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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Feb 26. 2020

태어나줘서 고마워

첫째 졸업식에 보내는 편지

  딸아이 어린이집 졸업식에 편지 낭독을 부탁 받았다. 시골 사정상 졸업생은 단 두 명, 흔쾌히 알았다고 했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편지 읽다 목이 메면 어쩌지’ 걱정이 뒤따랐다. 난 어려서부터 잘 울었다. 조금만 서러워도, 잠시만 불안해도 눈물부터 차올랐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막 피어난 꽃망울, 달리기 하는 아이만 봐도 눈가가 시리다. (모두 신난 운동회, 나는 자꾸 눈가가 붉어져 당혹스럽다.) 어떤 내용을 쓸지 생각하다 주르륵, 키보드를 두드리다 주르륵, 낭송 연습을 하다 주르륵. 졸업식 날 아침, 첫째가 “엄마, 울면 안 돼.”라며 주의를 줬지만, ‘졸업 축하해’라는 첫 마디부터 말끝을 흐렸다.


  첫째는 네 살이 된 3월, 어린이집에 처음 갔다. 하지만 두 살 동생을 집에 두고,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아침마다 밥을 안 먹겠다며, 옷을 안 입겠다며 떼를 썼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오늘 어린이집 못 가요.” 전화를 해야 했다. 적응하는데 1년 정도 걸렸을까. 다섯 살부터 습관처럼 집을 나섰지만, 아파서 집에 며칠 묶여 있으면 아이 얼굴에  방실방실 웃음이 피어났다.


  지난 7년, 짧고도 긴 시간. ‘벌써 초등학교 입학을 하네’ 되돌아보며 말하지만, 하루하루는 참 더뎠다. 두 아이 사이에 누워 잔 듯 안 잔 듯 일어나면 해가 떴다.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치우며 산 듯 안 산 듯 움직이면 해가 졌다. 가끔은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하루가 흘러서 다행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자라서 살이 차오르고, 볼이 통통해졌다. 품 안에 들어오던 아이가 내 가슴만큼 자랐다.


졸업 축하해. 어린이집에 입학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품 속에 있던 아이가 이제 어느덧 자기 몫은 거뜬히 하고, 동생들까지 챙기는 언니가 되었구나.


너를 낳기 전에 엄마는 세상에 대해 잘 몰랐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고, 무언가를 이루어야만, 그런 성공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줄 알고, 열심히 뛰었단다. 너를 낳은 건 엄마 인생, 하나의 쉼표였지. 어떻게 안아도 계속 우는 너를 안고, 나에게 딱 달라붙어 아무 것도 못 하게 하는 너를 보며, 가끔은 힘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을 꼽으라면, 너를 낳고 키운 거란다. 엄마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 되고, 성공을 해봤자, 생명이 주는 신비와 아름다움 같은 건 어떻게도 따라가지 못 했을 거야. 세상에 한 생명이 태어나, 꼼지락 꼼지락 자기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만큼 값진 일은 없어.


언젠가 엄마가 너에게 이렇게 물었잖아. “재인아, 엄마가 재인이를 재인이라서 그냥 사랑하는 걸까? 아니면 재인이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듣는 착한 아이라서 사랑하는 걸까?” 재인이 네가 잠시 고민하다 답했어. “응, 내가 말 잘 듣고 착해서.” 엄마가 아니라고, 그냥 재인이라서 사랑하는 거라며 너를 꼭 안았지.


엄마도 엄마라는 건 처음 해봐서 많이 부족해.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가끔은 화가 나서 소리 지르고 혼도 내지만,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은 그보다 훨씬 많이 널 사랑하고 있다는 것. 네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로 웃고 행복하다는 것.


태어나줘서 고마워. 건강하게 매일 매일 옆에 숨 쉬며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잠든 너의 숨결은 얼마나 고운지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 같다는 생각을 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담아 졸업 축하해. 사랑해.


- 2020년 2월 20일 너의 첫 번째 졸업식 날 엄마가


Photo by Jason Leu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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