수영 좋아. 더다니고 싶어' 라고 해도 엄마는 엄마가 내 학원을 끝내고 싶은 순간에 언제든지 나에게 '이제 그만'이라고 통보하며 학원을 그만두게 했었다.
그 때는 그래도 여러 다양한 학원을 보내주었다는 사실에 더 큰 의의를 두므로, 엄청 한이되거나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냥 다른친구들처럼 학원을 끊는 날에 조금 서운하다가 말 뿐이었다.
그러다 중학교 때 하루는 학교 수행평가에서 내가 만든 안무로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여 A점수를 받고, 그걸로 반 전체가 체육대회때 단체안무를 하기로 하여, 내가 지휘를 해서 진행한 적이 딱한번 있었는데 이 때 나는 '아 내 적성은 춤이다. 춤을 더 배우고싶다!'라고 생각하여 쑥쓰러웠지만 엄마에게 용기내 말한 적이 있다.
'엄마! 나 춤 배우고 싶어. 나도 처음알았는데 내가 춤을 좋아하는데, 특출나게 잘추는 건지는 모르겠어서 댄스학원을 한번 몇달이라도 다니면서 알아보고 싶은데, 한달이라도 보내주면 안될까?'
나는 어린마음이지만 고심끝에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뭐 물론 그 당시나 지금이나 중학생이 갑자기 댄스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면 어떤 인자한 부모라도 쉽게 '그래'라고 하겠나 싶지만, 아니나다를까 엄마는 코웃음치며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갑자기 무슨 댄스냐 공부나해라' 라며 대화를 차단했고, 나는 좌절하여 한 두번 더 말하고는 그냥 방구석에서 몇번 연습이나 하고 말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두고 아빠는 훗날 TV에 춤추는 사람이 나올 때 마다 'ㅇㅇ(나)이 저거 한다고 했잖아 하하' 라며 항상 콕 찝어 언급하고 비웃었다.
나는 그 때 나름 진지했었는데, 엄마 아빠는 그걸 그냥 '허파에 바람들어간 소리'정도로 여기고, 다 커서까지 비웃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공부할 나이고 겉멋들 나이였으니 학원을 안보내준것까지는 이해가 가지만 커서까지 그렇게 굳이 비웃을 필요가있는지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그런 얘기할때마다 나는 민망해하며 겉으로는 함께 웃어넘기면서도, 방에 들어가서는 '그게 뭐가 그렇게 아직도 웃겨'라고 생각하며 기분이 상해서 분노한 적도 있다.
하나 더 기억나는 일화는 초등학교 때, 걸스카우트도 너무나 하고싶었다. 그 제복이며 활발하게 외부에서 활동을 하는 모습은 나한테는 너무나 멋져보였고 즐거워보여 엄마한테 '걸스카우트 신청 통지문'을 가져가서 흔들며 '엄마! 나 이거 하면안되? 제발' 이라고 했었는데 엄마는 당연히 '안돼.' 라고 못박아 얘기했고, 나는 같은반의 걸스카우트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신나게 캠프파이어를 하는 날 멀찍이 떨어진 놀이터 정글짐에 올라가 따로 그 모습을 구경하며, '아 내가 저기 있으면 더 잘했을텐데, 너무너무 재미있었을텐데'라고 부러워하며 씁쓸하게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훗날 반전으로 엄마가 내향적인 동생은 하기싫다는 그 걸스카웃을 굳이 데려가서 제복도맞춰주고 따라가서 캠프파이어를 시키는모습을 보았는데, 그때는 어이도없고 원망스러워서 속이 타들어갈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원할때는 절대안시켜주더니 동생은 하기싫다는데도 해주네.'
사실 이런 내용들은 따로 엄마가 악독하다거나 나빴기때문에 특별하게 한이 맺혔다고 할만큼의 '사건'같은 내용들은 아니다. 그저 내가 어릴때 간절하게 원했던 순간들이 이루어지지 않았을때 들었던 '아쉬움'이나 '슬픔'같은 감정에 대한 기억들이다.
그런데 30대 중반인 지금은 저런 비슷한 류의 아쉬움이라도 느껴보고싶다.
지금은 회사를 퇴사한지 한달이 되어가므로 앞으로는 뭐해먹고 살 수있을까 생각하다가 미래가 안정적인 '공무원'을 준비해야하나 싶어 한참을 인터넷도 뒤지고, 당근에서 중고수험서도 사는 등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걸 정말 간절하게 하고싶은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직업적으로 '간절하게' 내가 하고싶은 일은 아닌것 같았고(시켜주면 땡큐지만), 앞으로 언제짤릴지 모르는 회사를 다녀야 하는 미래가 막막해서 육아나 남편을 위해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이 좋겠다 싶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선택해야하는 생계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어느때보다 심도있게 직업적 고민을 하는중이지만, 어릴때처럼 '댄스학원에 다니고 싶다'거나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다'고 주장할때처럼 엄청 설레이거나, 이걸하지못하면 너무 아쉬울것 같다거나 하는 감정은 전혀없이 그저 '이 길로 가면 사는게 좀 덜 괴로울까?' '50대까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과 막막한 감정만 들 뿐이다.
몇 년동안 생각해보지만 내가 해야하는 돈 버는 일에는 그 어떤것도 어릴때만큼 나를 설레게하거나 잠못이루게 하는 일은 없다.
어릴때는 단순히 공을 던지는 것도 재미있었고 음악에 몸을 흔들기만 하는것도, 같이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도 벅차올랐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에도 '설레임'을 느낄 수 없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에는 질려버렸으며, 그저 월급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며 끊임없이 남들만큼 노력해야하는 '의무감' 혹은 '시지푸스의 바위 같은 형벌'을 행하고 있는 것만 같다.
도대체 내가 하고싶은것들은 다 어디로갔을까, 아니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이룰 수 있는 '꿈'이란것이 있었을까?
어떤 일이라도 걷다보면 길이 된다는데, 글쎄 내가 10년가까이 서있는 이길은 아직 안개에 자욱히 가려진 위험한 정글숲인것만 같다.
나는 거창한 꿈까지는 바라지도않고, 내가 살아있다는 걸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