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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레나 Oct 29. 2023

교실 속 외로운 아이에게 건넨 카드

“엄마, 나 반장 됐어!”

해맑은 표정으로 뛰어들어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가방을 벗어 재끼며 외친다. 반장이 꼭 되고 싶다며 초조한 마음으로 등굣길에 나섰던 아이. 전학 간 학교에서 바로 반장에 당선되다니, 가능한 일인가. 코로나로 인한 긴 공백 후에 정상등교한 첫 해였다. 원래 다니던 아이들끼리도 서먹서먹하던 때라 전학생은 별로 티도 나지 않던 시기였으니, 운이 좋았다. 하루 종일 긴장하고 있었을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축하의 온기를 전한 뒤 한 마디 덧붙인다. “연아야, 항상 교실에서 소외된 친구 없게 혼자 있는 친구들 특히 잘 챙겨줘야 해.” 인류애로 충만한 것 같은 저 멘트는 사실 내년의 선거까지도 염두에 둔 엄마의 응큼하고도 욕심 많은 당부였다.


딸의 반장 선거 공약 중 하나는 바로 친구들의 생일을 챙겨주겠다는 것이었다. 돈이 드는 이벤트는 불가능했기에, 종합장을 잘라서 손수 꾸며 정성스레 카드를 써서 매 달 3-4명의 아이들에게 전해주곤 했었다. 1학기가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아이가 같은 반의 한 여학생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아이가 웃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 웃긴 이야기가 오고 가는, 다들 뒤집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 아이는 무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맨 앞자리에 앉아 칠판만 보고, 쉬는 시간에는 책만 보고, 친구들과는 말을 한마디도 섞지 않던 아이. 혹시 인지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인가 싶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그건 아니란다. 알림장도 제일 먼저 써서 항상 1등으로 검사받고, 수업시간에 하는 것들도 빠르게 잘한다고 했다. 아마도 수줍음이 많은 아주 내성적인 아이였나 보다.  곧 그 아이의 생일이 다가왔고, 딸에게 특히 신경 써서 카드 좀 잘 써주라고 이야기했다.


서영이에게.

서영아, 생일 축하해 ♡ 나는 네가 참 착하고 마음씨가 곱다고 생각해. 너는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들을 사귀면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질 거야. 친구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으면 나랑 친하게 지내자. 나는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어. 모범생인 서영아, 다시 한번 생일 축하해. ♡ 안녕~  

  

이 카드를 받은 서영이는 다음 쉬는 시간에 우리 딸에게 다가와 연필과 지우개 하나를 살며시 주고 가더란다. 그 아이가 전할 수 있는 최고의 고마움의 표현이었겠지. 이후로 우리 딸은 서영이에게 어떤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지 물어보며 연결도 해주고, 교내 도서관도 같이 가며 지냈고, 2학기에는 부쩍 밝아진 서영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학년의 마지막 날, 서영이로부터 이런 카드를 받아왔다.


나의 소중한 친구 연아에게

연아야, 나 서영이야. 이번 한 해 동안 정말 고마웠어. 너와 내가 친구가 되면서 나의 학교생활이 바뀌었어. 내 어둡던 학교 생활을 밝게 빛내주어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어땠을까? 상상이 안 가. 나를 네 친구로 받아들여 주어서 너한테 너무 고마워. 진심이야.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 너는 내 학교 생활의 환한 빛이 되어주었어. 너랑 같은 반이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중략)

  

어린 두 아이가 주고받은 카드를 보며 왈칵 눈물이 고였다. 교실 속 외로운 아이를 발견하고 양지로 나오도록 도와준 내 아이의 따뜻함과, 이로 인해 밝게 변하고 또 고마움을 진심으로 표현해 준 친구. 너무 감동적이지 않은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아야, 올 한 해 네가 제일 잘한 일은 서영이를 밝게 만들어준 거야! 너의 작은 행동으로 인해 한 친구의 인생이 바뀔 수 있다니 너무 멋지지 않니? 최고다 우리 딸!


공부인재보다는 인성인재가 더 인정받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예쁘게 단장하고 교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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