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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린 Feb 27. 2020

그 많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차리고, 먹고, 치우는 시간에 대하여

  코로나 19로 개학이 연기되고, 아이와 있는 시간이 늘었다. 며칠 사이 코로나 19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으니, 남은 날들도 아마 집에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른바 ‘감금 방학’, 하루 종일 네 식구 붙어서 복닥거리다 면 해가 진다.


  나는 보통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작가 모드,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가 고요하다.  그 시간은 짧다. “엄마, 어디 있어?”라는 말이 정적을 깨면 엄마 모드로 전환. 밖이 아무리 요란해도 꿈쩍 않던 아이들이 7시면 동그랗게 눈을 다. 나도 어렸을 때 그랬다. 아침이면 엄마가 소리쳤다. “8시야. 학교 가야지.” 고소한 음식 냄새와 라디오 소리가 뒤엉킨 거실은 언제나 몽롱했다. 겨우 일어나 세수하고, 옷 입고, 가방 챙기고, 밥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7시 50분. “엄마, 뭐야? 8시라며….” 엄마는 별 없이 도시락을 쌌다. 그러다 주말이면 해보다 눈이 먼저 떠졌다. 가뿐하게 일어나 시계를 보면 작은 바늘이 6과 7 사이에 있었다. 달이 있는 어둑한 새벽이 신기했다.


  “잠깐만.” 쓰던 글을 마무리하는데 둘째가 “아빠는 까슬한데 엄마는 보드라워.”라며 내 무릎에 앉았다.  아이를 폭 안고 상체를 좌우로 흔들었다. 내 손보다 작은 발이 꼬물꼬물 움직였다. 첫째가 몸을 뒹굴며 소리쳤다. “엄마, 들어와.” 다시 이불 속, 셋이 누워 책을 펼쳤다. 아침부터 여러 동물 흉내를 내자니 목소리가 갈라졌다. 둘째가 배를 웅크리며 말했다. “엄마, 배고파. 배고파서 배가 아파.” 밥 달라는 아이를 그냥 두는 건 엄마의 직무 유기. 차가운 부엌 공기를 뚫고 냉장고를 열었다. ‘오늘은 뭐 먹지?’ 끼를 차리고, 먹고, 치우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하루 세끼 걱정에서 벗어났다. 얼마 전,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첫째가 물었다. “집안일은 남자가 해야지. 왜 엄마가 해?” 농부 남편이 한가한 겨울에는 설거지, 빨래, 청소 모두 그의 몫이다. 나는 요리만 하, 그마저도 아침은 잘 안 먹어서 떡, 빵, 과일 같은 간식으로 해결한다. (아침부터 퉁탕퉁탕 밥을 차렸지만 모두 젓가락질이 시큰둥해 자꾸 버럭 했다.) 점심은 각자 먹었고, 저녁 한 끼 차리는 게 전부. 결혼 9년 차쯤 되니, 이제 김치찌개, 된장국 정도는 뚝딱고, 쿠킹 박스와 반조리 식품의 도움으로 한 상을 금방 차렸다.


  그런데  며칠 정말이지 아침, 점심, 저녁 차리고, 먹고, 치우다 하루가 갔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아, 매일 이렇게 밥을 차렸던 적이 있지.’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뭐 먹지?’라는 생각이 이불처럼 나를 감쌌다. ‘냉장고에 뭐가 있지? 어제 끓인 시래깃국, 냉동실에 동그랑땡.’ 아침을 먹고, 치우고, 아이와 놀다 세탁기를 돌렸다. 잠시 숨을 돌리면, ‘점심은 또 뭘 먹지?’ 공기처럼 나를 둘러쌌다. ‘야채 많으니까 카레.’ 또다시 차리고, 먹고, 치우고, 아이를 재웠다. 그 틈에도 청소, 빨래 정리 등 할 일은 많았고,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첫째가 다. 두 아이와 잠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저녁은 뭐 먹을 거야?’ 해는 매일 같은 질문을 남기고 저물었다. ‘생선 구울까. 저녁에 냄새나지. 두부 있는데 김치찌개 할까. 애들 먹을 게 없어. 집에 뭐 있지. 지난번 먹고 남은 고기 구워야지. 시래깃국에 두부 더 넣어서 끓이면 되겠다.’ 저녁을 차리고, 먹고, 치우고, 두 아이를 씻겼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 그 많던 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갑자기 늘어난 방학이 달갑지 않았다. 읽고 싶은 책, 쓰고 싶은 글은  넘쳤고, 시간은 없었다. 두 달째 집에 묶여 있는 남편의 뒷모습은 더 쓸쓸했다. 내가 말했다. “우리 몇 년 전만 해도 매일 이렇게 살았어요. 그땐 끝도 안 보였어. 그래도 잘 지나왔다.” 머리를 감거나 화장을 할 필요가 없던 시간들, 헐렁한 티셔츠 두 개를 번갈아 입으며, 똑같은 하루를 살았다. 새 옷은 가격표를 달고 벽에 그대로 걸려있었다. 남편은 늘 에 있었지만, 나는 별로 웃지 않았다. 지금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재우는 반복되는 일상도 언젠가는 끝난다. 하지만 그때 나는 기름 낀 머리와 누런 얼굴이 영원한 나 같았다.


  코로나 19로 계획된 수업이 모두 연기되었다. “출근하고 싶어.” 장난처럼 말하지만, ‘감금 방학‘도 나쁘지 않다. 둘째는 해가 뜨면 ‘드디어 하루 시작. 너무 신나’ 외치는 듯 단번에 일어나 다다다 달려 나온다. 첫째가 지난밤, 이부자리에 누워 말했다.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좋아. 하루가 너무 짧아.” 아무 데도 가지 못 하고 집에만 있는 동안 사이는 더 돈독해졌다. 어떤 일이든 끝이 있다. 인생이 말해 주, 행복도 끝이 있고 고통도 끝이 있다. 이 방학도 끝이 있다. 우리는 ‘감금’ 정도로 겪는 이 사태 또한 머지않아 잘 끝나길 기도한다.


Photo by Good Soul Sho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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