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다
4. 괜찮은 척 살아가는 이들에게
화내고, 미워하고, 후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는 화를 낸 뒤, 다시 화가 났다. 소리 지르고, 눈을 흘긴 나를 내가 견딜 수 없었다. 울고 있는 나를 나조차 안아주지 않았다. 끝없는 정죄는 내가 기독교 안에서 배운 유일한 삶의 방식. 매주 일요일 참회의 기도 시간에 “저의 분노를 용서해주세요. 제가 B를 미워했어요.”라며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지만, 월요일이 되면 다시 제자리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입꼬리를 올리며 했던 말을 되뇌었다. ‘하나님이 그런 너를 퍽이나 사랑하시겠다.’
삶은 어려운 숙제였다. 누군가 이기고, 조금이라도 앞서가야 숨이 쉬어졌다. 한 살 차이 여동생은 늘 질투의 대상이었고, 친구, 선후배 가릴 것 없이 나보다 잘난 사람은 눈엣가시였다. 나는 정말이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이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같은 찬양 가사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했다. 열심히만 살아온 나에게 평안은 게으름처럼 느껴졌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어린 시절 줄곧 얻어맞아 맷집이 꽤 단단하다고 자부했는데 경솔했다. 이렇게까지 화낼 일도 아닌데 나 역시 화를 멈추지 못하는 내가 이상하다. 미움이 느닷없이 산부인과 진료실 앞에서 폭발했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증오하고 질투했던 적이 있던가. 울음이 터졌다. 수치심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남편은 자리를 떠났다.
- 김혜연, 서툰 가족, 15쪽
그녀에게도 나와 비슷한 증오와 질투가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예뻤던 그녀도 나처럼 화를 내고, 눈물을 흘렸구나.’ 마음이 놓였다. ‘나만 이 모양은 아니구나. 다들 괜찮은 척, 괜찮지 않은 마음 부둥켜안고 살아가는구나.’ 위로가 되었다. 가끔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온실 속에서 정말 곱게 자란 줄 알았는데….” 그 말이 고맙고도 서운했다. 나는 보통 괜찮지 않았다.
교보문고가 2019년 발표한 베스트셀러를 보면, 에세이가 압도적이다. 요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잘 나가는 이유가 이 지점 아닐까. 에세이에는 한 사람이 있다. 나는 《서툰 가족》을 읽으며 김혜연이라는 사람을 깊게 만났다. 그녀 또한 당당하게 “아이를 입양했어요.”라고 말하기까지 꽤 지난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렇게 단단해지기까지 그녀는 여러 날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게 괜찮지 않은 이야기를 마주하며, 다시 갈 길을 찾는다. 나와 닮은 그녀를 만나니, 인생이라는 짐이 조금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